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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희연, 원로에게 길을 묻다] 자사고 폐지보다 제대로 운영되는지 감독해야

최정동 기자
김신일(74·사진) 전 부총리 겸 교육인적자원부 장관은 노무현 정부의 마지막 교육부총리였다. 서울대 교육학과 교수와 한국교육학회장 등을 역임한 그는 노무현 정부 후반기인 2006년 9월 교육부총리로 임명됐다. 2008년 2월까지 16개월 동안 교육 정책을 관장하면서 로스쿨(법학전문대학원) 도입과 내신성적 위주의 대입 정책 등을 주도하며 평준화·수월성 정책의 충돌을 직접 경험했다. 당시 대학들은 전국 권역별 로스쿨 인가와 내신 위주의 입시 정책에 거세게 반발했다. 퇴임 후 김 전 부총리는 평생을 교육학자로 일하다 직접 정책을 만들고 시행해 보니 평준화를 비롯한 교육계의 가치 충돌이 정말 심하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회고하기도 했다.

김 전 부총리는 교육사회학을 전공했다. 그가 쓴 『교육사회학』은 1980년대 교육학도들에게 필독서였다. 그런 김 전 부총리를 조희연(59) 서울시교육감이 만나 서울 교육 정책의 방향에 대한 조언과 지혜를 구했다. 성공회대 교수 출신인 조 교육감 역시 전공이 사회학이어서 원로 학자이자 교육계 수장이었던 김 전 부총리와 자율형사립고(자사고)와 고교 평준화 문제 등 구체적인 사안까지 문답을 주고받았다.

김 전 부총리는 조 교육감에게 “진영논리에 빠지지 말고 교육의 기본 가치에 충실하라”고 당부했다. 이명박 정부가 확대한 자사고를 축소·폐지하려는 조 교육감의 방침에 대해서는 “폐지보다는 설립 목적에 맞게 운영되도록 관리하는 게 옳다”고 의견을 밝혔다.

▶조희연=선생님의 책에는 소득에 따른 학력차이는 정의사회에 반하는 일이며 공교육의 기본 정신에서도 벗어나는 것이라는 문제 의식이 담겨 있습니다. 저는 요즘에 교육 불평등이 더욱 고착되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김신일=현대 국가가 등장해서 학교가 사회적 지위 경쟁의 통로가 되니까 어느 사회에서나 학교가 계층구조를 재생산하는 역할을 해왔습니다. 그래서 그것을 감안해 입시제도나 학교 교육과정 결정 등의 정책을 통해 선진국은 그 문제를 꽤 줄였습니다. 우리 사회에서도 근대화 과정에서 학교가 부나 사회적 지위의 불평등한 분배의 통로로 작용하기 시작했습니다. 그것이 근래에 와서 더 강해졌는데 일종의 과도기적 측면이 있습니다.

▶조희연=저는 자사고의 축소나 폐지를 주장해왔습니다. 자사고가 학생들 간의 교육 불평등을 심화시키는 요인으로 보기 때문입니다.

▶김신일=자사고가 애초에 왜 만들어졌으며 우리 공교육이 추구하는 것이 무엇이냐를 생각해 보는 게 좋겠습니다. 학교 중에는 외국어고·과학고·체육고 등 다양한 학교가 있는데 그것들이 각각의 특수한 목적 때문에 필요해 세웠다면 정말 그 목적에 맞게 운영되는지를 확인할 필요가 있습니다. 자사고도 마찬가지입니다. 폐지보다는 설립 목적에 맞게 운영되도록 입시준비학교와 다를 바 없이 운영되지 않도록 교육 당국이 엄격하게 감독해가며 관리를 잘하는 게 옳다고 생각합니다.

교육감이 내신 부풀리기 막아야
▶조희연=자사고가 설립 목적에 맞게 운영되는지를 우선 살펴보라는 말씀이네요.

▶김신일=그것은 그야말로 원칙의 문제입니다. 일반 고등학교에서 교육할 수 있는 범위를 넘어서는 외국어 재능을 가진, 앞으로 외국어 중심으로 생애를 살고자 하는 사람이 있으니 일찍부터 외국어를 철저히 교육시키는 학교를 만들자는 취지에서 만들어진 것이 외국어고입니다. 그런데 그동안 관리가 잘못돼 일부 학교가 입시준비학교가 됐습니다. 외고든 과학고든 설립 취지를 지켜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을 정상적으로 관리하는 게 정부의 역할입니다.

