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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먹·발로 7세 딸 폭행, 3m 거인이 성인 무차별 때린 격

울산지검 아동학대 수사팀 검사들이 5일 정의의 여신 조형물 앞에 모였다. 왼쪽부터 박양호·이수진 검사, 김형준 부장검사, 김민정·김소정 검사. 이동현 기자
“사망 당시 25개월 영아였던 피해자는 피고인이 학대행위를 하더라도 외부에 호소할 방법이 없었고, 가해자가 보호자인 역설적 상황에서 죽음으로써만 피해 사실을 사회에 알릴 수 있었다….”

지난 3일 울산지방법원에선 입양한 두 살배기 딸을 때려 숨지게 한 김모(47·여)씨에 대한 선고 공판이 열렸다. 재판부는 살인죄를 인정해 징역 20년을 선고했다. 재판장이 주문을 읽는 동안 김씨는 말없이 고개를 떨궜다.
흉기 없는 아동학대 사망사건에 처음 살인죄를 인정했던 ‘울산 계모 사건’ 항소심 판결 4개월 만에 법원이 ‘입양아 살인 사건’에 대해 다시 살인죄를 인정한 것이다. 형량은 더 높아졌다. 배심원 9명 전원이 유죄로 판단했고 7명은 징역 20년을, 2명은 징역 18년을 평결했다. 재판부는 배심원의 판단을 따랐다.

앞서 부산고법은 지난해 10월 ‘울산 계모 살인 사건’의 피고인 박모(43·여)씨에게 상해치사죄만을 인정했던 1심 판결을 깨고 살인죄를 인정해 징역 18년을 선고했다. 흉기 없이 의붓딸(가명 서현)을 손과 발로 마구 폭행해 사망에 이르게 한 사건에서 살인죄가 인정된 것은 사법 사상 처음 있는 일이었다.

서현이 사건 살인죄 기소 1심은 패소
2013년 10월 전 국민을 분노에 빠뜨렸던 울산 계모 살인 사건은 아동학대 범죄에 대한 사법부의 판단 기준을 바꿔 놨다. 일곱 살 서현이는 소풍날 아침 식탁에 둔 돈을 가져가지 않았다고 거짓말을 한다는 이유로 의붓어머니에게 폭행을 당한 끝에 숨졌다. 키 1m23㎝, 몸무게 20㎏에 불과했던 서현이는 사망 당시 갈비뼈 16개가 부러져 있었다.

흉기 없는 아동학대 사망 사건에서 처음 살인죄 확정 판결을 이끌어낸 울산지검 아동학대수사팀(김형준 형사2부장)을 지난 5일 울산지검에서 만났다. 김 부장검사를 비롯한 수사팀 검사들은 지난달 16일 ‘울산 계모 아동학대 살해 사건 수사·공판 자료집’을 냈다. 476쪽에 달하는 자료집에는 수사 과정과 살인죄 구성의 법리, 공판 과정이 고스란히 담겼다. 1년 반에 걸친 수사와 재판, 자료집 제작에 참여한 검사들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박양호(기소·공판검사) 검사=처음엔 반신반의했어요. 계모라 해도 죽일 의사까지 있었겠나. 미필적 고의(범죄 결과 발생 가능성을 예견하고도 행위를 하는 것)라도 인정되겠나 하는 생각이었죠. 부검 결과를 보고 생각이 바뀌었습니다. 아이의 엉덩이 근육이 섬유화됐다는 소견이었어요. 외상을 입고 시간이 지나 아물면 다시 근육이 재생되는데 아물기 전에 폭행이 반복되면 섬유화된다는 거였지요. 훈육으로 때린 게 아니었겠구나 하는 판단이 들었습니다.

▶김형준 부장검사=1심에서 살인죄 인정을 받지 못한 다음 고민이 많았습니다. 검찰이 무리한 기소를 했다는 비난이 두려워서가 아니라 아동학대 범죄에 대해 잘못된 기준이 생길 게 걱정됐던 겁니다.

1심 법원인 울산지법은 지난해 4월 상해치사죄만을 인정해 징역 15년을 선고했다. 그간의 관례를 따른 것이었다.

