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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대 간 일자리 전쟁론’의 허실 -과연 아버지가 내 일자리 빼앗은 걸까?

한국이 빠른 속도로 늙어가고 있습니다. 고령화 사회를 넘어 고령 사회가 목전입니다. 노인을 위한 사회적 준비와 배려도 점점 개선 되고 있습니다. 동시에 미래 세대를 키우려는 노력도 필요합니다. 현실은 좀 다릅니다. 요즘 20~30대의 삶은 그리 녹록하지 않습니다. 대학 입시라는 높은 벽을 넘으면 취업이라는 일생일대의 장애물이 놓여 있습니다. 꿈 같은 취업을 하고, 서른이 돼도 삶은 여전히 팍팍합니다. 쥐꼬리 만한 월급에 집 한 채 마련하는 건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멀리 내다보며 살기에는 결혼·육아·승진 등 어깨의 짐이 너무 버겁습니다. 젊은이들이 미래를 설계하지 못하는 사회는 결코 건강한 사회가 아닙니다. 이들의 작은 목소리를 지면에 옮깁니다. 세대갈등을 부추기는 공간이 아닌 아버지 세대와 소통하는 공간으로 이해되길 바랍니다.


경제 사정이 어려워질 때마다, 일자리 부족이 수면 위로 떠오를 때마다 정부가 꼭 하는 일이 있습니다. 대기업에 손을 벌리는 겁니다. 규모가 좀 되는 대기업 회장님을 청와대에 불러다가 신규 고용을 늘려달라 부탁하는 거지요. 그 대신 여러 혜택을 약속하기도 하는데 ‘어려운 점은 없느냐?→규제 중 꼭 해결할 게 있느냐?→말씀하시면 신경 써 보겠다→그러니 고용 확대에 힘을 좀 실어 달라’ 대강 이런 흐름으로 진행됩니다. 표면적으로는 부탁이지만 사실상 압박입니다. 그러니 정권 초기에는 제법 효과가 있습니다. 대기업은 너도나도 올해 신규 고용을 늘리겠다 발표합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고, 정권 말기로 가면 흐지부지 됩니다. 역대 정권에서 권력의 하락 그래프와 대기업 신규 고용 하락 그래프는 대개 일치합니다. 괜찮습니다. 새 대통령이 등장하면 또 다시 상승하겠죠. 물론 길어야 3년이겠지만.

대기업 팔 비틀어 일자리 창출

정부는 해바라기처럼 대기업만 바라보는데 이제는 그들도 ‘죽겠다’며 아우성입니다. 사실 그럴 만합니다. 글로벌 경기 침체가 길어지면서 기업 실적이 예전만 못해서입니다. 2013년 국내 기업들은 1000원어치를 팔아 평균 39.2원의 순이익을 남겼습니다(2013년 기업활동조사). 2011년 51.7원, 2012년 47.2원에 이어 3년 연속 하락했고, 글로벌 금융위기가 발생한 2008년(32.5원) 이후 최저치로 떨어진 겁니다. 건설업과 운수업이 특히 안 좋았습니다.

지난해엔 더했습니다. 불황이 제조업 전반으로 전파됐죠. 글로벌 1위를 향해 폭풍처럼 질주하던 삼성전자는 주력인 스마트폰 부문에서 중국 기업의 추격에 발목이 묶였습니다. 위로는 애플이 떡 하니 버티고 있는데 밑에서 치고 올라오니 매우 곤란한 상황입니다. 현대차는 사상 최대치인 연 800만대(기아차 포함)를 판매하고도 영업이익이 제자리입니다. 엔저를 등에 업은 일본 제조사의 가격 공세에 제 값 받고 차를 못 판 탓이지요. 1, 2등이 이럴 진대 나머지 기업들이 괜찮을 리 없습니다. 세계 1등 이라던 한국의 조선 회사들은 수조원의 적자에 허덕이고, 바닥을 향해 돌진하는 유가 때문에 정유 업계도 울상입니다. 전통적으로 유가 하락기에 한국 경제는 날개를 달았지만 그 재미를 못 볼 정도로 헤매고 있습니다. 기업이 당장 고용을 늘리기 조심스러운 상황인 건 맞습니다.

