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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창원 박사와 함께하는 ‘어린이 프로파일러 설록의 사건 일지’〈8〉혈흔 형태 분석 실험

일러스트=오은우

“분석관님, 현장 사진 중 혈흔을 찍은 것들만 다시 보여주실 수 있나요?”

설록이 요청하자 조 분석관이 슬라이드 순서를 다시 편성해 스크린에 띄우며 말했다.

“자, 우선 시신 주변을 먼저 볼까?”

“사진을 원거리, 중거리, 근거리, 접사로 단계별로 참 잘 찍으셨네요. 접사 촬영에는 자를 옆에 두고 찍으셔서 혈흔의 크기를 확연히 알 수 있구요.”

“하하, 우리 과학수사 요원들이 들으면 무척 좋아할 칭찬이구나.”

“시신 주변 바닥에서 낙하혈흔과 낙하연결흔이 꽤 많이 보이네요. 비슷한 크기들인 걸로 보아 같은 높이에서 떨어진 것들이고, 방향성도 일정하고…”

“그렇지? 돌기들이 같은 오른쪽 위를 향하고 있는 낙하연결흔임이 분명하지?”

“잠깐만요!”

갑자기 홍주가 낮은 소리로 외쳤다.

“왜? 뭐 중요한 걸 발견했어?”

“아니, 정말 죄송한데 저희도 알아듣게 좀….”

“아, 그래. 또 우리 둘만 신나게 토론했구나. 설록이가 혈흔 형태 분석에 대해 친구들에게 설명 좀 해 주는 게 어떨까?’

“네. 음…. 피가 어떤 물질들로 이루어져 있는 지는 학교에서 다 배웠지?”

“그럼, 혈액의 90%는 물, 8%는 단백질, 나머지는 칼슘·철분 등 무기염류!”

대홍이가 자신있게 대답하자 역시 학교 공부는 대홍이가 최고라며 홍주가 어깨를 두드렸다.

“대홍이가 말한 것처럼 핏속에는 물 말고도 단백질 같은 다른 구성 물질들이 있어서 끈적거려. 끈적거리는 정도, 즉 피의 점도가 물보다 5배 높아.”

“그래서 피는 물보다 진하다고 하는구나.”

진혁이가 왠지 무척 슬픈 표정을 지으며 내뱉듯이 말했다. 설록 역시 슬픔이 눈에 조금 어렸다.

“그래서 우리 몸 안에서 피가 나와 이동을 하게 되면 혈액 특유의 무게와 점도 때문에 독특한 형태를 만들어 내지.”

홍주가 이어받았다.

“그걸 혈흔 형태라고 하고 분석하는구나.”

“그렇지. 그런데, 혈흔 형태를 분석하려면 우선 관찰을 잘해야 하고, 수학을 이용해야 해.”

수학이라는 단어에 홍주와 진혁이의 얼굴이 눈에 띄게 어두워졌다. 조 분석관이 인자한 미소를 띠우며 덧붙였다.

“하지만, 너무 걱정하지는 말아라. 수학은 지금부터 열심히 해도 늦지 않단다. 그리고, 수학만 생각하면 머리가 아픈 사람들을 위해서 혈흔 측정과 계산을 대신해 주는 컴퓨터 프로그램도 개발되어 있단다, 하하.”

설록이 설명을 이어나갔다.

“혈흔은 그 모양에 따라 여러가지가 있는데, 우선 조금 전 분석관님과 살펴봤던 낙하혈흔은 말 그대로 위쪽에서 아래쪽으로 떨어진 피의 모양이야. 중력 이외의 다른 힘이 특별히 작용하지 않은 것이지.”

진혁이 끼어들었다.

“맞아, 축구시합 하다가 상대 수비랑 부딪혀서 코피가 났는데 고개를 숙이고 가만히 내려 보니까 피가 떨어진 모양이 동그랗고, TV에서 본 우유 선전처럼 주변으로 돌기 같은 것들이 삐져 나오더라.”

“혹시 그 상태에서 걸어가 본 적 있니? 그때 바닥에 떨어진 핏방울 모양과 돌기들 방향이 어땠어?”

설록의 질문에 진혁이가 고개를 갸우뚱했다.

“기억이 안 나. 오늘처럼 혈흔 형태 분석을 배운 다음에 코피가 났으면 분명히 관찰했을 텐데, 아쉽다.”

“다음에 또 코피가 난다면 한 번 고개를 숙이고 피가 떨어지는 모양을 보면서 걸어가 봐. 그러면 아마 걸어가는 방향 쪽으로 돌기들이 뻗치는 모습을 관찰할 수 있을 거야.”

그때 대홍이가 갑자기 소리를 질렀다.

“저것 봐! 시신 옆에 떨어진 낙하혈흔의 돌기들이 한쪽 방향을 향하고 있어!”

