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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 부채 탕감은 어렵지만 상환일정은 재조정해야

군트람 볼프 소장은 그리스가 경제 성장률이 일정 수준에 이르렀을 때만 부채를 상환하도록 하자는 아이디어를 냈다. [중앙포토]
벼랑 끝 승부(Brinkmanship)다. 알렉시스 치프라스(41) 그리스 총리가 먼저 공격했다. 지난달 총선 승리 이후 재정긴축을 중단했다. 두 항구의 민영화 작업도 중단했다. 그는 “그리스가 살 수 있는 구제금융 협약을 원한다”고 외쳤다. 유럽연합(EU)·국제통화기금(IMF)·유럽중앙은행(ECB), 즉 트로이카 체제에 대한 도전이다. 응전이 나올 때가 됐다. 아니나 다를까 ECB의 마리오 드라기 총재가 나섰다. 그는 “그리스 국채를 담보로 더 이상 받지 않겠다”고 4일 선언했다. ECB가 그리스 국채를 담보로 받지 않으니 그리스 시중은행은 돈을 빌릴 길이 사실상 막혔다. 시중 자금 경색이 불가피하다. 벼랑 끝 승부 2막이 오르고 있는 모양새다. 유럽 3대 싱크탱크인 벨기에 브뤼겔의 군트람 볼프 소장에게 서둘러 전화를 걸었다.

-요즘 트로이카 분위기는 어떤가.
“EU와 ECB뿐 아니라 독일 재무부 사람들도 아주 곤혹스러워한다. 치프라스란 인물 자체가 유럽 기성 정치인들에겐 아주 낯선 존재이지 않는가.”

-무슨 말인가.
“치프라스가 유로존(유로화 사용 19개국) 기성 엘리트들에겐 생소한 사람이라는 얘기다. 그는 ‘허리띠를 졸라매 빚을 갚아야 한다’ 등 1980년 이후 상식으로 자리 잡은 경제 논리를 거부하고 있다. 또 서로 대화하며 협상해본 적이 없다.”

-치프라스의 벼랑 끝 승부에 대해 독일 재무부 관료 등은 어떻게 생각하는가.
“그들은 치프라스가 유로존 자체를 볼모로 잡고 몸값(Ransom)을 요구하고 있다는 식으로 말한다. 독일 경제정책 담당자들도 대화나 타협을 해야 한다는 쪽이다. 하지만 치프라스 압박에 끌려다니는 모양새는 싫어한다. 기세 싸움이 당분간 이어질 모양이다.”

볼프 소장은 독일 출신이다. 독일 분데스방크와 EU집행위원회에서 거시경제 분석을 담당했다. 트로이카를 사실상 움직이는 독일 쪽 시각을 잘 아는 인물이다.

-앙겔라 메르켈 총리가 너무 고집 부리는 것은 아닌가.
“메르켈 총리도 정치인이다. 치프라스가 그리스 유권자를 의식해야 하듯이 메르켈도 독일 유권자들을 의식해야 한다. 독일 국민 자체가 부채 일부 탕감(헤어컷) 등을 아주 싫어한다. 이런 정서를 무시하고 메르켈이 양보할 순 없지 않는가. 게다가 메르켈만 그리스에 강경한 게 아니다.”

-누가 또 메르켈만큼 강경한가.
“스페인 마리아노 라호이 총리도 기존 구제금융 협약 바꾸기를 거부하고 있다. 여기엔 정치적 동기가 작용하고 있다. 좌파 정당인 포데모스 지지율이 오르고 있다. 트로이카가 그리스를 봐주면 포데모스 지지율은 더 높아질 수 있다. 라호이가 두려워하는 일이다.”

포데모스(Podemos·우리는 할 수 있다)는 최근 마드리드에서 대규모 시위를 주도했다. 30만 명이 모여 긴축 등에 항의했다. 파블로 이글레시아스 포데모스 당수는 내년 총선에서 치프라스처럼 승리하려고 한다. 스페인 중도 우파인 라호이 총리가 여차하면 권력에서 밀려날 수도 있다.

-남남 갈등(남유럽 국가 간 갈등) 아닌가.
“그럴 듯한 말이다(웃음). 이제 그리스는 유럽 중도우파들의 공통 의제가 됐다. 치프라스 요구를 들어주면 우파들의 입지가 줄어들 수 있어서다.”

-메르켈과 치프라스가 타협할 가능성이 없다는 얘기로 들린다.
“아마도 몇 개월 동안은 서로 힘자랑을 할 것이다. 강경 발언을 상대에게 퍼부으며 먼저 양보하라고 압박할 게 뻔하다.”

-메르켈과 치프라스가 끝내 공통 분모를 발견할까.
“나는 두 사람이 끝내 타협할 것으로 본다. 그리스가 유로화를 포기하면 엄청난 손해를 감수해야 한다. 메르켈도 그리스가 유로존을 떠나면 뒷감당하기 힘들다.”

-영국 쪽 전문가들은 부채의 일부를 탕감해줘야 한다고 말하더라.
“몇 년 전 1차 헤어컷으로 충분해 보인다. 그리스가 본격적으로 구제금융을 상환하는 시점은 10년 뒤다. 굳이 부채를 탕감해줄 필요는 없다고 본다.”

-마틴 울프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 수석 칼럼니스트는 “메르켈이 빚을 깎아주지 않으면 그리스가 궁지에 몰려 유로존을 탈퇴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충분히 가능한 시나리오지만 그리스 경제가 살아나면 현재 부채인 3200억 유로 정도는 버겁지 않을 것으로 본다. 치프라스가 헤어컷을 요구하는 명분도 뚜렷하지 않다.”

-독일도 1950년대 외채를 탕감받았다.
“치프라스가 53년 런던합의를 두고 그런 말을 했다. 그런 일이 있기는 했다. 하지만 지금 독일인들이 그 사실을 거의 기억하고 있지 않다. 그러니 ‘그때 일을 끄집어내 빚을 깎아달라고 하지 말아야 한다’는 게 요즘 독일인들의 생각이다.”

치프라스는 한 걸음 물러났다. 헤어컷 대신 만기가 긴 국채를 찍어 기존 채권과 바꾸자는 제안을 내놓았다. 당장 돈이 급하기도 하다. 이미 그리스 정부의 세수가 펑크가 났다. 인터뷰 뒤의 일이지만 미국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가 6일 그리스의 국가 신용등급을 ‘B’에서 ‘B-’로 1단계 강등했다. ECB가 5일 그리스 국채의 담보인정을 11일부터 중단한다고 발표하자 하향조정했다. 트로이카가 아니면 그리스가 돈을 구할 곳이 없는 상황이다.

-벼랑 끝 승부보다 협상이 이뤄질 법한데.
“치프라스나 메르켈 모두 현실을 인정할 때가 됐다. 내가 보기에 구제금융의 만기 연장과 상환 금액과 일정을 경제 성장률에 맞춰 조정하는 게 가장 현실적인 대안이라고 생각한다.”

-메르켈도 동의할까.
“그리스 경제 성장률이 일정 수준에 이르렀을 때만 부채 상환을 하도록 하는 방안이다. 실물 경제 상황이 나쁘면 부채 상환이 일시 정지된다. 헤어컷이 아니니 메르켈도 받아들일 만하다.”



군트람 볼프 독일 본대학에서 경제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중앙은행인 분데스방크에서 경제분석가로 훈련을 받았다. IMF 등에서 일하기도 했다. 2009년 11월 그리스 재정위기가 불거진 이후 서방 언론에 가장 많이 등장한 유로존 이코노미스트다.


강남규 기자 dismal@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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