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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범근·홍명보도 거쳤다, 파독 광부 힐링캠프

1200만명이 넘게 본 영화 ‘국제시장’. 주인공 덕수는 가족을 위해 기꺼이 자신을 희생한다. 독일에 사는 한일동(75)씨는 덕수의 실존인물이라 할 만하다. 광부로 독일에 건너가 고된 노동을 감내하며 가족을 부양하고, 간호사 출신 부인과 만나 가정을 꾸린 스토리가 덕수의 삶과 똑 닮았다. 덕수가 가족을 위해 모든 것을 바쳤다면 한 씨는 범위를 넓혀 한국 스포츠가 발전하는 데 밑거름이 됐다. 부상 치료를 위해 독일로 건너온 선수들이 안쓰러워 집에서 더운 밥을 먹인 게 계기가 돼 수십년간 각 종목 선수들을 극진히 보살폈다. 그래서 ‘재활의 아버지’라는 별명까지 얻었다. 쾰른에 사는 한씨는 전화 인터뷰에서 “영화 국제시장이 화제가 되면서 한국의 지인들로부터 종종 연락을 받는다”며 “난 그저 자식 같은 아이들이 마음 편히 재활할 수 있게 도운 것밖에 없다. 한국 스포츠 발전에 1%라도 기여했다는 말을 듣는다면 그걸로 만족한다”고 말했다.



50년 전 독일 가 간호사 부인 만나
재활 온 선수 등 불러 함께 생활
이병규·곽태휘 등 수십 명 다녀가

한일동 씨는 부상 치료를 위해 독일로 건너온 선수들을 보살피며 ‘재활의 아버지’라는 별명을 얻었다. 지난 2003년 무릎 수술을 위해 독일을 찾은 프로야구 LG 이병규(가운데)와 한 씨(왼쪽), 부인 이정숙씨. ▷여기를 누르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스포츠계의 덕수’로 불리신다고요.



 “내가 독일로 건너올 때는 한국이 세계에서 두 번째로 못 살았어요. 1965년에 파독 광부 5진으로 넘어왔는데, 그땐 우리나라 1인당 국민소득(GDP)이 70달러였거든. 태국이 120달러 할 때야. 지하 1000m에서 하루종일 석탄을 캐면 다음날 손가락이 제대로 펴지지도 않았어. 동료들이랑 울기도 참 많이 울었지. 그래도 매달 월급을 송금하면 온갖 마음고생이 싹 사라졌어요. 그때 내 월급이 한국 9급 공무원의 4개월치 월급이었거든. 가족들이 기뻐하는 모습을 상상하면서 견뎠지요.”



 -독일인들이 한국에서 온 근로자들을 보고 여러 번 놀랐다면서요.



 “1963년에 광부 1진이 왔는데, 못 사는 나라에서 온다고 독일 사람들이 선물로 옷을 준비했던 모양이야. 그런데 한국인들이 하나같이 양복을 쫙 빼입고 나타나서 놀랐다고 해요. 광부들인데 최하 학력이 고졸이고 대졸에 대학원 다닌 사람도 있을 정도라 놀라고, 쉴 때 클래식 음악을 즐길 정도로 예술과 문화에도 조예가 있어서 또 놀라고. 1진 120명이 입국하자마자 신체검사를 했는데 전원 회충이 나와서 놀랐다는 이야기도 들었어요. ”



전 프로야구 선수 심정수가 한일동씨에게 남긴 사인.
 -부인(이정숙씨)도 독일에서 만나셨죠.



 “아내는 간호사였는데, 나보다 1년 늦게 독일에 왔어요. 당시에 광부들과 간호사들이 15박17일로 유럽 단체 여행을 했는데, 같은 버스를 탄 인연으로 연애를 시작했지요. 결혼하려고 보니 와이프 집안 형편이 많이 어렵더라고. 한국에서 100만원이 있으면 떵떵거리고 살던 시절인데, 악착같이 모은 40만원을 가족 몰래 처가에 줬어요. 그 대신 착하고 헌신적인 아내를 얻었으니 성공했지 뭐.”



 -차범근의 독일 분데스리가 진출에 도움을 주셨다던데요.



 “1970년대에는 분데스리가가 세계 최고였거든. 우리 지역 팀인 FC 쾰른에 일본인 선수(오쿠데라 야스히코)가 뛰더라고. ‘한국이 일본보다 축구를 잘 하는데, 왜 분데스리가에 한국인 선수는 없을까’ 싶었지요. 당시 한국 최고의 축구스타였던 조윤옥씨가 연수를 왔길래 독일에서 성공할 만한 한국 선수를 추천해달라고 부탁했죠. 조윤옥 씨가 거명한 사람이 차범근이었지. 그 후로 차범근을 독일에 데려오기 위한 물밑 작업을 시작했지요.”



 - ‘스포츠 재활의 아버지’로 유명하시죠.



 “조윤옥씨를 계기로 축구인들이 독일에 오면 우리 집을 찾았어요. 방도 내주고 운전과 통역까지 제공했거든. 작게나마 애국을 한다는 자부심이 있었지요. 우연찮게 고정운(SPOTV 해설위원) 선수가 독일에 재활하러 왔는데 호텔방에서 외롭게 지낸다는 소식을 들었어요. 집에 데려와 돌봐준 게 여기까지 왔지. 나중엔 아예 집을 개조해서 선수들이 편히 묵을 수 있게 게스트하우스처럼 만들었어요. 독일에서 수술을 받은 축구 선수는 대부분 우리 집에 왔다고 보면 되고, 야구·농구 선수도 꽤 돼요. 다들 아빠·엄마라고 부르고 잘 따라줘서 내가 더 고맙지. 그분들이 스포츠 에이전트로 일하는 아들(마쿠스 한)에게 여러모로 도움을 주고 있어요.”



 -기억에 남는 손님은 누구인가요.



 “김호 감독이에요. 자비를 들여서 독일로 유학 온 최초의 한국인이지. 여기서도 축구 공부에만 매달렸지요. 선수로는 차범근 감독이 기억에 남아요. 우리 집에 머물 때 교포들이 자주 놀러왔는데, 한참 재미있게 대화하다가도 밤 10시가 되면 방에 자러 들어갔지. 그땐 ‘인간미가 부족하다’고 흉도 봤는데, 돌이켜보면 진짜 프로였던 것 같아. ‘축구 선수는 70분까지는 똑같다. 마지막 20분에서 가치가 결정된다. 나는 그 20분을 위해 악착같이 운동한다’는 차 감독의 이야기를 듣고 감탄한 기억이 나요.”



  송지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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