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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호 칼럼] 한국인과 일본인...노후, 또하나의 극단적 대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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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호 경제선임기자

일본에서 4년을 보낸 경험 때문에 한국인과 일본인을 십중팔구 한눈에 구별할 수 있다. 서울 명동이나 남대문 근처, 강남역과 청담동 근처를 거닐다 보면, 저 멀리 일본인이 걸어오면 바로 알아본다. 함께 있는 나의 동료들은 잘 모르는 경우가 많다. 외모와 차림세의 미세한 차이를 모르기 때문이다.

참 닮았다고 생각하기 쉬운 게 한국과 일본이지만 알고보면 다른 점이 너무 많다. 퇴직 후 경제능력과 노후의 경제적 여유도 하늘과 땅만큼 차이가 난다. 한국인의 인생 말년이 일본인에 비해서는 참으로 고단하다는 얘기다. 먼저 일본을 보자. 일본은 노인이 죽을 때 퇴직할 때보다 더 많은 돈을 남겨 놓는 경우가 상당히 많다. 일반적으로 일본에서 평범한 퇴직자는 3000만엔가량의 현금을 갖고 출발한다. 한국 원화로는 3억원 수준이다. 긴 노후를 생각하면 그리 많은 금액이 아니다. 그러나 일본인 노인이 사망할 때 이 돈은 4000만엔으로 늘어나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원화로는 4억원이다.

어찌된 일일까. 일본인이 요술망방이를 갖고 있는 것도 아닐텐데 죽을 때 돈이 늘어나 있다니. 그건 두 가지로 설명할 수 있다. 첫째는 저성장ㆍ저금리의 ‘저주’이자 ‘마술’이다. 일본은 1990년 버블경제 붕괴 이후 1%대 안팎의 경제성장률과 0%대 제로금리 시대를 보내고 있다. 그런데 세계 최장수 국가가 되면서 노인들은 미래를 대비해야 했다. 언제 죽을지 모르는데 돈을 불릴 방법이 없다. 이런 상황에선 돈을 안 쓰는 자린고비 작전을 택할 수 밖에 없다. 그 결과가 바로 물가가 하락하면서 경제를 장기침체에 빠뜨리는 디플레이션이다.

다른 하나는 고령화다. 일본은 이미 1970년 고령화사회가 됐다. 인구 7%가 65세를 넘겼다는 의미다. 2000년에 고령화사회가 된 한국보다 꼭 30년 빠르다. 65세 이상 인구가 20%를 넘어서면 초고령사회라고 하는데, 일본은 세계 최초로 2006년 이에 도달했다. 한국은 지금부터 11년 후인 2026년 초고령사회가 될 전망이다. 이런 점을 감안하면 일본의 고령화가 얼마나 심각하고 오래됐는지 짐작할 수 있다. 이 같은 급격한 고령화는 일본 노인들의 허리띠를 더욱 졸라매게 했다. 결국 저성장과 고령화가 소리없이 일본의 디플레이션을 가속화한 배경이라고 볼 수 있다.

일본의 고령자들이 사망할 때 재산이 더 불어나 있는 건 연금의 마술 덕분이다. 일본은 북유럽 선진국 정도는 아니지만 고도성장기에 일한 사람이라면 누구나 쓸만한 정도의 국민연금과 후생연금을 받는다. 한국에선 국민연금만 의무화돼 있지만, 일본에선 국민연금은 모든 국민이 가입하고, 후생연금은 회사에 재직 중일 때 가입한다. 결국 연금이 처음부터 쌍끌이 2중 구조를 갖게 되어 있다. 꾸준히 부었다면 20만~30만엔에 달하니 퇴직생활을 하는 동안 저축이 가능하다. 이게 바로 일본 퇴직자들의 재산이 사망할 때 오히려 더 불어나는 비결이다.

일본의 전례에 비추어 보면 한국의 퇴직자들은 혹독한 노후에 직면할 수 밖에 없다. 이미 한국의 노인 빈곤율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4개 회원국 가운데 최하위 수준인 48%를 기록하고 있다. 경제규모를 국내총생산(GDP)로만 측정할 이유가 없다고 보면, 한국은 OECD에서 최하위를 기록하고 있는 셈이다. 참고로 경제규모는 세계 13위다. 한국이 경제규모 세계 13위라고 자부하고 있지만 다른 잣대로 보면 30위에도 들지 못한다는 의미다.
 


빈곤의 징후는 이미 10년 전쯤부터 나타나기 시작했었다. 지하철에서 읽고 버린 신문을 줍는 노인들의 모습이 그 서막이었다. 준비되지 않은 노후를 맞이한 빈곤 노인층이 생계를 위해 지하철에서 발품을 파는 모습이었다. 이제는 그 모습이 전단지 나눠주는 고령 여성으로 바뀌어가고 있다. 생계를 위해 아침 일찍부터 저녁 늦게까지 식당가와 오피스가를 떠도는 고령자 집단이 우리 사회의 새로운 현상이 됐다. 서울 지하철에는 시급 6000원에 50~75세 여성 파트타임을 구한다는 전단이 곳곳에서 붙어 있다. 편하게 쉬어야 할 나이가 됐는데도 생계를 위해 일터로 내몰리고 있는 우리 사회의 단면이다.

어찌 보면 너무 아끼는 바람에 돈을 쓰지 못하고 이불 밑에 두고 죽는 일본 노인들의 처지도 딱하기 짝이 없다. 그러나 끝까지 아등바등 살아야 하는 한국인의 노후와 이불밑이나 장롱 속에 돈을 깔고 있는 일본인의 노후, 어느 쪽이 좋을까. 일본은 개인 금융자산이 1500조엔(1경5000조원)이고 한국은 가계부채가 1000조원인 것만 봐도 또 차이가 난다. 안 쓰고 아끼다 남겨놓고 죽더라도 돈을 깔고 죽는게 더 좋지 않을까. 겉만 보면 닮은 것 같지만 이렇게 다른 게 한국과 일본이다.

김동호 경제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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