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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바꾸는 체인지 메이커] 잘 팔리면 값 낮춘다 … 7120만 명 매료시킨 ‘가격 결정자’

회원제 창고형 할인매장 코스트코의 제임스 시네걸 공동 창업자(오른쪽)가 2012년 미국 워싱턴 코스트코 매장을 찾은 조 바이든 미국 부통령과 함께했다. 바이든 부통령이 손에 든 것은 코스트코 회원 카드다.
몇 년 전 가족과 함께 미국에서 생활한 적이 있다. 도착해 가장 먼저 한 일 중 하나가 코스트코(Costco) 회원 가입이었다. 먼저 미국생활을 경험한 이들이 이구동성 권해서였는데, 지금 생각해도 잘한 결정이었다. 그만큼 좋은 물건과 식재료를 그 정도 가격에 살 수 있는 곳은 코스트코뿐이었다. 이제는 국내에서도 코스트코를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심지어 양재점은 세계 671개 점포 중 연매출 1위(5000억원)를 기록하기도 했다. 월마트와 카르푸가 두 손 들고 나간 한국 시장에서 여봐란듯이 성공한 것이다.

소매 영역은 익을 대로 익은 시장이다. 대세를 단번에 바꿀 혁신적 신기술 따위가 있을 리 없다. 게다가 코스트코는 매장을 쉽게 안 늘리고, 취급 물품은 4000여 개에 불과하며, 외부 인재도 영입하지 않는다. 직원 급여는 시간당 20.89달러로 경쟁사인 월마트(시급 12.67달러)보다 40%나 더 주면서 최고경영자(CEO) 연봉은 월마트의 4분의 1밖에 안 된다. 이런 ‘거꾸로 경영’에도 불구하고 성장세는 매우 빨라 월마트에 이은 미국 2위 소매체인이자 1위 회원제 할인매장이다. 1983년 창업 이래 고작 6년이라는, 미국 역사상 가장 짧은 기간에 매출 30억 달러를 달성했다. 지난해 매출은 1126억4000만 달러, 멤버십 회원은 7120만 명(2013년 기준)에 이른다. 2010년 2월 55달러 선이던 주가는 만 5년 만에 160달러를 돌파했다. 지난해는 직원들이 뽑은 ‘미국에서 가장 좋은 직장’ 2위에 랭크되기도 했다. 근소한 차이로 1위를 한 곳은 구글이었다.

회사 성장을 이끈 사람은 제임스 시네걸(James Sinegal·79)이다. 이 회사를 공동 창업해 2011년까지 CEO를 했다. 지금도 회사 고문으로 경영에 참여한다. 각종 인터뷰를 읽어보면 그야말로 소매(retail) 비즈니스에 미친 사람임을 알 수 있다. 47세란 늦은 나이에 창업에 뛰어든 것도 “리테일을 너무 사랑해서”라고 한다.

시네걸은 어린 시절을 고아원에서 보냈다. 홀로 된 어머니가 그를 키울 능력이 없었기 때문이다. 11세에야 재혼한 어머니 품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샌디에이고시립대 학생이던 18세 때 미국 최초의 창고형 할인점인 페드마트에서 매트리스 하역 아르바이트를 했다. 이를 계기로 소매업에 관심을 갖게 된 시네걸은 곧 페드마트의 정식 직원이 된다. 페드마트 창업자인 솔 프라이스로부터 “가치를 창출하고, 직원과 고객을 섬기며, 납품회사를 존중하고, 이 모든 과정을 통해 주주에게 보답한다”는 사업 철학을 고스란히 물려받았다.

76년 페드마트가 다른 사람 손에 넘어가자 프라이스는 최초의 회원제 창고형 할인점인 ‘프라이스클럽’을 설립했다. 페드마트에서 수석부사장 자리까지 올랐던 시네걸도 그를 따라 나섰다. 그러고 7년 뒤 마침내 자기 사업을 시작한다. 공동창업자인 제프리 브로트먼과 함께 시애틀에 첫 코스트코 매장을 낸 것이다. 93년에는 프라이스클럽과 합병해 덩치를 키웠다.

2009년 사망한 솔 프라이스는 2005년 뉴욕타임스 기자에게 “시네걸은 주주와 직원·고객·관리자 사이에서 이해관계 균형을 정말 잘 잡는다”고 칭찬했다. 실은 이야말로 코스트코가 시장으로부터 ‘궁극의 가격 결정권(absolute pricing authority)’을 부여받게 된 배경이다.