계모 휴대전화 속 녹음이 실마리
수사팀은 항소했다. 검사장(봉욱 울산지검장) 이하 수사팀 전원은 항소심 재판부를 설득할 법리를 연구하고, 확보된 증거들을 처음부터 면밀히 검토했다. 살인죄가 인정된 해외 사례 분석도 시작했다. 대검 국가디지털포렌식센터(NDFC)가 ‘역전의 계기’가 된 휴대전화 분석자료를 찾아낸 건 그 즈음이었다.

▶김형준=수사 초기 증거 보존을 마친 피의자의 휴대전화에서 녹음파일을 새로 찾아냈습니다. 포렌식(디지털 법의학) 기법에 따라 검색이 안 되는 경우가 있을 수 있는데 새로 발견된 것이죠. 파일에는 아이를 구타하는 과정이 생생하게 녹음돼 있었습니다.

▶박양호=사망 당시의 녹음이 아니었기 때문에 직접 증거는 아니었지만 지속적인 학대가 있었음을 입증할 자료가 됐습니다. 아이가 거짓말하지 못하도록 몰아세우려 녹음한 것으로 추정됩니다.

항소심 공판 과정에서 이 녹음파일은 법정에 제출됐다. 법정을 가득 메운 방청객은 서현이가 당했던 고통을 생생히 들을 수 있었다. 재판장이 녹음파일 재생을 중단시킬 정도로 참담한 현장이었다.

수사팀은 법의학 감정도 새로 의뢰했다. 국내 최고 법의학자로 꼽히는 이정빈 단국대 석좌교수가 법정에서 직접 증언했다. 1심 때 인정되지 않았던 소견들이 대거 인정됐다. ^지속적인 폭행이 이뤄졌고 ^폭행이 사망에 이른 직접 원인이 됐으며 ^피해자가 고통을 호소한 정도를 추정할 때 피고인이 심각성을 인지했을 것이라는 살인죄 구성 논리를 입증한 것이다.

▶김형준=어떻게 죽음에 이르게 됐는지를 법의학적으로 분석해냈습니다. 아동의 갈비뼈는 유연하기 때문에 뼈와 수직으로 지속적 충격이 가해지지 않으면 쉽게 부러지지 않습니다. 오랫동안 잔인한 폭행이 있었단 걸 방증하는 결과죠. 또 옆구리를 차이게 되면 팔로 몸통을 감싸 보호하기 마련인데 양팔에 아무 손상이 없었어요. 가해자가 아이의 팔을 잡은 채 옆구리를 걷어찼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성인 여성이 일곱 살 아동에게 주먹과 발로 폭행을 가하는 건 흉기를 사용하는 것과 같은 효과를 냅니다. 신장 3m가 넘는 거인으로부터 성인이 폭행을 당하는 것과 같은 충격을 받는 것이고요.

아동학대 가장 중대한 범죄 돼야
지난한 재판을 마친 뒤 수사팀은 바로 자료집 제작에 나섰다. 아동학대 범죄에 대한 자료가 거의 없어 수사에 어려움을 겪었던 터라 자신들의 경험을 기록으로 남기기 위해서였다.

▶이수진(자료집 총괄) 검사=무엇보다 아동학대에 대한 우리 사회의 인식을 바꿨다는 생각이 들어요. 설마 부모가 자식을 죽이려 했을까, 아이를 키우다 보면 몇 대 때릴 수 있지…. 이런 생각이 우리 사회가 그동안 아동학대 범죄에 대해 너무 관대했던 이유가 아니었나 싶습니다.

▶김민정(울산지검 아동학대 전담) 검사=입양아 살인 사건을 맡으면서 수사팀 참여 경험이 큰 도움이 됐습니다. 해외 사례 수집을 담당했는데 사법 선진국에선 아동학대를 가장 중대한 범죄로 인식하는 것이 일반화돼 있더군요.

수사팀은 지난달 19일 한국여성변호사회가 주는 ‘제1회 여성아동인권상’을 받았다. 검사들은 부상으로 받은 상금을 아동보호전문기관과 피해 아동에게 전달했다. 박양호 검사는 인터뷰 말미 소회를 묻는 질문에 이렇게 말했다.

“부산 해운대에 갈 때마다 서현이 얼굴이 떠오릅니다. 서현이가 세상을 떠나던 날 소풍 가려던 곳이 해운대 아쿠아리움이었거든요.”


울산=이동현 기자 offramp@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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