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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지옥을 엿봤다”

히치콕의 다큐멘터리는 1945년 나치 수용소 해방 당시 연합군 카메라맨들이 찍은 필름을 바탕으로 제작됐다.

두 여자가 뼈만 앙상한 여자 시체 한 구를 땅바닥에 질질 끌고 간다. 시체의 머리가 울퉁불퉁한 흙 바닥에 부딪히며 덜컹거린다. 커다란 구덩이 앞에 다다르자 여자들은 그 벌거벗은 시체를 들어올려 뒤쪽으로 힘껏 잡아당겼다가 반동을 이용해 구덩이 안으로 던져 넣는다. 해골에 얇은 피부 한 꺼풀을 씌워놓은 듯한 그 시체는 썩어가는 시체 더미 위로 툭 떨어진다.

제2차 세계대전 말기에 독일 베르겐-벨젠 강제수용소에서 촬영된 이 영상은 알프레드 히치콕이 총괄 감독을 맡고 영국 영화의 선구자 시드니 번스타인이 제작한 다큐멘터리의 일부다. 기록보관소에 쳐박혀 있던 이 작품이 복원되지 않았다면 세상에 공개되지 못했을 장면이다. 1945년 봄 연합군의 인가를 받은 다큐멘터리 ‘독일 강제수용소 실태조사(German Concentration Camps Factual Survey)’는 베르겐-벨젠과 다카우, 아우슈비츠 등 나치 강제수용소 해방 당시 목격된 끔찍한 상황을 포착했다.

하지만 그해 8월 이 영화는 영국 당국에 의해 상영이 보류됐다. 녹화 필름과 원고, 카메라맨들의 메모 등 영화와 관련된 모든 것이 상자에 담겨 런던의 임피리얼 전쟁박물관(IWM) 기록보관소에 보관됐다. HBO의 새 다큐멘터리 ‘나이트 윌 폴(Night Will Fall)’(1월 26일 방영)은 세상에서 자취를 감췄던 이 영화가 70년 만에 생명을 되찾게 된 사연을 이야기한다. 앙드레 싱어가 감독하고 헬레나 본햄 카터와 재스퍼 브리튼이 내레이션을 맡았다.

영국군 소속 카메라맨 마이크 루이스가 끔찍한 학살의 현장을 카메라에 담는 모습.


1945년 봄 제2차 세계대전 막바지에 영국과 미국, 소련의 군대가 베를린으로 진격했다. 그 군대에는 카메라맨으로 훈련 받은 군인들이 있었다. 입에 담배를 물고 커다란 상자 모양의 카메라를 어깨에 둘러맨 젊고 건장한 이들은 해방된 강제수용소에 들어가 그곳에서 저질러진 만행의 참혹한 결과를 기록했다.

강제수용소의 실태가 바깥 세상에 알려지기까지는 시간이 좀 걸렸다. 1945년 4월 19일 BBC 라디오는 영국 종군기자 리처드 딤블비가 베르겐-벨젠에서 겪은 일에 관해 쓴 기사를 방송해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당초 BBC는 이 기사의 보도를 거부했다. 딤블비의 기사 내용을 곧이곧대로 믿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악몽 그 자체였다”고 딤블비는 말했다. “도로 주변과 바퀴 자국이 깊이 패인 오솔길 옆에 시체들이 나뒹굴었다. 그중 일부는 썩어 가고 있었다. 도로 양편에 갈색의 통나무 오두막들이 있었다. 오두막 창문으로 사람들의 얼굴이 보였다. 너무 굶주리고 허약해져 집 밖으로 나올 수도 없는 여인들이 뼈만 앙상하게 남은 얼굴로 창문에 기대 서 있었다. 죽기 전에 마지막으로 햇빛을 보려는 듯했다. 그들은 시시각각으로 죽어가고 있었다.”

이 기사의 내용이 너무 충격적이어서 며칠 뒤 번스타인은 베르겐-벨젠 수용소로 직접 찾아갔다. 번스타인은 당대의 대표적인 영화 제작자였으며 영국 심리전쟁부의 영화 책임자였다. 그곳에서의 경험은 그에게 다음 프로젝트에 대한 영감을 줬다. 나치의 끔찍한 범죄를 생생하게 보여주는 다큐멘터리를 만든 다음 무삭제(full-length)로 상영해 그들이 그런 일을 저지른 적이 없다고 발뺌하지 못하도록 하는 일이다.