▶조희연=저는 일반고 살리기를 제2의 고교 평준화로 보고 있습니다.

▶김신일=흔히 고교 평준화를 교육평등 정책이라고 보는데 평준화가 교육평등화에 이바지한 면이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교육평등을 위한 정책은 아니고 중학교 입시 경쟁을 완화하기 위한 정책이었습니다. 제가 이 말씀을 드리는 것은 평준화가 교육평등 정책으로 오해되면서 정작 별도로 만들어서 시행해야 할 다양한 교육평등 정책에 모두가 소홀했기 때문입니다.

▶조희연=교육부총리로 일하실 때 대입 문제도 이슈였는데 지금의 입시체제를 어떻게 보십니까.

▶김신일=대학입시에서 가장 큰 문제는 대학들이 ‘우리가 가르칠 학생 우리가 알아서 뽑겠다는데 왜 정부가 개입하느냐’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대학도 교육의 큰 틀 안에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나라는 이제 학생 대부분이 대학에 가는 나라입니다. 대학은 고등학교를 존중해야 합니다. 대학에 다양한 아이들이 들어오면 가르치는 데 힘은 들어도 재미가 있습니다. 소위 선진국 대학 입시의 제1원리는 다양성입니다. 성적이 좀 떨어져도 다양한 재능을 가진 아이들을 뽑는다는 것을 대학들이 원칙으로 삼으면 좋겠습니다.

▶조희연=선생님께서 교육부 장관이었을 때 이른바 ‘고교 교육 정상화’를 위한 입시개혁이 진행됐습니다. 당시 대학들의 반발이 꽤 있었습니다.

▶김신일=당시 개혁의 기본은 입시에서 내신의 비중을 올리는 것이었습니다. 그 전에도 내신 중심의 입시를 얘기해왔지만 잘 안 됐으니 실행에 옮기자는 계획이었습니다. 제가 장관이 되기 전인 노무현 정부 초창기에 너무 세게 밀어붙였습니다. 사실 정책 시행에는 강도와 시간의 조절이 필요한데 다소 조급하게 진행됐습니다. 사실 그때까지 고교들이 내신의 입시 활용 가치에 대해 연구가 안 돼 있었고 내신 자료도 제대로 갖춰지지 않았습니다. 살펴보니 대학에서 ‘이걸 가지고 어떻게 학생을 뽑으란 말이냐’는 소리가 나오게 돼 있었습니다. 저도 그 정도까지인 줄은 몰랐습니다. 내신 자료를 대학에서 신뢰할 수 있도록 만들고 내용도 풍부하게 만드는 데는 교육감의 역할이 큽니다. 내신 부풀리기를 막는 것도 교육감이 나서서 해결해야 합니다.

학습자가 뭘 원하는지 늘 생각해야
▶조희연=교육감직을 맡고 보니 정책 집행자로서 균형 있는 자세가 어떤 것인지를 계속 고민하게 됩니다.

▶김신일=교육한다는 것은 아동이건 성인이건 사람들이 학습하는 데 도와주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런 면에서 교육의 중심은 학습자입니다. 교육행정도 마찬가지로 배우는 사람들의 학습을 돕기 위해 있는 것입니다. 결정의 추를 학습자에게 두는 것이 제일 중요합니다. 내가 학습자라면 뭘 원할까를 생각해야 합니다.

▶조희연=교육감이 되고 난 뒤 저에게 ‘진영논리’에 휘둘리지 말라고 비판적인 조언을 하는 분이 많습니다.

▶김신일=물론 사람마다 정치적으로 자기의 진영이 있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일단 행정의 책임자가 되면 진영논리에 빠지지 않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교육의 기본 가치에 충실해야 합니다. 저도 교육부총리로 일할 때 청와대와 논쟁하면서 나름대로 기본에 충실하고자 했습니다. 교육감은 특정 진영의 대표가 아니라 교육행정 조직의 대표입니다.



김신일 1941년 충북 청주 출생. 청주고, 서울대 교육학과 졸업. 미국 피츠버그대에서 박사. 서울대 교육학과 교수, 한국교육학회장, 부총리 겸 교육인적자원부 장관을 역임했다. 저서로 『교육사회학』 『평생교육원론』 『시민의 교육학』 등이 있다.


이상언 기자 joonny@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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