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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규연의 시시각각] ‘조율국가’의 탄생

이규연
논설위원
미움이 사랑으로 분노는 용서로

고립은 위로로 충동이 인내로

모두 함께 손잡는다면…

그 옛날 하늘빛처럼 조율 한번 해 주세요.

 한영애의 노래 ‘조율’의 가사입니다. 조율(調律)의 사전적 의미는 악기의 음을 표준에 맞춰 고르거나 문제를 알맞게 조절한다는 뜻입니다. 오래전 이 노래를 들으며 조율의 삶, 조율의 사회를 그려 본 적이 있었습니다. 요즘 국정 중심축 논란을 보며 문득 이 단어가 떠올랐습니다.

 건강보험과 연말정산 소동으로 정부가 구석에 몰린 상황입니다. 박근혜 대통령은 정책 혼선의 대안을 ‘청와대와 내각의 긴밀한 협의’에서 찾습니다. 새누리당 수뇌부는 ‘당·청 협의’를 내세웁니다. 뭔가 허전합니다. 내각·당·청와대 ‘중심’이면 지금의 위기를 이겨 낼 수 있을까요? 개방·수평·참여가 강조되는 미래행정의 방향과 맞는 걸까요? 당·정·청 주도의 하향식에서 벗어나 좀 더 큰 틀의 국가 운영체계가 탄생돼야 한다고 봅니다. 저는 이를 ‘조율국가’라고 불러 봤습니다.

 얼마 전 국회참관단이 북유럽의 강소국인 핀란드를 짧은 일정으로 다녀왔습니다. 국회운영위 소속 의원 5명과 박형준 사무총장이 참가했습니다. 국가 전략 수립 과정에서 의회의 역할을 살펴보기 위해서였습니다. 핀란드는 전 세계에서 가장 촘촘하게 국가 전략을 짜는 나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 명성의 비법이 바로 ‘조율’입니다.

 핀란드는 1993년부터 4년마다 국가 미래전략을 세워 왔습니다. 4년 임기의 총리가 취임하면 2년 내에 정부 미래보고서를 만들어 의회에 보고해야 합니다. 의회는 이를 검증한 뒤 공식 입장을 밝힙니다. 의회와 내각이 조율을 하는 겁니다. 총리실은 정부 미래보고서를 작성하는 과정에서 세 차례 이상 시민사회의 의견을 수렴합니다. 의회 역시 검증 단계에서 시민사회와 민간 전문가에게 의견을 구합니다. 의회·정부·시민사회·전문가 사이에 입체적인 조율이 벌어지는 겁니다.

 조율을 거쳐 정해진 국가 미래전략은 정부 정책의 가이드라인이 됩니다. 국가 전략에 따라 ‘정책환경기술서’ ‘장관 리뷰’ 같은 실행계획을 짭니다. 정권이 바뀌어도 부분 수정은 가능하지만 그 노선에서 벗어나는 정책을 독단적으로 추진할 수 없습니다. 핀란드 사회에서 조율의 존재감이 워낙 묵직하기 때문입니다. 선거 과정에서도 그런 기조는 반영됩니다. 의회 싱크탱크가 4년 단위의 총리 정책과 10~20년 단위의 중기 국가 전략, 20년 이상의 국가 비전을 조율합니다. 권력을 잡고자 하는 정치인이 포퓰리즘 공약을 남발하지 못하게 하는 구조와 문화가 만들어져 있습니다. 핀란드 총리실에서 미래연구를 담당하는 한 선임연구자는 e메일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하더군요.

 “국가 전략은 어느 나라든지 세운다. 핀란드가 다른 나라와 다른 점은 의회를 중심으로 정부와 시민사회가 긴밀한 협의를 한다는 것이다. 이런 협의를 우리는 ‘대화(dialogue)’라고 부른다. 큰 꿈을 꾸는 정치인이라면 의회 미래상임위원회를 거쳐야 한다. 그곳에서 정부·시민사회와 호흡을 맞춰 가며 국가를 이끌어 갈 비전과 정책을 훈련받는다.”

 대한민국에서 정부 주도 모델은 한계를 보이고 있습니다. 올해의 국정 혼란이나 지난해의 세월호 참사가 그 증거입니다. 정부 주도 모델이 위력을 떨칠 때는 권한을 분산하고 의견을 조정하자는 주장이 거추장스럽게 느껴졌을 겁니다. 조율의 외침은 개풀 뜯어먹는 소리였을 겁니다. 하지만 지금의 상황은 새 국정 방식을 초대합니다. 핀란드의 ‘조율국가’도 학습대상 중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이제 권력을 꿈꾸는 정치인이라면 청·정도, 당·청도 아닌 정부·국회·시민사회·기업을 조율하는 대(大)디자인을 구상할 줄 알아야 합니다. 한영애의 노랫말대로 ‘분노와 충동을 위로와 인내로 인도하는’ 리더여야 합니다.

이규연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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