할인점은 대개 매출과 마진을 함께 올리는 걸 목표로 한다. 예를 들어 50달러짜리 유명 브랜드 청바지를 30달러에 판다고 하자. 물건이 예상보다 잘 팔리면 할인점은 가격을 올리거나 납품가를 후려쳐 마진을 높일 생각을 한다. 생산자 생각은 다르다. 원래의 납품가를 보전해 주거나, 그럴 게 아니라면 가격이라도 낮춰 많이 팔아주는 것이 좋다. 소비자 입장에서야 쌀수록 최선이다. 주요 주체들의 이해관계가 엇갈리는 것이다.

그런데 코스트코에서는 이 모든 입장이 하나로 모아진다. ‘좋은 물건을 최대한 싸게 판다’. 코스트코는 청바지가 잘 팔려 비용이 감소하면 마진을 높이는 게 아니라 가격을 낮춰버린다. 40달러에 팔던 청바지를 22달러에 파는 것이다. 소비자는 값이 싸져 좋고, 생산자는 납품가를 낮춘 만큼 더 많이 팔리게 되니 여러모로 이익이다. 그렇다면 코스트코는? 최소한의 마진으로 어떻게 성장을 거듭할 수 있는 걸까? 비밀은 ‘회원제’에 있다.

 비즈니스위크에 따르면 코스트코 총이익의 80%는 연회비에서 나온다. 그런 만큼 최대 목표는 회원을 많이 유치하고 또 유지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코스트코는 어떻게든 좋은 물건을 싸게 공급하려 애쓴다. 취급 품목 수를 한정하고 대용량 포장을 해 제품별 가격 경쟁력을 최대화한다. 국가별로 사용 가능한 신용카드를 하나씩만 정해 수수료를 낮춘다. 광고는 하지 않으며 오직 고객과 직원들의 입소문에 의지한다. 시네걸의 최저가에 대한 집착이 얼마나 강했던지 친구인 하워드 슐츠 스타벅스 회장은 그를 ‘가격 경찰(price police)’이라 부르기도 했다. 시네걸이 정한 코스트코 최대 마진율은 15%다. 월마트(20~25%)나 백화점(50%)보다 현저히 낮다. 회원들의 만족도가 높을 수밖에 없다. 덕분에 회원 갱신율은 90%에 이른다.

더하여 시네걸은 직원 복지를 비용이 아닌 성장 동력으로 간주한다. 업계 최고 수준의 임금을 주는 것은 물론 의료보험료의 92%를 부담한다. 해고도 정년도 없다. 시네걸은 “불행한 직원은 계속 새 직장을 찾을 수밖에 없다. 코스트코 직원은 회사를 사랑하며 자부심이 넘친다. 정당한 이윤을 만들고 직원에게 더 많이 투자하는 것이 기업에 이득”이라고 강조한다. 시네걸은 2009년 금융위기 때도 해고는커녕 “경제가 어려우니 임금을 더 줄 방법을 찾아야 한다”며 이후 3년에 걸쳐 시급 1.5달러를 인상했다.

시네걸은 2013년 한 인터뷰에서 “기업문화야말로 사업의 모든 것”이라고 단언했다. 이를 지키기 위해 순혈주의를 고집해 왔다. 코스트코 직원 대부분은 매장 업무로 커리어를 시작한다. 고객을 섬기고 직원을 돌보는 법을 배운다. 시험을 통과해 관리자가 되면 회사는 경영대학원을 보내주는 등 지속적으로 지원한다. 코스트코가 매장을 급격하게 늘리지 못하는 것도 직원들을 키워내는 데 그만큼 오랜 시간이 걸리기 때문이다.

그러고 보면 오늘날의 코스트코를 만든 건 8할이 ‘신뢰’다. 최고의 평생직장이라는 직원의 믿음, 함께 성장할 수 있다는 생산자의 믿음, 기본이 탄탄한 회사라는 주주의 믿음, 무엇보다 최상품을 최저가에 살 수 있다는 고객의 확고한 믿음. 시네걸은 바로 그 신뢰를 지키기 위해 30년을 하루같이 일했다. 또한 자기 시간의 90%를 직원 코칭(coaching)에 바친다. 자신의 가치관과 사업 전략, 기업문화를 합치시키는 데 성공한 보기 드문 창업자. 그가 미국 산업계에서 특별한 존경을 받는 이유일 게다.


이나리 제일기획 비욘드제일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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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