이해는 하지만 우리나라 기업이 너무 징징대는 건 아닌지 따져볼 필요도 있습니다. 요즘 청년실업 문제를 제기하면 꼭 따라나오는 키워드가 하나 있습니다. ‘세대 간 일자리 전쟁’이라는 건데 내용은 간단합니다. 일자리가 부족하니 아들과 아버지가일자리를 차지하려 싸운다는 거죠. 그런데 정말 아버지가 퇴직 안 하고 버텨서 아들이 일할 곳을 못 찾고 있는 걸까요? 고령화 시대에 아버지도 좀 더 일해야 하는데 청년 고용 때문에 일자리가 부족하다는 게 진짜 맞는 걸까요?

사실 이 논쟁은 노동계에서 제법 오래된 주제입니다. 관련 연구도 많이 진행됐습니다. 노동계와 재계가 첨예하게 대립했던 내용이죠. 세대 간 일자리 전쟁론의 논리 구조는 ‘한정적인 노동시장 일자리 총량 →정년연장→청년 취업자의 신규 일자리 감소’ 정도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세대 간 일자리 전쟁론이 맞다’고 주장하는 이들을 A, ‘잘못된 주장’이라고 보는 이들을 B라고 하죠. B는 “일자리의 대체관계는 구직자의 선호기업, 업종, 직업에 따라 차이가 있다”며 “A가 ‘노동 총량의 오류(Lump of Labor Fallacy)’에 빠져 있다”고 주장합니다. 청년들이 선호하는 직장은 대기업 또는 공기업인데 아버지 세대가 주로 일하는 직장은 중소기업이고, 청년들은 주로 사무직으로 일하지만 아버지는 현장직 근로자가 많다는 겁니다.



실제로 통계청의 2014년 상반기 직업 분류 단위 연령별 취업자 비율을 살펴보면 아들 세대(15~39세)는 주로 사무직이나 전문적 업무를 하는 반면, 아버지 세대(50세 이상)는 관리자 비중이 매우 크고, 기능공이나 단순노무 비중도 아들 세대에 비해 훨씬 높습니다. 나아가 B는 “정년연장에 따라 임금피크제를 도입하면 고령 인력에게 지급하는 평균 노동비용이 감소하고, 이는 장기적으로 기업의 수익성 증대에 기여하기 때문에 신규 일자리 산출효과가 있다”고 주장합니다.

A의 생각은 다릅니다. 이들은 “당장은 구직자의 선호 기업·업종·직업에 따라 세대 간 차이가 있겠지만 중·고령 임금 근로자가 청년층에 비해 빠르게 늘고 있다는 점을 감안해야 한다”고 반박합니다. 숫자가 많은 아버지 세대의 퇴직이 늦어짐에 따라 인력의 신진대사가 더뎌지고 이는 분명 기업의 수익성에 악영향을 미친다는 거죠. 특히 대기업의 경우 대부분의 부서가 팀 단위로 운영되는데 고령자를 팀의 일원으로 유지시키려면 신규 입사를 제한할 수밖에 없다는 주장입니다. A는 B가 주장 하는 일자리 산출효과도 크지 않다고 봅니다.

어쨌든 주장을 정리해보면 대략 ‘아직까진 그렇지 않으나 앞으로는 그럴 수 있다’ 정도로 요약할 수 있겠습니다. 주장의 옳고 그름을 떠나 ‘세대 간 일자리 전쟁이 심각하다’는 인식이 국민들 사이에 퍼질수록 득을 보는 건 기업입니다. 변명거리가 많아지니 운신의 폭도 넓어지는 거죠. 일단 ‘여력은 100인데 양쪽 다 챙길 수 없으니 이건 사회적으로 해결할 문제지 기업의 책임이 아니다’라고 주장할 수 있습니다. ‘아버지 월급 주느라 도저히 아들을 뽑을 수가 없다’와 같이 비난의 화살을 아버지 세대로 돌리는 효과도 있죠. 전국경제인연합회 등 주요 경제단체가 내는 노동 관련 보도자료를 잘 살펴보면 대부분 ‘세대 간 일자리 전쟁이 치열하다’는 뉘앙스를 풍깁니다.