“제법인데? 공부를 하고 나서 세상과 사람, 사물을 보면 그 전에는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이게 마련이지. 그게 바로 공부의 묘미란다.”

조 분석관이 흐뭇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지만 아이들은 이미 혈흔 모양들에 사로잡혀 조 분석관의 말이 들리지 않는 듯했다.

“저건 동그란데, 요건 타원형이야, 돌기들의 모양과 길이도 다양해!”

홍주의 들뜬 목소리에 설록이 응답했다.

“방향과 이동 속도에 따라 모양이 달라지지.”

“자, 이제 혈족적을 한번 볼까?”

조 분석관이 슬라이드를 다음 화면으로 넘겼다.

“혈족적이라면, 피가 묻은 발자국을 말하는 것이죠?”

대홍이가 중요한 발견을 한 듯 자신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

“그렇지, 똑똑하구나. 그럼 혈족적의 의미는 무엇일 것 같니?”

“네? 의, 의미요?”

대홍이가 머뭇거리자 홍주가 자신 있게 대답했다.

“그 발자국의 주인이 살인범이라는 뜻이죠!”

그러자 설록과 조 분석관이 서로 마주보며 빙긋이 웃었다.

“맞기도 하고, 틀리기도 하다.”

조 분석관의 대답에 홍주의 얼굴이 묘하게 일그러졌다. 설록이 설명을 이어갔다.

“신발에 피가 묻었으니 피해자의 몸에서 피가 흘러나오는 순간이나 그 후에 현장에 있었다는 것은 사실이지.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꼭 그 사람이 살인범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다는 말씀이야.”

“피해자가 죽은 이후에 현장에 온 사람일 수도 있겠구나.”

대홍이가 이제야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말하자 진혁이도 거들었다.

“아니면, 피해자가 피를 흘릴 때 현장에 함께 있었지만 살인범은 아닐 수도 있겠네.”

홍주는 여전히 자기가 틀리지 않았다는 확인을 받고 싶다는 듯 목소리를 높였다.

“그렇다고 해도, 현장에 있는 피 묻은 발자국 중에 범인 것은 분명히 포함되어 있을 것 아니겠어요?”

그러자 조 분석관이 환하게 웃으며 동의했다.

“맞다, 아주 중요한 지적이다. 그래서 현장에 있는 흔적들은 모두가 다 ‘잠재적 증거’들이란다. 사건과 관련이 없다는 확인이나 증명이 이루어지면 증거가치가 없어져 배제하지만, 그 전에는 모두 발견하고 수집하고 분석하고 보관해야 한다.”

설록도 거들었다.

“증거물의 위치나 상태·색깔 등 모든 것들이 변경이나 훼손되지 않은 상태로 발견되고 수집되고, 이동과 보관이 이루어졌다는 사실이 기록되어 있어야 법정에서 증거능력을 인정받게 되는 것이지. 이 원칙을 ‘증거의 연계성’, 영어로 ‘chain of custody’ 라고 해.”

아이들은 설록의 지식에 감탄해 벌린 입을 다물지 못했다. 진혁이가 말문을 열었다.

“맞아, 누군가 날 모함하기 위해 살인사건 현장에 가서 내 지문이 묻은 칼을 몰래 놔둘 수도 있잖아?”

“사건 현장에는 가지도 않았는데, 내가 먹던 음료수 병을 누군가 경찰서에 가지고 가서 증거들 속에 넣어 두면 큰 일 나잖아요!”

대홍이도 거들자 설록이 고개를 끄덕였다.

“1994년 미국에서 일어났던 ‘오 제이 심슨(O.J. Sim pson)’ 사건에서 실제로 그런 일이 있었어. 마크 퍼먼이라는 형사가 심슨의 전 부인이 살해당한 현장에서 발견했다면서 피 묻은 장갑과 바닥에서 수집한 피들을 법정에 증거로 제출했는데, 사실은 퍼먼 형사가 심슨을 불러 조사에 필요하다면서 뽑아 둔 것이었어.”

설록의 이야기에 홍주가 흥분하며 화를 냈다.

“아니, 어떻게 그럴 수가 있어? 말도 안돼. 우리 엄마·아빠도 경찰관이지만, 절대 그런 짓 안 해! 한 번이라도 그런 짓을 하면 사람들이 계속 경찰을 의심하고 안 믿을 것 아냐? 나빠!”

분위기를 바꾸려는 듯 설록이 스크린을 향해 돌아서더니 사건 현장 벽에 튄 혈흔에 대해 말하기 시작했다. 흉기 등 물건에 묻은 피가 휘두르는 동작 등에 의해 뿌려지며 만들어지는 ‘이탈혈흔’과 머리 등 뼈가 있는 신체 부위를 망치나 각목 등 둔기로 내려쳐 그 충격으로 피가 튀어나가 만들어지는 ‘충격비산혈흔’ 형태를 구분하는 방법에 대해 차분하게 설명했다. 피가 튀거나 뿌려지는 방향에 있던 물체가 막아서는 바람에 벽·바닥 등, 그 부분만 혈흔이 없는 현상인 ‘공간흔’의 중요성에 대해 말하던 설록이 지친 모습을 보이자 조 분석관이 나섰다. 그는 설명에 앞서 다양한 혈흔 형태가 찍혀있는 사진을 스크린에 띄웠다.

