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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스토리│하동관 국밥 이야기] 그냥 고깃국이 아니여, 보약이여

하동관의 상차림은 단출하다. 음식값을 선불로 계산하고 기다리면 놋그릇에 양지·양·차돌박이가 가득 담긴 곰탕 한 그릇이 깍두기, 배추김치와 함께 나온다. 76년간 변하지 않은 상차림이다.


고깃국에 흰 쌀밥 먹어보는 게 소원인 시절이 있었다. 돌이켜 보면 그리 멀지 않은 일이었다. 그 시절에는 설날 같은 명절이나 돼야 고깃국 한 수저 뜰 수 있었다. 고깃국에는, 그 뜨거운 국물에는 우리네의 춥고 배고픈 어제가 담겨 있다.

서울 도심에 ‘하동관’이라는 국밥집이 있다. 올해로 76년 역사를 자랑하는 ‘백 년 명가’다. 50년 가까이 하루도 국솥을 떠나지 않는 김희영(77) 사장의 고집 덕분에 예나 지금이나 똑같은 국물을 낸다. 오래 묵은 국밥집이다 보니 손님도 오래 묵었다.

국밥집과 함께 늙어가는 손님 중에 50년 단골 김순경(75)씨가 있다. 동아일보 해직기자 출신으로, 요즘도 활약 중인 1세대 맛 칼럼니스트다. 좀처럼 언론을 반기지 않던 김 사장이 50년 단골을 앞세운 week&에게 펄펄 끓는 국솥을 보여줬다. 두 사람은 국밥을 말했지만, 국밥만 말한 건 아니었다. 그들이 말한 건 우리네의 가난했던 밥상과, 고깃국 한 모금의 애환이었다.

맛 칼럼니스트 김순경씨(왼쪽)와 하동관 김희영 사장.
“하동관 할머니 또 부엌에서 나오시네.”

김순경씨가 부엌에서 나오던 김희영 사장을 보고 반갑게 인사했다. 50년 단골은 두 살 위 김 사장을 “하동관 할머니”라고 불렀다. 두 사람이 국밥을 앞에 두고 마주 앉았다.

-김순경: 1966년에 처음 하동관 국밥을 먹었어요. 그때는 수하동에 있었지요. 다른 식당은 외상도 수시로 했는데, 하동관은 외상은커녕 선금이었어요. 가격도 비쌌어요.

-김희영: 70년대엔 500원이었을 거예요. 설렁탕이 300원, 짜장면이 100원 정도였죠. 수하동 시절엔 유명인사도 많이 왔었어요. 특히 박정희·김대중 전 대통령이 우리 국밥을 좋아했어요. 박정희 대통령은 연초 순시 다닐 때 곰탕과 수육을 사가기도 했어요. 국밥 30그릇이 제주도까지 헬기로 공수됐던 건 유명한 일화이지요. 김대중 대통령은 비서를 시키지 않고 직접 계산을 했던 게 기억나요. 화신그룹 박흥식 회장은 돌아가기 이틀 전에 곰탕을 먹고 갔어요. 이회창씨는 지금도 자주 들러요. 딱 한 명 외상을 했던 사람이 김두한 전 국회의원이었어요. 국밥을 먹고 1주일 뒤에 부고가 났어요.

-김순경: 하동관은 옛날부터 다른 국밥집과 분위기가 달랐어요. 북촌 양반가 며느리들이 대를 이어온 특별한 무언가가 있었어요. 언제 부엌을 맡았죠?

-김희영: 68년이었으니까, 올해가 48년째네요.

하동관은 1939년 종로구 수하동에서 처음 문을 열었다. 2007년 청계천 일대가 재개발되면서 명동으로 옮겼다. 수하동 시절의 나무 간판과 대문부터 탁자와 의자까지 죄 갖고 왔다. 첫 주인은 김용택씨였다. 북촌 양반가 출신인 김용택씨의 부인 류창희씨가 집안에서 끓이던 곰탕을 손님에게 낸 게 하동관의 시작이었다.

김용택씨와 절친했던 장낙항씨가 하동관을 인수한 것이 64년이었다. 장씨의 아내 홍창록씨도 북촌 양반가 출신이었다. 홍씨도 서울 양반가 출신의 며느리를 받았는데, 그가 지금 주인 김희영씨다.

-김순경: 소를 잡으면 양반가는 사태·양지·사골 등 고급 부위를 넣고 국을 끓였어요. 그게 곰탕이에요. 평민은 양반이 남긴 소머리·잡뼈·내장 등으로 국물을 냈고요. 설렁탕이지요. 그 국물에 우거지를 넣고 빨간 양념을 풀면 장터국밥이 됩니다. 한국인에게 국밥은 한 끼 식사 이상의 의미가 있어요. 옛날에 시골에서 감기에 걸리면 몇십 리(里)를 걸어 장에 나가 국밥을 먹곤 했어요. 여러 영양소가 들어있어 보약처럼 먹었던 게지요.

-김희영: 얼큰한 국물을 원하면 고추기름을 풀면 돼요. 그게 육개장이에요. 기름을 계속 걷어내서 우리 곰탕은 기름이 없어요. 고기도 덩어리째 삶죠. 밥을 국에 말아 토렴해 밥 한 톨까지 국물이 배어들게 하는 게 서울식 곰탕입니다.

-김순경: 하동관 국솥을 50년 가까이 맡고 있으니, 이제 하동관 맛은 할머니 손맛인 셈입니다. 비결이 있을까요?

-김희영: 비결이랄 게 있겠어요. 좋은 재료를 받아서, 지나치지도 않고 모자라지도 않게 끓이는 거지요. 그래서 지금도 국솥 곁에서 사네요. 시어머니가 강조한 건 하나였어요. 정직하게 장사해라. 그 말씀 그대로 오늘도 국물을 내요.

-김순경: 여전히 팔판정육정에서 고기를 받나요?

-김희영: 네, 70년쯤 됐어요. 시아버지가 하동관을 인수하기 전부터 그 집하고만 거래를 했다네요. 정육점도 대를 물려서 고기를 대고, 우리도 대를 물려서 곰탕을 끓이죠. 한우 암소만 받아요.

하동관 부엌에 들어가니 대형 솥 두 개가 눈에 띄었다. 솥 하나의 지름이 2m가 넘었다. 하동관에서 하루 사용하는 고기는 250~300근(150~180㎏)이라고 했다. 고기·뼈·부산물을 다 합친 무게다. 하동관은 하루에 곰탕 600∼700그릇을 끓인다. 국물이 떨어지면 장사를 접는다. 보통 오후 3∼4시다.

-김순경: 평생을 곰탕집 부엌에서 살았는데, 후회는 없나요?

-김희영: 외동딸 졸업식에 한 번도 못 갔네요. 친구는 물론이고 친동생 결혼식에도 못 갔고요. 어쩔 수 없어요. 가게 문만 나가면 허전해요. 후회는 없네요. 김 선생 같은 50년 묵은 단골이 있는데요. 하동관의 주인은 곰탕이에요.

하동관 벽을 보면 ‘20공’이라는 메뉴가 붙어있다. 손님이 개발한 메뉴다. 국밥 한 그릇에 1만2000원인데, 손님이 “스무공”을 외치면, 2만원짜리 국밥을 낸다. 국밥이 1만원일 때는 ‘십이공’이 있었다. 하동관 할머니의 말마따나 하동관의 주인은 국밥이고, 국밥으로 허기를 달래는 우리네다.

정리=손민호·홍지연 기자 ploveson@joongang.co.kr 사진=안성식 기자 ansesi@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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