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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모의 자연사 이야기] 운석 충돌하던 ‘지옥’에서 지구 생명 탄생의 싹 텄다

머치슨 운석. 1969년 호주에 떨어진 머치슨 운석에서 74종의 아미노산을 비롯해 수많은 유기화합물이 발견됐다. 이에 따라 생명을 이루는 아미노산 등 단위체의 기원이 운석이란 가설이 제기됐다.
1969년 9월 28일 수만 명의 호주 시민들은 귀를 찢는 듯한 엄청난 폭음과 함께 하늘을 가로지르는 주황색 불덩어리를 지켜봤다. 어떤 사람들은 불덩어리가 지나갈 때 알코올 냄새가 났다고 했다. 일부는 그저 고약한 냄새가 났다고 증언했다. 불덩어리는 600명의 주민이 사는 머치슨(Murchison) 마을 위에서 폭발해 산산조각이 났다. 머치슨에 운석이 떨어진 것이다.

그 뒤 몇 주 동안 마을 사람들은 운석을 100㎏ 넘게 주웠다. 크기는 구슬만 한 것에서 5.5㎏의 벽돌만 한 것까지 다양했다. 흔한 일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드문 일도 아니었다.

하지만 머치슨 운석은 전 세계의 주목을 받았다. 시기가 적절했기 때문이다. 불과 두 달 전인 7월 24일 미국 아폴로 11호의 우주 비행사 세 명은 달 표면에서 21.55㎏의 월면(月面) 샘플을 갖고 귀환했다. 전 세계의 실험실은 한창 달에서 가져온 암석을 분석하고 있었다. 그런데 머치슨의 밤하늘을 밝힌 운석은 달보다 훨씬 먼 곳에서 온 것이 아닌가.

머치슨 운석은 탄소질(質) 콘드라이트(chondrite)에 속한다. 이 운석이 풍긴 냄새는 지구보다 나이가 많은 유기화합물에서 나온 냄새다. 유기화합물들은 우리 태양계를 낳았던 성간(星間) 먼지와 성간 구름의 드넓은 분자구름에 존재하던 것들이다. 유기물은 대부분 타르 같은 중합체(重合體)였다. 사슬형 탄화수소와 고리형 탄화수소 외에 지방산·알코올·요소(尿素)·당(糖)·아인산염·술폰산염 등도 포함돼 있었다. 미국 항공우주국(NASA)의 과학자들은 이 운석에서 74종(種)의 아미노산을 발견했다. 그 가운데 6종은 지구 생명체의 단백질에 들어 있는 아미노산이었다.

2005년 7월 3일 오후 3시7분 미국의 우주 탐사선 딥임팩트호는 세탁기 크기의 충돌체를 발사했다. 이 충돌체는 거의 24시간 동안 4억3100만㎞를 날아가 7월 4일 오후 2시52분 혜성 템펠 1과 충돌했다. 시속 3만7100㎞ 속도로 날아오는 372㎏짜리 물체에 얻어맞은 혜성은 산산조각 나서 수t의 혜성 물질을 우주 공간에 흩뿌렸다. NASA 과학자들은 그 증기구름을 분석해 유기분자를 발견했다.

이 물질들은 모두 어디에서 왔을까. 태양계를 만들었던 분자구름에서 합성됐다고 보는 게 가장 상식적이다. 그 분자구름이 뭉쳐져 소행성과 혜성이 된다. 운석과 혜성에서 발견되는 유기화합물이 알려주는 것은 무엇일까. 유기화합물이 운석에 있다면 초기 지구라고 없을 이유가 없다. 생명 탄생 이전이라도 지구에 아미노산이 충분히 존재했을 것이란 사실을 짐작하게 한다. 생명의 기원에 필요했던 유기화합물 모두가 먼지 입자와 운석·혜성에 실려 지구에 전해진 것은 아니다. 지구의 대기권과 수권(水圈) 그리고 화산에서 합성된 화합물도 있었을 것이다.

최초의 생명체엔 효소 역할을 하는 단백질과 생명의 설계도 역할을 하는 DNA를 대신하는 작은 RNA 조각(라이보자임)이 들어 있었을 것이다.
지옥 같은 환경에서 싹튼 생명의 씨앗
초기 생명체는 효소 작용을 하는 단백질과 생명의 설계도 역할을 하는 핵산을 모두 갖지 못했다. 대신 두 역할을 다 하는 작은 RNA 조각, 즉 라이보자임(ribozyme)이 있었을 것이다. 이를 증명하기 위해 과학자들은 오랫동안 간단한 유기화합물로부터 RNA를 구성하는 네 가지 염기, 즉 아데닌(A)·구아닌(G)·시토신(C)·우라실(U)이 제조되는 방법을 찾는 데 몰두했다. 그래야만 생명이 어디에서 어떻게 탄생했는지에 대한 단서를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최근 과학자들은 초기 지구에 풍부했던 시안화수소(HCN)가 물(H2O)과 반응할 때 생기는 포름아미드(CH3ON)란 간단한 화합물에서 아데닌 등 핵(核) 염기가 생겼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이미 많은 연구팀이 실험실에서 포름아미드를 이용해 개별 핵 염기를 합성하는 데 성공했다. 하지만 과연 초기 지구 조건에서 그런 일이 가능했을까.