“자, 중요한 내용은 설록이가 거의 다 말했으니 딱 두 가지만 더, 재밌는 실험을 통해 알아보자. 이 혈흔들은 어떤 피 묻은 물건이 놓여있던 자국, 즉 ‘형태전이혈흔’들이다. 각 혈흔들이 어떤 물건에서 묻은 것인지 한번 맞춰볼까?”

아이들은 사진을 보며 답을 찾기 위해 집중했다. 얼마나 신경을 곤두세웠는지 이마와 두 눈썹 사이에 굵은 주름이 생기고, 얼굴이 빨개지고, 눈이 충혈되기 시작했다. 대홍이가 먼저 “저기 맨 윗줄 세 번째는 식빵 흔적 같아요” 라고 하자 진혁이가 뒤를 이었다.

“그 밑에 있는 것은 축구공에 묻은 피 흔적이 틀림없어요!”

홍주도 뒤질세라 답을 말했다.

“제일 밑에 줄 가운데에 있는 건 머리띠예요.”

하지만 조 분석관이 슬라이드를 넘겨 답을 보여주자 모두 실망에 찬 한숨을 내쉬었다.

“자, 아마 모두 자기가 가지고 있거나, 잘 사용하거나, 좋아하는 것들에서 답을 찾았을 거야. 하지만, 범죄사건과 관련된 물건들이 내 주위에 있거나 내가 잘 아는 물건들이 아닐 가능성은 매우 크지. 그래서 범죄수사를 하는 사람은 선입견과 편견, 그리고 자신의 경험의 한계에서 벗어나야 해.”

설록도 덧붙였다.

“반드시 관찰하고, 기록하고, 측정하고, 비교하고, 분석하고, 실험하고, 검증하고….”

세 아이들은 꼭 그렇게 하겠다는 듯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다음 실험은 ‘발혈점 추정’이었다. 끈적이는 점성을 가진 액체인 피는 물체에 직각으로 부딪히면 원 형태가 된다. 직각이 아닌 다른 각도일 때는 그 각도에 따라 타원형을 이룬다. 그 타원의 중앙을 지나는 가장 긴 선과 가장 짧은 선의 길이를 측정해서 계산하면 충돌 각도를 알아낼 수 있는 것이다. 그렇게 벽에 튀어 있는 혈흔 하나 하나의 충돌각도를 측정한 뒤, 그 각도대로 줄을 매어 직선으로 고정시키면 모든 줄들이 만나는 지점이 있다. 그 지점이 바로 피가 튀거나 뿌려지기 시작한 지점, 즉 ‘발혈점’이다.

발혈점을 알게 되면 어떤 높이, 어떤 자세에서 어떤 행동에 의해 피가 튀거나 뿌려진 것인지를 알 수 있기 때문에 용의자의 키, 오른손잡이인지 아니면 왼손잡이인지, 어떤 행동을 했는지 등 범인의 특성과 사건의 진실을 밝혀내기 위해 필요한 중요한 사실들을 알아낼 수 있다. 오랜 시간 처음 듣는 어려운 용어들이 가득한 실험을 하며 힘은 많이 들었지만, 아이들의 얼굴에는 새로운 것을 배우는 기쁨과 사건 해결에 가까이 다가간다는 흥분에 가득 찬 밝은 빛이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표창원 박사는… 1966년생. 범죄심리학자. 탐정 셜록 홈스에 매료돼 경찰대학에 진학했다. 화성 연쇄살인 사건을 경험하고 전문적인 범죄수사를 배우기 위해 영국으로 유학, 1997년 엑서터 대학에서 범죄학 박사를 받았다. 한국 최초 범죄심리분석관으로 활동하다 2001년 경찰대 교수로 임용, 2012년까지 재직했다. 퇴직 이후 표창원의 범죄과학연구소를 열고 범죄심리학에 관한 연구를 활발히 펼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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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방연구원 전력발전연구부ㆍ군비통제센터를 거쳐 1994년 중앙일보에 입사한 국내 첫 군사전문기자다. 국방부를 출입한 뒤 최장수 국방부 대변인(2010~2016년)으로 활동했다. 현재는 군사안보전문기자 겸 논설위원으로 한반도 군사와 안보문제를 깊게 파헤치는 글을 쓰고 있다.

박용한 연구위원 : park.yonghan@joongang.co.kr (02-751-5516)
‘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