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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부의 심리적 마지노선 … ‘살짝’ 부담되는 정도

가끔 뉴스를 통해 어려운 환경에 있는 분들이 평생 모은 재산을 학교나 자선단체에 기부했다는 소식을 듣곤 한다. 그런 뉴스를 볼 때마다 고개가 저절로 숙여진다. 노점상을 하면서, 혹은 고물이나 폐지를 팔아서 마련한 그 한 푼 한 푼이 얼마나 절실하고 소중할까.

난방비를 아끼기 위해 한겨울에도 불을 거의 때지 않으면서 힘들게 모은 돈을 어려운 사람을 위해 기부하는 쪽방촌 독거노인도 있었다. 그 노인은 모은 돈을 기부하러 갈 때가 가장 행복하다고 말하며 웃었다. 그 환한 미소에서 척박함 속에서도 빛을 발하는 인간정신의 숭고함마저 느껴졌다.

만약 그보다 형편이 훨씬 좋은 나에게 평생 모은 돈을 기부하라고 한다면 선뜻 응할 수 있을까. 일생 동안 모은 돈은 아니더라도 매달 수입에서 그분들과 같은 비율의 액수를 기부하라고 한다면 어떨까. 솔직히 자신이 없다. 남의 미담을 들으며 대단하다고 감탄을 할지언정 그것을 스스로 실천할 용기는 없는 것이다.

그 비겁함을 조금이라도 상쇄시키고 싶었던 것일까. 나도 쪼금 기부를 하기는 한다. 통장에서 매달 일정 금액이 빠져나가는데, 그 액수가 너무 적어서 말하기도 부끄러울 정도다.

게다가 이렇게 된 데는 나 자신의 자발적 의지라기보다 상황에 떠밀려 그렇게 된 측면이 크다. 친구가 일하는 국제아동구호단체에 얼마, 대학 선배가 관여하는 빈민운동기구에 얼마, 후배가 일하는 국제인권단체에 얼마, 지방의 한 여성단체에 강의하러 갔다가 후원자가 되어 달라는 요청에 마지못해 얼마, 길거리에서 우연히 마주친 장애인 후원 행사 요원에게 붙들려(?) 얼마. 뭐 이런 식이다. 친구·친지·선배·후배가 “우리가 남이가”라고 요청한 것을 거절하지 못해 들어주다 보니 본의 아니게 여러 단체에 기부하게 되었다.

물론 시작은 아주 미미했다. 비록 매달 내는 것이지만 워낙 소액이다 보니 타격이 없었다. 그 돈 없어도 사는 데 전혀 지장이 없을 정도였다. 그런데 이 사람 저 사람 부탁을 들어주다 보니 기부하는 단체가 점점 늘어나기 시작했다. 그래서 지금은 사는 데 ‘전혀’ 지장이 없는 정도는 아니고 ‘살짝’ 지장이 있는 정도가 되었다. 이것은 내가 순전히 인간적인 청을 거절하지 못해서 생긴 부작용(?)이다.

나는 프리랜서라서 매달 수입이 일정하지 않다. 수입이 그럭저럭 괜찮을 때는 문제가 되지 않는데 수입이 아예 없거나 적을 때는 그것조차도 부담이 된다. 그럴 때면 내면의 목소리가 나를 유혹한다.

“10년 넘게 했으면 할 만큼 한 거야. 큰돈이라면 몰라도 네가 그까짓 푼돈 안 낸다고 그 단체가 어떻게 되는 건 아니잖아.”

그런데 이상한 것은 그럴 때마다 마음 한구석에 그렇게 하면 안 된다는 저항이 있다는 것이다. 왜 그런지는 나도 정확히 모르겠다. 양심의 소리일까. 그것마저 안 하면 그동안 내가 아이들에게 혹은 주변 사람들에게 소외계층 어쩌고저쩌고 했던 말들이 모두 위선이 될 것 같아 겁나기도 하고, 스스로에게 부끄러울 것 같기도 하고, 보다 원초적으로는 그것마저 안 하면 벌 받을 것 같기도 하고, 그렇게 하면 복 받을 것 같기도 하고. 뭐 여하튼 아주 복잡한 심정이다.

어느덧 내가 매달 하는 기부는 내 심리적 마지노선이 되었다. 형편이 좋아지면 더 늘릴지 모르겠지만 아직은 그럴 생각이 없다. 다만 이것만은 지키겠다고 다짐한다. 만약 내가 이 정도의 소액도 기부하지 못할 정도라면 그때는 내 경제 사정이 최악에 이르렀다는 것을 의미한다. 나는 그 최악의 상황 앞에 마지노선을 친 것이다. 그러고는 기도한다. 제발 나에게 그 정도의 소액조차 기부할 수 없는 상황이 오지 않기를. 아니, 보다 솔직하게 말하면 내 경제 사정이 그만큼 나빠지지 않기를.



진회숙 서울시향 월간지 SPO의 편집장을 지냈다. 서울시향 콘서트 미리공부하기 등에서 클래식 강의를 하고 있다. 저서로 『클래식 오딧세이』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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