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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정액 50조 넘었지만 … 한국형 투자로 질적 성장 해야

사모펀드에 대한 배경지식이 없다 보니 논의는 엉뚱한 방향으로 흘러갔다. 재벌이 은행을 지배할 수단으로 활용될 수 있다는 주장과 월가의 투기자본을 굳이 국내에서 키울 필요가 있느냐는 주장도 나왔다. 관 주도로 사모펀드 도입이 추진된 것도 문제였다. 선진국에서 사모펀드는 사적 계약과 관행에 근거해 자생적으로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국부유출 논란 일자 “우리도 키우자”
우여곡절 끝에 금산분리나 출자총액제한 조항을 건드리지 않는 선에서 사모펀드를 합법화한 간접투자자산운용법(간투법) 개정안이 2004년 국회를 통과했다. 자금 조성 및 투자·운용 전반에 대해 포괄적인 자율권이 부여됐다. 2009년 자본시장법으로 통합된 간투법의 목적은 ▶기업구조조정을 통한 부실기업 회생 ▶부실채권 정리 ▶국내 기관투자가 등 장기 투자자들에게 새로운 투자 기회 제공 ▶국내자본의 대형화를 통한 외국계 펀드와의 경쟁력 제고 등이었다. 10년이 지난 지금, 국내 사모펀드는 얼마나 그 목적을 달성했을까.

우선 양적으로는 크게 성장했다. 제도 시행 직후인 2005년 PEF 15개, 출자약정액 2조9000억원이던 것이 현재 PEF 260여 개, 출자약정액 51조원으로 늘었다. MBK 파트너스, IMM, 보고펀드, 한앤컴퍼니, H&Q 등 경쟁력 있는 토종 펀드도 많이 생겼다. 사모펀드는 보통 약정액 모집 후 10년간 기업을 운영하다 되팔아 시세차익을 취한다. 사모펀드 제도 도입 초기 조성된 펀드들의 만기가 지난해 돌아오기 시작한 것이다.

투자 자금 확보는 더 중요하다. 이 부분에서의 성과는 미지수다. 업계에선 5년 이상 된 펀드 중 약정만 하고 실제 투자 자금으로 끌어 내지 못한 규모가 6조원을 넘겼다는 얘기도 나온다. 국내 PEF의 실력을 믿지 못하는 연·기금 등 물주들이 약정만 하고 실제 투자 자금을 내지 않았다는 얘기다. 물론 이것만 놓고 토종 사모펀드의 성패를 논하기는 어렵다. PE협의회장인 이재우 보고펀드 대표는 “10년이 됐다곤 하지만 2008년 리먼 브러더스 사태, 2010년 그리스 재정위기 등 대외환경이 좋지 않았기 때문에 국내 사모펀드 실적을 속단하기엔 이른 감이 있다”고 말했다.

국내 사모펀드들이 국민연금, 각종 공제회 등 주로 연·기금의 출자를 중심으로 운영되기 때문에 서구식 모험투자보다 안정적 운용으로 흐르는 점도 제약 조건으로 작용한다. 임유철 H&Q 대표는 “사모펀드는 장기·모험 투자가 핵심인데 연·기금 등을 관리하는 공기업 직원과 공무원들은 자신의 임기 중 손해가 나지 않기를 원하다 보니 사모펀드의 본래 취지에 역행하는 점이 있다”고 말했다. 때로는 투자 내용에 대해 감사원 감사가 이어지는 경우도 있는데 선진국에선 상상할 수 없는 일이라는 것이다.

어쨌든 국내 사모펀드의 성장은 지속될 전망이다. 지난해 국내에서 이뤄진 5000억원 이상 규모의 대형 M&A 10여 건 가운데 사모펀드가 끼지 않은 거래는 단 세 건이다. 한앤컴퍼니는 지난해 12월 세계 2위 자동차 공기정화장치 제조사인 한라비스테온공조를 3조9400억원에 인수한다고 발표해 시장을 놀라게 했다. 국내 PEF 거래 사상 최대 규모다.

대형 M&A 자금 확보한 PEF 적어
이재우 대표는 “구조적인 내수 부진, 수출 주도형 성장의 한계가 향후 한국 경제의 특징”이라며 “앞으로 사업 재편이나 구조조정이 필요한 한계기업들이 늘어날 것이기 때문에 PE 업계는 그 속에서 기회를 잡을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하지만 그 기회는 국내 연·기금에서 출자를 받는 토종보다 해외에서 자금을 조달하는 외자계가 더 많을 것으로 예상했다. 국내 PEF 중에서도 해외 자금을 조달받는 MBK 파트너스와 한앤컴퍼니 등은 외자계로, 국내 연·기금에 의존하는 보고펀드와 H&Q 등은 국내계로 분류된다.

이 대표는 “국내 PEF 중 바이아웃펀드(지분 매수 및 경영권 인수 펀드)를 통해 큰 성과를 낸 사례가 아직 많지 않은 데다 국내 연·기금의 성격상 모험자본을 대폭 늘릴 수 없기 때문에 대형 M&A를 수행할 자금이 확보된 국내 PEF는 많지 않다”고 말했다. 그래서 한국형 대안투자를 모색하자는 얘기가 나온다. 한국 시장의 특성상 국내 PEF가 대형 바이아웃으로 기업가치를 올려놓는다 해도 매수자가 절대적으로 부족하고 주식시장도 침체를 벗어나지 못해 투자 회수가 쉽지 않다는 것이다.

한국 시장은 영미권에 비해 규모가 작고 대기업이 주도권을 쥐고 있으며, 안정적 투자를 바라는 연·기금이 주력 투자자다. 이런 시장 상황을 무시하고 무조건 미국식 바이아웃 전략으로 가는 것보다 비교적 투자 회수가 용이한 소수 지분 투자, 매수자를 찾기 쉬운 중소기업의 바이아웃, 부동산 인프라 투자와 해외 투자 등으로 범주를 넓히는 것이 낫다는 얘기다.

국내 사모펀드는 이제 대기업을 대체할 대안자본으로 성장했다. 외국 PEF에 비해 ‘먹튀’ 논란, ‘기업 사냥꾼’의 오명에서도 자유로운 편이다. 기업 경영권을 인수해 기업의 투명성과 효율성을 높이는 데도 일정한 역할을 했다. 간투법의 본래 취지인 바이아웃 전략, 좀 더 모험적인 운용 전략을 왜 쓰지 않느냐는 비판도 있다. 하지만 단기적으로는 한국 시장의 수준에 맞는 전략을 펼 필요도 있다.

임유철 대표는 “PEF 업계 10년의 과제는 업계의 발전 그 자체가 아니라 낙후된 한국 금융을 어떻게 더 글로벌하게 만드느냐에 달려 있다”고 말했다.


박성우 기자 blast@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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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