정년연장은 이미 결정된 사안입니다. 이 큰 태풍을 피해가야 하는 기업은 불쌍한 척을 해서라도 방어책을 마련해야 합니다. 그러려면 국민의 이해가 필요한데 ‘세대갈등’만큼 섹시한 화두가 없습니다. 글로벌 경기 침체까지 맞물렸으니 ‘우리도 너무 어렵습니다’라고 토로하기 딱 좋은 상황인 거죠. 최근엔 고용노동부조차 동조하는 분위기입니다. 노동부는 얼마 전까지 B의 손을 들어줬습니다. 2013년 12월 ‘고령자 고용이 청년 일자리를 잠식한다는 견해는 기본 전제가 잘못된 오류이며, 일자리의 수는 고정된 것이 아니라 임금수준·생산성 등 경제 여건에 따라 끊임없이 변화한다’는 내용의 자료를 발표하기도 했죠. 그러나 최근 노동부는 마치 기획재정부의 산하 기관 같습니다. 저만의 느낌일까요?

세대 간 일자리 전쟁 진짜 심각한지 의문

국내 대기업은 이미 이런 분위기에 편승해 쏠쏠한 이득을 취한적이 있습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겪으며 기업들이 너도 나도 ‘죽을 지경’이라며 우는 소리를 하자 이명박 정부는 법인세 인하 카드를 꺼내 달래기에 나섰습니다. 외환위기 이후 10년 만에 찾아온 초국가적 위기에 국민들은 또다시 근로자 소득공제 축소를 받아들이는 등 희생을 감수했습니다. 송해 아저씨의 말처럼 기업이 살아야 일자리가 늘어나리라 기대한 거죠.

다행히 침체는 길지 않았고, 기업은 빠르게 실적을 회복했습니다. 그러나 기대처럼 고용은 늘지 않았고, 금융위기에 제대로 한 방 맞은 기업들은 투자마저 꺼렸습니다. 돈을 벌었는데 쓰진 않으니 곳간엔 양곡이 가득합니다. 2009년 270조원 가량이던 10대 그룹 상장 계열사의 사내유보금은 2013년 말 527조원으로 거의 두 배로 늘었습니다. 이명박 대통령이 수 차례 강조했던 낙수효과가 거의 없었다는 얘기지요.

최경환 경제부총리가 지난해 기업의 사내유보금에 과세하고, 배당 확대를 유도하겠다고 발표하자 대기업은 움찔했습니다. ‘사내유보금 중 실제 현금성 자산은 15%도 안 된다’고 반발하면서도 투자와 배당을 늘리겠다며 한 발 물러섰죠. 물론 기업이 투자와 배당을 늘리면 경제활성화에 도움이 될 겁니다. 그러나 일반 국민의 삶과는 거리가 좀 있습니다. 투자의 방식 중 가장 대표적인 인수·합병(M&A)은 있던 회사를 사는 것이니 신규 고용과 별 관련이 없고, 배당은 주주들에게만 돌아가는 것이니 소득 증대에 별 효과가 없습니다. 우리나라 상장사 지분은 외국인이 33%, 일반법인이 25%를 보유하고 있습니다. 개인투자자 비중은 23~25%를 오갑니다. 게다가 이 개인투자자에는 대기업 오너 등 대주주가 포함돼 있습니다. 배당 좀 늘린다고 국민들의 주머니가 묵직해지진 않는다는 뜻이죠.

핵심은 고용입니다. 일자리가 늘어야 소득이 늘죠. 이게 가장 직접적이고, 정확한 경제활성화 방안입니다. 정부가 고육지책을 내놨습니다. 노동시장을 개혁해 일자리의 패러다임을 확 바꾸자는 겁니다. 박근혜 대통령이 ‘선택이 아닌 필수 생존 전략’이라고 못 박은 내용입니다. 정규직 과보호 완화, 연공서열형 임금체계 개선 등이 골자인데 현행 2년인 비정규직 사용기한을 4년으로 늘리는 구체적인 아이디어도 나왔습니다. 당장 고용을 확 늘리기는 어려우니 가급적 장기간 고용을 유지하도록 해서 정규직 전환 가능성을 키워주자는 취지입니다.



“일자리 늘리기 어렵다면 월급이라도 더 줘야”

일리 있는 얘깁니다만 걱정스럽습니다. 4년으로 늘려놨는데 4년 뒤에 정규직 전환을 안 하면 어쩌죠? 정규직 전환 가능성을 암시하며 4년 내내 부리다 ‘미안하다’ 한 마디로 계약 해지 통보를 하면 어쩌죠? 취업에 목마른 청년들을 ‘4년짜리 인턴’으로 묶어 두는 정책으로 전락하면 어쩌죠? 최소한의 보호장치가 필요하다는 얘깁니다. 그러나 일자리를 늘리자는 말만 나오면 ‘기겁’을 하는 ‘기업’이 이 카드를 받을 리는 없습니다.

