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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젠 시민이다] 왜 지금 시민 교육이 절실한가

박재창
한국외대 석좌교수
우리가 서구로부터 도입한 간접민주주의 제도는 서구가 근대화 과정에서 빚어낸 역사적 진화물이다. 영국의 청교도 혁명이나 프랑스 대혁명을 추동한 시민의식이 참정권운동을 거쳐 자본과 노동을 양 축으로 하는 대중정당 제도를 고안해냈다. 전통사회에서 근대사회로 이동하는 과정에서 축적된 성찰적 시민의식이 빚어낸 빛나는 성과물이다. 그런 만큼 제도로서의 서구 민주주의는 외피에 지나지 않고, 이를 운영하기 위해서는 그의 속내에 해당하는 성찰적 시민이 전제돼 있어야 한다.



 그러나 우리는 달랑 디자인으로서의 서구 민주주의를 수입했을 뿐, 이를 운영하는 데 필요한 사회적 에너지 확보에는 크게 유념하지 않았다. 이미 성찰적 시민이 성장한 서구로서는 이에 대해 별도의 노력을 경주해야 할 이유가 없었다. 외피를 모방하는 데도 벅차던 우리는 서구가 진력하지 않는 민주시민 양성에 주목할 만큼 총명하지도 않았고 사회적 여유도 없었다. 면허도 없이 수입차 운전을 시작한 셈이다.



 안보의 위협과 경제적 빈곤은 순탄치 못한 도로 사정과 같았다. 산업사회와 정보사회로 이동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사회적 단절과 구조적 갈등은 끊어진 교량이나 수렁처럼 우리를 험난한 길로 내몰았다. 급속한 경제발전을 위해 과속하는 가운데 인사사고도 적지 않았다. 개인의 자유와 인권이 제한되기 일쑤였다. 경제발전으로 도로 포장률이 높아지자 이번에는 쏟아지는 자동차의 홍수로 교통체증이나 크고 작은 접촉사고가 빈발했다. 정경유착과 권언유착이 일상처럼 자리 잡고 방치된 사회갈등 비용이 국가의 1년 예산에 버금가게 되었다.



 왜곡된 정치 과정과 부패한 패거리 질서가 외과수술 후의 부정유합처럼 굳었다. 부정유합은 부러진 뼈가 제 위치에 붙지 않고 굳어진 상태를 말한다. 이를 다시 펴는 데 따르는 위험과 고통 같은 기회비용의 추가지출 때문에 흔히 그냥 거기에 맞추어 엉거주춤 사는 게 보통이다. 비정상의 일상화인 셈이다. 세월호 사건 이후 우리 모두가 국가 대개조를 외쳐야 했던 이유다. 심각한 것은 설사 대개조에 나선다 하더라도 지금까지 지구촌의 표준처럼 여겨왔던 서구 민주주의 제도 자체가 더 이상은 기준모델이 될 수 없다는 데 있다.



 산업화 과정의 사회 수요에 부응해 고안된 서구식 간접민주주의 제도는 정보사회 이후의 사회구조와 더 이상 상합하지 않는다. 여기에 더해 지구화 시대의 도래는 근본부터 다른 국정 운영체계를 요구한다. 근대의 국가권력이 일국주의 경계 내의 지배권을 전제로 운영되는 것이었다면, 이제는 국가 간의 경계를 넘어 활동하는 사회경제 관계를 조율할 수 있는 상부구조가 필요하게 되었다. 근대국가를 초극하는 창조적 대안 개발이 요청된다. 이를 감지한 서구사회는 이미 국정 운영체계의 재(再)디자인에 들어섰다. 다만 아직 완성된 대안 패러다임을 갖지 못했기 때문에 작동하지 않는 기존 제도의 일부를 허물거나 보수하는 작업이 한창이다.



 중앙정부의 권한을 대폭 지방정부로 이양하거나 국정과정의 시민참여 공간을 혁신적으로 확대하고 있다. 합의제 의사결정 모형을 도입하고 심의민주주의로 압축되는 거버넌스 체제를 강화한다. 작동하지 않는 상부구조 대신 그 상부구조의 출발점이자 고안자인 시민에게로 권력의 중추를 이동하기 시작한 것이다. 시민이 국정운영의 동반자 내지는 중심축이 되어야 한다는 인식이 확산되면서 시민 재교육에도 나섰다. 민주시민 교육과 지구시민 교육을 확대하기 시작한 것이다. 서구문화 자체가 성찰적 시민활동의 결과물이면서도 새로운 시대수요에 조응한 시민역량의 확장에 나선 것이다.



 우리는 어떤가? 부정유합으로 일그러진 상부구조로는 더 이상 국가운영이 불가능한 지경에 이르렀다. 정부에 대한 불신이 폭발 임계점에 이른 여러 이유 가운데 하나다. 산업화는 늦었지만 정보화는 선도한 결과 지구촌 최고의 정보사회를 구가하고 있다. 더 이상 지구촌의 변방국가도 아니다. 정보화 시대의 지구화 현상에 대응해야 하는 수요가 그만큼 더 클 수밖에 없다. 새로운 국가경영 모델에 대한 요구가 절박한 이유다. 이를 해결해야 할 상부구조 자체가 문제인 만큼 시민이 나서는 수밖에 다른 도리가 없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우리에게는 아직 성찰적 시민이 축적돼 있지 않다. 급변하는 정보사회에서는 상부구조가 문제 해결에 나설 만큼 한가로운 시간적·공간적 여유를 허용하지도 않는다. 문제는 성찰적 시민, 준비된 나라의 주인 없이 국가경영이 가능하지 않은 시대에 돌입했다는 데 있다. 이제라도 한시바삐 성찰적 시민 육성을 위한 거국적 결단에 나서야 한다. 민주시민 교육을 다급한 마음으로 주문하는 이유다. 위기는 위험이자 기회라는 말도 있지 않은가? 우리도 한번쯤 이 지긋지긋한 부정유합에서 벗어나 정상국가를 운영하는 축복을 누려보아야 하지 않겠는가? 우리가 고안하는 국정운영 양식이 지구촌의 새로운 표준으로 작동하지 말라는 법도 없다. 우리는 지금 바로 그런 시대에 살고 있다.



박재창 한국외대 석좌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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