지금부터 40억 년 전부터 1억5000만 년 동안의 시간을 ‘후기 운석 대충돌기’(LHB· Late Heavy Bombardment)라 한다. 커다란 물체들이 수성·금성·화성은 물론 지구와 달을 지속적으로 강타했다. 이런 조건에서도 핵 염기가 생겨날 수 있었을까. 많은 과학자들은 이 충돌이 지구 표면의 생명체들을 몰살시키거나 이미 탄생한 생명체의 싹을 잘라버렸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궁금하면 해보는 것이 과학이다.

체코 헤이로프스키 물리화학연구소 스바토풀르크 치비시 박사팀은 초기 지구에 풍부하게 존재했던 것이 확실한 포름아미드에 고출력 레이저를 쏴 4200도의 고온과 엄청난 압력, 그리고 자외선과 X선을 비롯한 여러 방사선을 만들었다. 마치 소행성이나 혜성이 지구를 강타한 듯한 ‘지옥 같은’ 환경을 조성한 것이다. 그리고 이런 조건에서 RNA의 네 가지 핵 염기를 모두 합성하는 데 성공했다고 2014년 12월 ‘미국 국립과학원회보’에 발표했다. 체코 팀의 연구는 LHB 시기에 빈발한 천체의 충돌은 지구 생명체의 싹을 잘라버린 게 아니라 반대로 생명 탄생에 필요한 씨앗을 뿌린 것임을 강력히 시사한다.

포름아미드와 물에 고출력 레이저를 쏘아 고온·고압·방사선 환경을 만들었더니 RNA의 네 가지 핵 염기, 즉 아데닌·구아닌·시토신·우라실이 모두 생겨났다.
열수분출구는 핵 염기를 길게 연결해 중합체인 RNA를 만들 수 있는 에너지와 영양분의 공급처였다. 열수분출구는 깊은 바다의 지각을 떠받치는 구조판에 균열이 생긴 곳에 존재한다.
121도의 온도에서도 생물 생존 가능
그렇다면 초기 지구에 등장한 RNA는 기름 막 안에 갇힌 채 생명으로 순조롭게 발전했을까? RNA 사슬이 이러저리 떠다니며 되는 대로 자신을 복제하다가 점점 길어져서 아메바·벌레 그리고 사람으로 진화했을까? 현대 과학의 분석에 따르면 RNA를 복제하는 데 필요한 물질이 부족했기 때문에 복잡한 생명체보다는 원시 생명체로의 진화를 선호했을 것이라고 한다. 그러나 기다란 RNA는 생명 탄생의 기본 조건이다. 초기 생명체들은 이런 유전적 역설을 어떻게 극복했을까.

하와이 킬라우에아 화산은 흐르는 용암을 눈앞에서 관찰할 수 있는 장소로 유명하다. 산비탈을 타고 흐르는 붉은 용암이 식물을 덮치면 생명을 이루는 중합체의 화학결합이 뜨거운 열로 인해 끊어져 기체 상태로 분산된다. 이보다 훨씬 평온한 상태를 상상해보자. 건조 상태의 아미노산 혼합물을 90도 정도로 가열하면 수분을 잃은 아미노산들이 서로 이어져 아미노산 중합체가 형성된다. 이것이 바로 단백질이다. 화학반응은 양(兩) 방향으로 일어난다. 생명의 기원을 위해선 단백질의 분해 속도보다 합성 속도가 빨라야 한다. 복잡성이 높아지는 방향으로 화학반응을 이끌었던 초기 지구의 조건은 무엇일까.

