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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기초과학연구 3년 지원해 노벨상 나올까

박성현
한국과학기술한림원 원장
최근 한 모임에서 모 사립대 통계학과의 K교수를 만났다. 그는 “정부 기초연구비를 지원받기가 너무 힘들다”고 말했다. 필자가 연구비를 나누어주는 한국연구재단 기초연구본부장을 지낸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이 같은 하소연을 털어놨을 것이다. K교수는 “연구비를 신청하라고 하는데 기본연구가 연 5000만원 기준이다. 나는 2000만원 정도 받아 노트북이나 하나 사고, 외국 학회 나가서 연구 결과를 발표만 할 수 있으면 족하다”고 했다. 이어 “나는 한 과제를 10년 정도 깊이 연구하고 싶은데 연구 기간은 3년으로 제한돼 있다”고 덧붙였다. 그는 연구비 지원이 인재 양성과 연결돼 있는 것에 대해서도 푸념을 늘어놨다. “우리 대학처럼 대학원생들이 별로 없는 곳은 연구비 신청을 하지 말라는 말이나 다름없다”고 했다.

 지난 7일 정부가 2015년도 정부 연구개발(R&D) 사업 부처 합동설명회를 개최했다. 전년 대비 6.4% 증가한 18조9000억원을 R&D에 투자한다는 내용이었다. 어려운 재정 여건 속에서도 기초원천연구와 미래성장동력에 대한 투자를 높여 창조경제의 토양을 다지겠다는 의지를 보여준 고무적인 계획이라고 생각한다. 특히 미래원천기술 개발의 바탕이 되는 기초연구비의 전체 예산 대비 비중을 지난해 37.1%에서 올해 38.0%, 2017년 40%로 계속 올리겠다고 한 것은 매우 바람직한 방향이다.

 하지만 아쉬운 점도 있다. 바로 기초연구 지원 체계를 좀 더 효율적으로 혁신하기 위한 고민이 엿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기초연구 지원은 교육부와 미래창조과학부에 집중돼 있다. 이들 부처의 내년도 기초연구 지원 체계를 혁신하기 위해서는 다음의 두 가지 사항을 고려해야 한다.

 첫째, 현재의 기초연구는 ‘사업별 연구지원 체계’를 따르고 있다. 즉 정부는 기본연구·신진연구·중견연구·여성과학자 등 각종 사업별로 예산을 확보하고, 연구자는 먼저 사업별로, 그리고 자연과학·공학·의학 등의 분야별로 한국연구재단에 연구비를 신청하게 돼 있다. 연구비 규모와 연구 기간은 연구 분야와는 무관하게 다 동일하다. 갈수록 연구 분야가 전문화되고 차별화되는 요즘 추세에서 현재처럼 모든 연구 분야를 동일한 조건으로 지원하는 방식은 비효율적이다.

 예를 들어 자연과학의 수학·이론물리학 등은 실험이 없고 이론 위주 연구를 한다. 이런 분야는 적은 연구비로 오랜 기간 연구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앞서 언급한 K교수의 경우가 이런 경우에 속한다. 반면 공학 분야의 실험연구는 많은 연구비를 들여 단기간 내에 연구하는 것이 좋을 수도 있다.

 선진국들은 우리 같은 ‘사업별 연구지원 체계’에서 ‘분야별 연구지원 체계’로 전환했다. 각 분야의 연구 특성을 고려한 ‘맞춤형 지원 체계’다. 이런 체계를 구축하려면 먼저 연구비를 분야별로 배정한 뒤 그 분야에 적절한 사업을 선택해야 한다. 한국연구재단에 블록예산을 주고 분야별로 전문화된 연구비 배정·심사·선정의 자율권을 주면 효율적인 운영이 가능할 것이다.

 둘째, 기초과학과 응용과학의 지원 방식을 달리해야 한다. 수학·물리학·화학·생명과학·지구과학 등의 기초과학 연구는 창의성과 도전성을 강조해야 한다. 동일한 과제를 오래 연구할 수 있도록 연구비 지원 기간을 3∼10년으로 다양화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노벨 과학상은 기초과학에서 나온다. 평생 한 연구에만 전념할 수 있는 10년 이상의 초장기 연구를 신설하는 것도 필요하다. 그래야 기초과학자들이 자기 연구에 열정을 가지고 마음껏 연구를 할 수 있다. 그럴 때 노벨상급의 연구 실적도 나올 수 있다.

 반면 공학·농학 등 응용과학 분야는 목표성과 전략성을 강화해야 한다. 지원 기간은 현행대로 3년으로 두고 전략적인 연구목표 달성에 중점을 둬야 한다.

 기초과학과 응용과학의 차이는 또 있다. 기초과학은 논문과 기초원천연구에 치중한다. 이에 비해 응용과학은 특허, 원천기술 개발, 기술이전에 주력한다. 하지만 현재 지원 체계는 이런 차이를 반영하지 않고 있다. 이 때문에 기초과학 연구에 산업화 실적이나 기술이전 건수를 요구하거나, 응용과학 연구에 과학기술논문인용색인(SCI) 논문을 요구하는 무리수가 나오는 것이다.

 이렇게 기초연구 지원 체계를 혁신하기 위해서는 전제 조건이 하나 있다. 바로 기획재정부에서 사업별로 예산을 주는 관행을 바꾸어 분야별로 주는 것이다. 또한 정부 R&D 예산을 심의하는 국가과학기술심의회에서 분야별 예산을 심의하겠다는 확고한 의지가 무엇보다 필요하다. 한국연구재단에 더 많은 자율권을 주어야 한다.

 기초연구는 이름 그대로 모든 연구의 뿌리다. 기초연구에서 분야별 맞춤형 지원 체계가 제대로 자리 잡으면 응용·개발 연구로도 확산할 수 있다. 궁극적으로 모든 부처의 정부 R&D 예산의 효율적인 집행도 가능해질 것이다. 기초연구비 지원 체계를 반드시 혁신해야 하는 이유다.

박성현 한국과학기술한림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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