미국과 영국 정부가 이 다큐멘터리의 제작을 승인하자 번스타인은 직접 최강의 팀을 구성했다. 편집자 스튜어트 맥앨리스타, 작가 리처드 크로스먼과 콜린 윌리스, 그리고 유명한 영화감독 알프레드 히치콕이 포함됐다.

이들은 영국과 미국, 러시아 군대의 카메라맨들이 촬영한 엄청난 양의 필름을 바탕으로 단 3개월 만에 다큐멘터리를 완성해야 했다.

‘나이트 윌 폴’은 이 다큐멘터리 중에서 많은 장면을 보여준다. 이루 말할 수 없이 끔찍한 장면들이다. 시체들이 여기저기 흩어져 있다. 수북이 쌓여 더미를 이룬 곳도 있고, 마치 카페트처럼 땅바닥에 줄지어 널려 있는 곳도 있다. 클로즈업 화면에서는 뼈만 앙상하게 남은 팔다리들이 마치 프레츨처럼 뒤엉켜 있다. 흉기에 찔려 열린 두개골, 움푹하게 꺼진 눈, 소리 없는 비명으로 크게 벌어진 채 굳어버린 입, 불에 데거나 칼에 벤 자국이 있고 땟국이 줄줄 흐르는 어깨와 허벅지.


“이보다 더 끔찍한 지옥은 없다”

수용소의 가시 철조망 뒤에서 미소 짓는 어린이들. 1945년 4월 마이크 루이스가 촬영한 사진이다.


군인들이 시체를 어깨 위에 걸쳤다가 덤프 트럭 안으로 던져 넣는 장면도 눈에 띈다.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 요제프 멩겔레의 기괴한 인간 생체실험으로부터 살아남은 쌍둥이들이 가시 철조망이 쳐진 좁은 통로를 걸어가는 장면도 있다. 어느 순간 우리는 다카우 수용소에서 죽은 사람들과 죽어가는 사람들의 눈 속을 들여다보게 된다. 이 다큐멘터리의 편집에 참여한 존 크리시는 “이보다 더 끔찍한 지옥은 없다”고 말했다. 이 장면들이 촬영되는 내내 현지 독일인들이 옆에 서서 지켜보고 있었다. 그들은 한때 자신들이 아는 바가 없다고 주장했던 대학살을 목격하고 있었던 것이다.

눈을 다른 곳으로 돌리고 싶게 만드는 이미지들이다. 하지만 그래선 안 된다. 1995~2003년 미국 홀로코스트 기념관의 관장을 지낸 레이 파는 다큐멘터리에서 이렇게 말한다. “베르겐-벨젠에서 영국 카메라맨들이 촬영한 필름은 인간성의 모든 수준을 다른 어떤 필름보다 더 극한까지 드러내준다.”

나치 강제수용소의 생존자들, 그들을 구한 군인들, 현장에서 학살을 기록한 카메라맨들의 인터뷰를 보면 이 고통스럽고도 속이 뒤틀리는 다큐멘터리를 더 잘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 강제수용소 해방 당시 미 육군 병장이었던 벤저민 페렌츠는 이렇게 말했다. “수감자들이 죽었는지 살았는지 구분할 수가 없었다. 시체인 줄 알고 넘어 지나가려 할 때 갑자기 움찔하거나 손을 들곤 했다. 완전한 혼란이었다. 수용소 안에는 이질·장티프스 등 온갖 질병이 돌았다. 곳곳에서 시체 썩는 냄새가 진동했다. 화장장 앞에 시체들이 장작더미처럼 쌓여 있었다. 정상적인 인간의 마음으로는 상상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나는 지옥을 엿봤다.” 나중에 뉘렌베르크 전범 재판의 검사장으로 일한 페렌츠는 울음을 간신히 참으며 “금세 잊어버릴 수 있는 기억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독일 강제수용소 실태조사’는 히치콕의 유일한 장편 다큐멘터리 영화로 알려졌다. 그가 이 영화에 관여한 기간은 1개월에 불과했지만 오래도록 남을 기여를 했다. 히치콕은 이야기의 줄거리를 잡는 데 도움을 줬을 뿐 아니라 이 강제수용소들이 전쟁 당시 독일 민간인이 살았던 아름다운 마을들과 얼마나 가까이 있었는지를 보여주는 게 매우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이 다큐멘터리가 믿을 만하고 반박할 수 없는 증거를 제시할 수 있기를 바랐다. 유대인 600만 명을 포함해 1100만 명의 목숨을 앗아간 대학살이 결코 잊혀지지 않도록 말이다.

