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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재숙의 ‘新 名品流轉’] 60년 만에 나타난 전설의 국보급 한시

조선 영조 때 시인 석북 신광수의 ‘관서악부’가 1950년대 사라졌다가 60여 년 만에 돌아왔다. [사진 KBS]
한때 고미술상이 즐비해 ‘한국의 유리창(琉璃廠·베이징의 고서·미술품 거리)’이라 불렸던 서울 인사동에는 골동품에 관한 전설 같은 옛 이야기들이 입에서 입으로 전해온다. 그중 하나가 석북(石北) 신광수(1712~75)의 ‘관서악부(關西樂府)’에 얽힌 사연이다. 석북은 조선 영조 때 문인으로 가난 속에서도 출중한 시를 남긴 당대의 문장가였다. 과거 운이 얼마나 없었던지 63세 인생에서 환갑이 돼서야 겨우 노인에게만 시험이 허락되었던 기로과(耆老科)에 장원 급제할 정도로 불운한 삶을 살다 갔다.

악부는 인정과 풍속을 읊은 한시(漢詩)의 한 형식으로 ‘관서악부’는 평양의 역사·지리·풍속 등을 108수, 3000자가 넘는 장편으로 묘사한 명문장이었다. 그 표현 기법이 얼마나 섬세하고 절절했던지 ‘백팔진주(百八眞珠)’란 별명이 붙을 정도였다. ‘관서악부’는 석북의 친구인 번암(樊巖) 채제공(1720~99)이 평양감사로 부임한 뒤 당대 최고의 시인인 벗에게 어렵게 졸라 얻어 낸 명작이었다. 석북은 평양 산천을 두루 돌아본 뒤 마음에 쌓아두었던 소회를 쏟아낸 노래를 짓고 나서 얼마나 흡족했던지 우정을 나누던 당대의 명필이자 화가인 표암(豹菴) 강세황(1713~91)에게 편지를 띄웠다. “그대의 멋진 글씨로 이 시를 써 준다면 촌부(村婦)가 서시(西施·중국의 4대 미인으로 꼽히는 춘추전국시대 절색)가 되지 않겠는가.”

석북이 이 시를 완성한 해는 1774년. 그해 말이나 이듬해 초에 표암에게 이런 편지를 보냈고 애석하게도 석북은 75년 4월에 세상을 떴다. 표암은 석북의 죽음을 슬퍼하며 9월에 이 시를 써서 아들에게 보냈으나 이 사실을 모르는 후대 학계에서는 화가로 더 이름을 날린 표암이 시를 묘사한 그림을 그려 보낸 것으로 넘겨짚고 있었다. ‘관서악부’가 1950년대에 인사동에 모습을 드러냈다가 이후 행방을 감춘 탓이었다.

지난 1일 진실이 밝혀졌다. KBS1 ‘TV쇼 진품명품’에 60여 년 만에 ‘관서악부’가 등장한 것이다. 고문서 감정위원으로 출연한 김영복(옥션 ‘단’ 대표)씨는 “인사동에서 풍문으로만 듣던 ‘관서악부’를 두 눈으로 보게 돼 행복하다”며 표암이 부친 발문을 소개했다. “내 친구 신석북이 이 관서악부 108수를 보이며 나에게 글씨를 써 달라 한다. 내가 쓴다고 허락하고 실현하지 못하고 있었는데 한 달이 지나지 않아 석북이 갑자기 세상을 떠났다. 지금 내가 다시 쓰면서 깨닫지 못하는 사이에 눈물이 떨어져 종이를 적셔 누차 붓을 놓았다. 이제 다 쓰고 나서 멀리 있는 그 아들에게 부친다. 석북이여, 내가 식언을 하지 않았음을 아는가 모르는가. 슬프고 슬프구나.”
석북의 8대 손인 신홍순(전 예술의전당 사장)씨가 출품한 ‘관서악부’는 이날 최종 감정가 2억원으로 평가받았다. “차라리 가격을 매겨주지 않기를 바랐다”는 후손의 소감이 깊은 여운을 남긴다. 시인 석북, 정치가 번암, 화가 표암, 세 사람의 우정이 엮어낸 한 편의 인생 드라마에 어찌 세속의 값을 매길 수 있을까.


정재숙 중앙일보 논설위원 겸 문화전문기자 johanal@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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