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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수대] 어느 회장님의 비과학적 철회

나현철
경제부문 차장
이번 주 눈에 띈 과학뉴스 한 토막. ‘중력파 검출’ 취소 발표다. 1년 전 미국 하버드-스미스소니언 천체물리센터(CfA)는 “남극에 있는 전파천문대를 통해 원시 중력파의 흔적을 검출했다”고 밝혔다. 대단한 발견이었다. 원자보다 작은 우주가 순식간에 폭발하고 급팽창했다는 빅뱅이론의 강력한 증거였으니 말이다. 하지만 1년도 안 돼 이 결론이 뒤집혔다. 연구진과 유럽우주국은 지난달 말 공동 검증을 통해 “중력파가 아닌 우주먼지에 따른 신호잡음일 가능성이 크다”고 밝혔다.

 2012년에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 전 세계 물리학자 160명으로 구성된 ‘오페라’ 연구팀이 “빛보다 빨리 움직이는 중성미자(뉴트리노)를 발견했다”는 연구 결과를 6개월여 만에 철회했다. 중성미자의 이동속도를 인공위성으로 측정하는 과정에서 측정오류가 있었다고 했다. 사실이라면 ‘빛보다 빠른 물질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아인슈타인의 이론이 뒤집혔을 연구였다.

 ‘세기적인 과학적 발견’이 뒤집힐 때마다 아쉬움을 느끼는 게 나만은 아니었을 거라고 믿는다. 지난해 영화 ‘인터스텔라’가 꽤 인기를 끌었다. 꼭 공상과학 매니어가 아니더라도, 영화를 보며 무한한 상상의 세계를 즐겼던 기억이 많이들 남아 있을 것이다.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로 여행하거나, 까마득히 먼 우주를 이웃 동네 가듯 할 수 있으면 얼마나 신나겠는가.

 그래도 아쉬움이 아쉬움으로 끝나지 않는 건 과학이기 때문이다. 발표와 철회 모두 과학적으로 이뤄진다. 객관성과 합리성을 바탕으로 모두가 인정할 수 있는 진실을 찾아낸다. 지금은 상식이라 일컬어지는 합리주의가 18세기 이후 세계인의 판단 기준이 된 것도 과학의 힘일 것이다.

 그런데 며칠 전 국내에서 이에 버금갈 뻔했던 철회 소동이 벌어졌다. 라응찬 전 신한금융지주 회장이 한 대기업 사외이사로 선임돼 논란이 됐다. 그는 수년 전부터 ‘알츠하이머로 인한 치매 증상’을 이유로 재판과 검찰 조사에 불응해왔다. 정상적으로 사외이사직을 수행했다면 의학적 기적이 될 뻔했다. 퇴행성 뇌질환인 알츠하이머는 진행을 늦출 수는 있어도 호전은 어려운 병이다. 궁금증이 커지자 라 전 회장은 하루 만에 사퇴했다. 왜 선임됐는지, 왜 사퇴했는지에 대한 말은 없었다. 참으로 비과학적인 그의 사퇴가 못내 씁쓸하다. 자연과학만큼은 아니지만 사회에도 객관성과 합리성이라는 잣대가 있다는 걸 깜빡했던 건 아니길 빈다.

나현철 경제부문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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