1945년 여름 다큐멘터리 프로젝트가 차질을 빚기 시작했다. 번스타인의 느리고 지나치게 세심한 작업 진행을 참다 못한 미국 정부는 필름을 가져다가 빌리 와일더를 새 감독으로 고용해 더 짧은 버전 ‘죽음의 공장(Death Mills)’을 만들었다. 와일더의 다큐멘터리는 독일 뷔르츠베르크에서 처음 상영됐다. 독일계 영국인 배우 겸 가수 릴리언 하비가 나오는 오페레타 다음 순서였다. 다큐멘터리가 시작될 때는 관객이 500명 정도 있었지만 끝났을 때는 100명도 채 남지 않았다.

번스타인과 히치콕의 작품은 미국과 영국 관리들에게 정치적 두통거리가 되기도 했다. 그 다큐멘터리가 더는 필요치 않다는 여론이 팽배했다. 1945년 8월 4일 번스타인이 영국 외무부로부터 받은 메모에는 이렇게 쓰여 있었다. “현재 독일의 정책은 독일 국민이 정치적·사회적 무관심에서 벗어나도록 장려하고 자극하고 동기를 부여하는 방향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나치 만행 영화는 안 된다’고 말하는 지도자 주변에 사람들이 모여든다.” ‘독일 강제수용소 실태조사’ 필름은 나치 전범 재판에서 중요한 증거 자료가 되긴 했지만 1945년 9월 기록보관소에 보관된 후 줄곧 그곳에 쳐박혀 있었다.

4년 전 IWM은 번스타인과 히치콕의 다큐멘터리 영화를 원래 그들이 계획했던 대로 복원해서 완성하는 일을 시작했다. 프로젝트가 중단되는 바람에 채 완성되지 못한 여섯 번째 필름도 포함시켰다. ‘나이트 윌 폴’은 이제는 완성된 그 다큐멘터리의 한 장면으로 끝을 맺는다. 일단의 민간인(그들이 누구인지는 확실치 않다)이 수용소 중 한 곳으로 걸어들어가 길 양편에서 썩어가는 시체들을 지나쳐 간다. 카메라가 시체의 끔찍한 얼굴들을 클로즈업하면서 내레이션이 흐른다. “이 영상이 주는 교훈을 세계인이 깊이 새기지 않는다면 어둠이 닥칠 것이다. 하지만 신의 은총으로 살아 있는 우리는 그 교훈을 깨닫게 될 것이다.”

‘나이트 윌 폴’은 연합군이 독일 강제수용소에서 발견한 대학살의 잔혹한 현장을 장인다운 스토리텔링 기법으로 우리 눈앞에 펼쳐놓는다. 그리고 역사를 증언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상기시킨다. 히치콕과 번스타인의 다큐멘터리는 홀로코스트 역사에 한 획을 더하는 가슴 아프면서도 강력한 힘을 지닌 기록이다. 번스타인은 1984년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난 언젠가 이 일이 실제로 일어났음을 증명할 모든 것을 영화에 담도록 지시했다. 이것은 독일인뿐 아니라 인류 전체에 교훈이 될 것이다. 이 영화는 원래 독일인을 위해 계획됐다 ... 이것은 우리가 그들에게 보여줄 수 있는 증거다 ... 난 그들이 이 역사를 목격했다는 사실을 증명하고 싶었다. 대다수 사람들이 그런 일이 일어났다는 사실을 부정할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글=애비게일 존스 뉴스위크 기자, 번역=정경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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