1980년 미국 워싱턴대학의 존 버로스 교수팀은 생명이 존재할 수 있는 가장 높은 온도를 찾아 나섰다. 이들은 잠수정을 타고 깊은 바닷속으로 들어가 열수분출구(熱水噴出口)를 탐사했다. 열수분출구는 깊은 바다의 지각을 떠받치는 구조판에 균열이 생긴 곳에 존재한다. 여기선 300도까지 가열되고 황화철을 비롯한 광물을 많이 함유한 극히 뜨거운 물이 금 간 암석에 스며든다. 이 틈을 타고 올라온 열수가 4도의 차가운 바닷물과 만나게 된다. 물이 100도에서 끓는다는 것은 상식이다. 하지만 이는 1기압이란 대기 조건에서만 그렇다. 300도의 바닷물을 순간적으로 수면으로 가져가면 폭발하듯 증발해버릴 것이다. 하지만 깊은 바다는 워낙 수압이 세 물이 끓지 않는다. 열수분출구 주변에서 찬물을 만난 광물은 더 이상 물에 녹지 못하고 석출(析出·결정형 고체가 녹은 용액에서 결정이 만들어지는 것)돼 굴뚝 같은 구조가 만들어진다. 굴뚝 속으론 뜨거운 물이 쉼 없이 흐른다. 존 버로스 교수팀은 광물 기둥을 끊어 세균이 존재하는지 확인했다. 굴뚝 어디에서나 세균을 찾을 수 있었다. 현재까진 121도의 온도 범위에서도 생명이 살 수 있다는 사실이 확인됐다. 생명의 생존 가능 범위는 이보다 더 넓을 것으로 추정된다. 83년 버로스 교수팀은 열수분출구 주변에서 생명이 처음 시작됐을 것이란 논문을 발표했다.

긴 RNA 사슬이 깊은 바닷속 열수분출구의 다공성(多孔性) 암석 속에 숨어들었고, 이곳의 독특한 온도 조건이 복잡한 생물체가 진화할 수 있도록 도왔다는 것은 이제 과학자들 사이에서 상식으로 통한다. 독일 뮌헨대학의 디터 브라운(Dieter Braun) 교수는 위와 아래가 뚫린 굴뚝을 가정하고 다음과 같은 가설을 세웠다. “굴뚝엔 다양한 길이의 RNA 분자들이 가득 차 있으며 열 때문에 위쪽에 나 있는 구멍으로 솟아오르게 된다. 그중 일부는 꼭대기 구멍으로 탈출하고 일부는 다시 아래로 내려간다. 기다란 사슬은 짧은 사슬보다 굴뚝에 더 많이 축적된다. 굴뚝 내부에서 긴 사슬은 지속적으로 영양분을 공급받아 계속 증식할 수 있다.”

브라운 교수팀은 자신의 가설을 증명하기 위해 유리로 된 모세관 망(網)을 이용해 다공성 암석을 구현했다. 구멍에 물을 채우고 한쪽에서 열을 가했다. 이어 구멍의 아래쪽에서 DNA가 구멍 속으로 들어가게 했다. RNA로 실험하는 게 훨씬 이상적이지만 실험실에선 RNA보다 DNA를 복제하는 게 훨씬 쉬워서다. 실험 결과 기다란 DNA가 짧은 DNA 사슬보다 모세관에 더 많이 축적된다는 사실이 확인됐다. 연구팀은 “긴 RNA 사슬은 열수분출구 암석의 구멍 안에서 증식해 수가 많아졌고, 짧은 RNA 사슬은 물에 희석돼 사라졌을 것”이란 결론을 내렸다. 이 결과는 올해 1월 26일자 ‘네이처 케미스트리’(Nature Chemistry) 온라인판에 실렸다.

생명 이루는 1차 성분 모두 화학적으로 합성
생명은 단순히 원소의 집합체가 아니다. 지방·탄수화물·단백질·핵산과 같은 중합체 분자가 존재하고, 이들의 자가 촉매 작용으로 복제(複製)할 수 있어야 비로소 생명이라고 할 수 있다. 중합체 분자는 지방산·단당류·아미노산·핵염기와 같은 각각의 단위체(體)로 존재해야 한다. 이런 단위체의 기원이 될 만한 후보는 다양하다. 운석이나 혜성일 수 있고 지구 자체일 수도 있다. 중요한 것은 생명을 이루는 1차 성분(단위체)들이 모두 화학적으로 합성됐다는 사실이다. 화학과 물리법칙은 보편적이다. 따라서 액체 상태의 물, 에너지원 그리고 유기탄소화합물만 있다면 어느 행성에서라도 생명이 생길 수 있을 것이다. 지구의 자매 행성인 화성에 한때 얕은 바다가 있었다는 증거에 흥분하는 이유가 바로 그것이다.



이정모 연세대 생화학과와 동 대학원을 졸업했다. 독일 본 대학교에서 공부했으나 박사는 아니다. 안양대 교양학부 교수 역임. 『달력과 권력』 『바이블 사이언스』 등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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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방연구원 전력발전연구부ㆍ군비통제센터를 거쳐 1994년 중앙일보에 입사한 국내 첫 군사전문기자다. 국방부를 출입한 뒤 최장수 국방부 대변인(2010~2016년)으로 활동했다. 현재는 군사안보전문기자 겸 논설위원으로 한반도 군사와 안보문제를 깊게 파헤치는 글을 쓰고 있다.

박용한 연구위원 : park.yonghan@joongang.co.kr (02-751-5516)
‘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