핵심은 사용기한이 아닙니다. 비정규직의 처우 개선이 먼저입니다. 비정규직과 정규직이 소득 수준만 비슷해도 아마 많은 문제가 해결될 겁니다. 기업이 고용을 못 늘리겠다면 월급이라도 더 주란 얘깁니다. 정규직 과보호가 왜 문제일까요? 사람들이 비정규직을 두려워하기 때문입니다. 정규직과 비슷한 수준의 임금·복지 혜택을 약속하면 ‘비정규직이라도 괜찮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늘어날 겁니다. 그러면 정규직 과보호 문제는 자연스레 해결되겠죠. 기업이 그렇게 원하는 노동유연성 확보도 가능해지겠네요. 대기업이 소득과 고용 안정성 둘 중 아무것도 포기하지 않은 채 노동시장 개혁에 숟가락만 얹어, 숙원 사업인 임금체계 개편이나 강성 노조 문제 해결 등만 얻어낼 심산 이라면 당장 마음을 고쳐먹어야 할 겁니다. 국민들도 이제 희생에 지쳤거든요.

누차 말하지만 기업의 가장 중요한 사회공헌은 바로 고용입니다. 불우이웃돕기에 수억원을 내놓는 것도 좋지만 고용보다 중요하진 않습니다. 그런데 나라 경제가 어려우니 우리가 먼저 나서 고통을 분담하겠다는 대기업은 눈을 씻고 찾아봐도 안 보입니다. 중소기업도 예외가 아닙니다. 청년의 눈높이를 낮추려면 구직자 스스로도 마음을 바꿔먹어야겠지만 무엇보다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임금 격차를 줄여야 합니다. 이게 안 되면 인력 미스매치 문제는 해결이 요원합니다.

대기업 임금을 낮출 순 없으니 중소기업이 더 줘야 합니다. 정말 돈이 없어서 직원들에게 월급을 못 주는 회사도 있지만 줄 여력이 있는데 고용도 안 하고, 월급도 덜 주는 중소기업이 적지 않습니다. 사람들의 관심 밖이라 압박을 덜 받고 있을 뿐이지요. 정부 지원이란 따뜻한 울타리 안에서 ‘약자(弱者) 코스프레’에 취해 있는 건 아닌지 돌아보란 뜻입니다. 대기업보다 많은 연봉에 훌륭한 복지시설을 갖춘 덕분에 인재들이 줄을 서서 문을 두드리는 지방 소재 중소기업이 지금도 많습니다.

일부 진보 정당에서는 민간 기업의 청년고용의무제 도입을 주장합니다. 대기업이 국민의 성원과 지지로 성장해왔음에도 자율적인 고통 분담을 피하고 있는 만큼 법으로 강제하자는 겁니다. 정의당은 종업원수 300인 이상 사업장에서 3% 청년의무 고용을 실시하면 매년 7만6000명의 청년이 일자리를 얻을 수 있으리라 추정하고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이 아이디어에 찬성하지 않습니다. 시장 논리 하에서 민간 기업의 고용은 철저히 기업 스스로 판단해야 한다는 생각엔 변함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기업이 청년실업 문제에 대해 계속 발을 뺀다면 이런 제 생각도 바뀔 지 모르겠습니다.

기업이 자꾸 발 빼면 청년고용의무제 주장 거세질 수도

국민이 없고, 사회가 없으면 기업도 없습니다. 어려운 때일수록 ‘기업이 왜 존재하는가?’라는 본질적 고민이 더 나은 미래로 가는 혜안을 열어줄 거라 생각합니다. 지난해 유럽 장수기업을 취재하러 간 길에 만난 한 200년 넘은 기업 CEO의 한 마디를 마지막으로 옮깁니다. 다음 번에는 ‘청춘을 좀 먹는 인턴제도’를 주제로 지혜를 모아보겠습니다.

“나와 직원, 회사와 사회는 모두 하나로 연결돼 있다. 경영자는 흔히 나와 회사를 먼저 생각하도록 교육받지만 경영자가 실제로 그렇게 한다면 그 회사는 미래를 장담할 수 없다. 눈 앞의 이익이 탐나더라도 직원과 사회를 위해 나와 회사가 무엇을 할 것인지 고민해야 한다. 언뜻 돌아가는 것처럼 보이겠지만 그래도 그 길을 포기해선 안 된다. 기업은 누구의 것도 아니다.”

글=장원석 이코노미스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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