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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속으로] 인공지능의 아버지, 기계도 생각한다

앨런 튜링의 생애를 그린 영화 ‘이미테이션 게임’(17일 개봉). 드라마 ‘셜록’ 시리즈로 인기를 얻은 베네딕트 컴버배치가 앨런 튜링을 연기한다. [사진 미디어로그]


앨런 튜링의

이미테이션 게임

앤드루 호지스 지음

김희주·한지원 옮김

동아시아, 872쪽, 3만6000원






영국 수학자 앨런 튜링(1912~54)에게 인간은 어쩌면 특별하거나 고귀한 존재가 아닐지 모른다. 그는 두뇌를 신성하게 여기지 않았다. 두뇌처럼 작동할 수만 있다면 기계도 생각할 수 있을 거라 믿었다. 당시 이런 인공지능의 존재 가능성에 대해 회의적인 의견이 절대적이었다. 천재들이 대개 그렇듯 튜링은 어릴 적부터 자명해 보이는 걸 의심했고, 스스로 생각하고 확인하는 아이였다. 그러니 인간의 특별함에 대해 의심하는 것도 그다운 일이었으리라.



 사람은 어떻게 생각하고 계산하는 걸까. 내가 이런 질문을 받는다면, 아마도 향 깊은 커피를 마시며 생각하기를 즐긴다고 대답할 듯싶다. 앨런 튜링은 달랐다. 그는 계산을 할 때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를 꿰뚫어봤다. 그리고 이 과정을 기계적으로 구현하는 방식을 제안했다. 그 결과가 튜링 기계(Turing Machine)다. 나아가 하나의 기계로 모든 튜링 기계를 다 흉내 낼 수 있는 보편 튜링 기계(Universal Turing Machine)를 설계한다.



 이게 바로 현대 컴퓨터의 뿌리다. (옮긴이는 2장에서 튜링 기계와 보편 튜링 기계 대신 자동기계와 만능기계라는 표현을 사용하는데, 좀 어색하게 느껴진다. 아울러 사람의 마음 상태에 대응되는 기계의 상태를 설정이라 했는데, 이렇게 옮기는 것도 일반적이지 않아 보인다. 그냥 상태라 해도 된다.)



앨런 튜링.
 튜링 기계는 긴 테이프 위에서 읽고, 쓰고, 지우고, 이동하며, 상태를 바꾸는 단순한 과정으로 구성돼 주어진 연산을 수행한다. 하지만 어떻게 하나의 보편 튜링 기계로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튜링 기계를 구현할 수 있을까. 이걸 이해하려면 우린 괴델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없다. 나로선 반가운 일이다. 내게 지식계의 영웅 두 사람을 고르라면, 괴델과 튜링을 꼽을 테니 말이다.



 20세기 초 수학자들은 혼란에 직면했다. 비(非)유클리드 기하학의 등장으로 유클리드 기하학의 절대적 진리성이 깨졌기 때문이다. 힐베르트는 진리의 절대성 대신 공리계의 무모순성과 완전성을 보이는 방식으로 수학의 기초를 단단히 하려 했다. 참이면서 동시에 거짓인 명제가 있으면 안 되고, 또 참인 명제는 반드시 증명돼야 한다는 게 무모순성과 완전성이 뜻하는 바다. 그렇지만 산술 체계를 포함한 포괄적인 공리계에선 무모순성과 완전성을 증명할 수 없다는 사실이 증명됐다.



 증명 불가능성의 증명이었고, 그걸 해낸 사람이 괴델이었다. 괴델은 논리적인 문장을 자연수(괴델 수)에 대응시키는 기막힌 방법을 고안했다. 튜링은 바로 이 괴델 수의 개념을 이용해 보편 튜링 기계를 제안할 수 있었던 것이다. 튜링 기계마다 자연수를 하나씩 대응시키고, 이 자연수를 보편 튜링 기계에서 읽어 들여 해당 튜링 기계가 하는 일을 실행하는 방식이다. 이 내용과 직접 연결되는 건 아니지만, 기계장치의 무모순성을 두고 비트겐슈타인과 튜링이 나누는 대화(269쪽)가 재미있다.



