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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근영 기자의 오늘 미술관] 터너-'눈보라: 항구를 떠나가는 증기선'

터너, 눈보라 : 얕은 바다에서 신호를 보내며 유도등에 따라 항구를 떠나가는 증기선. 나는 에어리얼 호가 하위치 항을 떠나던 밤의 폭풍우 속에 있었다, 1842, 캔버스에 유채, 91.4×121.9㎝, 런던 테이트 갤러리 소장.



그림 제목이 꽤나 길다. 67세 터너는 눈보라 치는 날 증기선 돛대에 몸을 묶은 채 폭풍에 흔들리며 네 시간을 버텼다. 그렇게 직접 보고 겪은 눈보라를 그렸다. 이유는 단순하다. "이런 장면의 실상이 어떤지 보여 주려고." 그렇게 나온 장면의 실상은 뿌옇게 흐려진 채 어지럽게 흔들리는 시선이다.

영국의 국민화가 조지프 말러드 윌리엄 터너(1775~1851)가 남긴 얼마 안 되는 일화 중 제법 스펙터클한 장면이다. 그를 주인공으로 한 영화 '미스터 터너'에도 이 장면이 나온다. 터너는 자신의 작품을 전시할 미술관을 세운다는 조건으로 국가에 작품을 기증, 런던 테이트 브리튼엔 터너의 전시실 11개가 마련돼 있다. 매년 테이트 미술관에서 발표하는 영국의 대표적인 미술상 또한 그의 이름을 따 '터너상'이다.

이같은 국민화가를 주인공으로 한 시대극을 만들 때 자국의 영화 감독은 어디에 힘을 줄까. 마이클 리 감독은 이발사의 아들로 태어나 20대에 이미 왕립아카데미 회원이 되어 재능을 뽐내던 그의 전성시대도, 76세로 사망한 그의 긴 일생도 아닌 후반기 25년에 주목한다. 명성의 정점에서 예술의 성취를 채찍질하다가 대중의 이해에서 멀어진 만년이다.

실제 풍경을 쫓아 스케치 여행을 다니는 터너의 뒤를 쫓으며 그 풍경을 그림으로 옮기던 카메라는, 빛과 과학을 쫓아 점차 추상화처럼 뿌옇게 되는 그의 화폭과 이에 대한 대중의 외면 또한 담담하게 보여준다. 배가 기차를 대신하고, 카메라가 등장해 화가의 지위를 위협하며, 하이드 파크에는 런던 만국박람회의 랜드마크인 크리스탈 팰리스가 올라간다. 터너의 시대는 이렇게 끝나고, 남은 작품은 후에 인상파에 영향을 준다.

권근영 기자 you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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