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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톱만 한 요놈, 삼성의 보물



7개월 전이었다. 미국 선밸리에서 이재용(47·사진) 삼성전자 부회장과 팀 쿡(55) 애플 최고경영자(CEO)가 만났다. 이건희(73) 삼성전자 회장은 입원 중이었고, 두 회사는 특허소송으로 으르렁거릴 때였다. 한 달 후 애플은 미국을 제외한 국가에서 삼성에 대한 소송을 철회했다. 둘은 마냥 싸울 수만은 없는 관계다. 경쟁자지만 협력자이기 때문이다. 애플이 아이폰을 만들기 위해선 반도체가 필요하다. 삼성이 잘 만드는 제품이다. 주어를 바꾸면 삼성에 애플은 고객이다. 애플이 더 많이 팔면 삼성도 더 많은 돈을 번다. 이 부회장이 이 역설을 파고들기 시작했다.

스마트폰 반도체 ‘e팝’ 양산
D램·낸드플래시·컨트롤러
하나로 합쳐 면적 40% 축소
단말기 두께 줄이고 절전



 삼성전자는 스마트폰용 반도체 ‘e팝(ePoP)’을 세계 최초로 양산한다고 4일 발표했다. 3GB 의 모바일 D램과 32GB 낸드플래시, 컨트롤러를 하나의 칩으로 만든 제품이다. 하나로 합치자 각각 만들어 넣을 때보다 칩이 차지하는 면적을 40% 줄일 수 있었다. 웨어러블 기기에선 60%를 줄인다. 작은 스마트 기기에선 0.01㎜도 금쪽이다. 더 많은 기능을 넣거나 더 얇은 스마트폰을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빨라진 속도와 절전은 덤이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앞선 기술력과 ‘원 칩’이란 아이디어를 결합한 전략 상품”이라고 설명했다.



 이 부회장은 e팝으로 세 마리 토끼를 사냥 중이다. 첫 번째 토끼는 메모리 반도체 시장에서의 절대적 우위를 더 확고히 하는 거다.



김병기 키움증권 애널리스트는 “최고 사양인 20나노급 메모리 시장은 경쟁 상대가 없는 삼성의 독무대”라고 규정한다. 시장이 잔뜩 걱정했던 지난해 4분기 삼성전자의 영업이익을 5조원대로 떠받친 것도 메모리 반도체였다. 잘하던 것을 더 잘하는 것, 이 부회장이 물려받은 경영 노하우다.



두 번째는 시스템 반도체 시장의 장벽 허물기다. e팝은 스마트폰의 두뇌 역할을 하는 애플리케이션 프로세서(AP) 위에 탁 올려놓으면 되는 제품이다. 삼성이 자체 개발한 AP인 엑시노스와 e팝을 묶어 팔면 고객 입맛에 따라 다양한 변주가 가능하다. 발열 문제도 해결했다. AP가 일을 하면 열이 난다. 내버려두면 100도까지 오른다. 모바일 AP 시장을 53% 차지한 퀄컴은 발열 논란을 겪고 있다. 삼성이 열에 약한 낸드플래시의 과열 문제를 해결했다는 상징성은 크다. 전자업계 관계자는 “e팝의 발열 문제를 해결했다는 것은 엑시노스의 발열에는 전혀 문제가 없다는 의미”라고 해석했다. 삼성은 다음달 1일 나올 갤럭시 S6에 열 전도율이 높은 메탈 소재를 사용하기 때문에 발열이 핵심 이슈다. 그런데 삼성은 갤럭시 S6에 자체 AP를 넣을 계획이다. 발열 문제에 자신 있다는 얘기다.



 세 번째는 삼성만이 가진 장점의 극대화다. 스마트폰 시장에서 경쟁하는 업체 중 삼성처럼 반도체 등 부품과 완제품을 모두 만들 수 있는 업체는 흔치 않다. 애플이 도저히 할 수 없는 일이기도 하다. 스마트폰 시장의 경쟁은 격렬해졌지만 시장의 크기는 계속 불어나고 있다. 2013년 9억9000만 대였던 스마트폰 시장 규모는 내년 15억 대가 될 전망이다. 경쟁자들이 시장을 뺏어가도 삼성이 반도체를 공급할 수 있으면 전체적으로 삼성에 이득이 될 수 있다.



 시장조사업체인 가트너에 따르면 애플이 지난해 구입한 반도체는 258억 달러어치(세계 2위)다. 이미 업계에선 애플의 다음 제품인 아이폰 7의 AP를 삼성이 위탁 생산할 것이란 관측을 기정사실화하는 분위기다.



 노근창 HMC투자증권 애널리스트는 “삼성의 최대 강점은 부품과 완제품을 동시에 만든다는 것”이라며 “e팝은 삼성이 잘할 수 있는 것을 통해 미래를 개척하겠다는 의미”라고 평가했다.



이건희 회장의 입원 후 삼성그룹에 가장 필요한 것은 안정이었다. 이 부회장은 지난해 4분기 실적으로 첫 시험대는 무난히 넘기고 e팝을 통해 그가 그려갈 가까운 미래에 대한 방향성을 보여줬다. 시간도 벌었다. 그러나 충분하지는 않다. 시장은 하루가 다르게 변한다.



 지난달 19일 열린 삼성그룹 신임 임원 만찬에서 이 부회장은 건배사를 했다. 그러나 임원들의 건배 구호 소리가 좀 작았다. 이 부회장은 잔을 다시 들고 말했다. “패기가 이렇게 없어서 어떻게 합니까.” 두 번째 건배 제의에 따른 구호는 호텔 로비에서 들릴 정도로 컸다. 삼성의 안정을 확인한 시장은 삼성의 패기를 기다리고 있다.



김영훈·김현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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