 앨런 튜링은 (보편) 튜링 기계의 개념을 이용해 힐베르트의 ‘결정 문제’가 해결될 수 없다는 걸 증명하였다. 논리적 진술이 참인지 아닌지는 일반적으로 결정할 수 없다는 뜻이다. 프린스턴 대학의 알론조 처치도 비슷한 시기에 독립적으로 같은 결과를 얻었는데, 이게 계기가 되어 케임브리지에서 공부하던 튜링은 프린스턴에서 연구할 기회를 잡게 된다. 거기서 튜링은 폰 노이만·바일·쿠란트·하디·아인슈타인 등 뛰어난 학자를 만나게 된다. 하지만 (내가) 안타깝게도 괴델과는 마주할 수 없었다. 괴델은 나중에 프린스턴에 정착해 아인슈타인과 교류한다.



 30년 넘게 은폐됐다가 뒤늦게 알려진 2차 세계대전 때의 이야기는 수학자인 튜링의 공학자로서의 면모도 잘 보여준다. 독일 암호 기계인 에니그마를 깨기 위해 봄베를 개량하고 음성 암호화를 위해 전자공학 프로젝트인 딜라일라 시스템을 완성하는 과정은 4, 5장에서 자세히 소개된다. 보편 튜링 기계의 개념을 국립물리연구소에서 실제로 구현하려다 뜻을 이루지 못하고 맨체스터로 옮기게 되는 내용은 6장에 나온다.



 튜링의 관심은 모방 게임에서 궁극적으로 생물학으로 넘어간다. 1950년에는 형태발생이론에 대한 논문까지 쓰게 된다(7장). 튜링이 동성애로 호르몬 치료 판결을 받고 나중에 자살했다는 건 널리 알려진 사연이다. 그런데 사인 조사 과정이 아주 허술했던 모양이다. 그래서인지 8장을 읽을 땐 자살이 아니었을 가능성이 자꾸 떠오르기도 했다.



 이 책은 알차다. 수리물리학자 앤드루 호지스가 튜링에 관해 거의 모든 걸 담았기 때문이다. 성장 과정, 기계 만들기, 수리논리학, 인간과 기계의 지능에 대한 철학적 쟁점…, 이런 이야기가 한 권에 다 들어있다. 나 같은 튜링팬이라면 한달음에 읽어낼 만한 멋진 작품이다. 하지만 좀 두껍고 무겁다. 그런 점에선 수리철학적 쟁점과 인간적 면모를 나눠볼 수도 있었겠다 싶다. 어쨌든 튜링의 전모가 궁금한 독자들에게 맞춤한 책이다. 빅데이터 시대인 지금, 인공지능은 그리 멀지 않은 데 있을지도 모른다.



윤태웅 고려대 전기전자공학부 교수



[S BOX] 사람을 속인 컴퓨터



앨런 튜링은 1950년 발표한 논문 ‘기계도 생각할 수 있을까(Can Machines Think)?’에서 ‘이미테이션 게임’을 처음 고안한다. 나중에 ‘튜링 테스트’로 불리게 된 게임이다. 기계가 사람과 얼마나 비슷하게 대화할 수 있는가를 기준으로 ‘기계도 인간처럼 생각할 수 있는가’를 판단하는 실험이다. 튜링은 컴퓨터가 의식을 가진 사람과 자연스럽게 대화를 주고받을 수 있다면 컴퓨터도 생각하는 능력이 있다고 봐야 한다고 주장했다.



 튜링의 아이디어를 기반으로 영국 레딩대가 튜링 테스트 방식을 개발했다. 심판을 맡은 사람이 컴퓨터 두 대가 설치된 방에 들어간다. 한 쪽은 컴퓨터 프로그램과, 다른 한 쪽은 사람과 연결돼 있다. 심판은 양쪽 컴퓨터와 다섯 번의 대화를 주고받는다. 채팅을 마친 후 둘 중 더 자연스럽게 대화가 이뤄진 쪽을 사람이라고 판단한다. 컴퓨터가 전체 심판단 가운데 3분의 1 이상을 속이고 사람으로 꼽히면 인공지능을 지녔다고 인정하는 방식이다.



 튜링 테스트를 통과한 인공지능은 지난해 처음 탄생했다. 레딩대는 2014년 6월 “유진 구스트만이라는 컴퓨터 프로그램이 65년 만에 튜링 테스트를 처음으로 통과했다”고 발표했다. 우크라이나에 사는 13세 소년으로 설정된 유진은 심판진 33%를 속였다. 심판 30명 중 10명이 유진이 사람보다 더 사람답다고 판단한 것이다.



이영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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