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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의 양심' 폰 바이체커 전 대통령 타계

[사진 중앙포토]
독일이 과거사를 직시해야 한다고 역설했던 통일 독일의 초대 대통령 리하르트 폰 바이체커가 지난달 31일(현지시간) 별세했다. 95세.

바이체커 전 대통령은 1984년 서독 대통령으로 선출됐고 90년 통일된 이후에도 4년 더 대통령의 자리에 머물렀다. 그는 85년 2차 대전 종전 40주년 기념 연설에서 나치 독일의 어두운 과거사를 직시해야 한다고 역설하면서 전 세계의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고인은 당시 “어느 국가도 전쟁과 폭력의 비난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며 “(나치 독일에 의한) 유대인 학살은 역사상 유례없는 일”이라고 말했다.

이어 “5월8일(종전기념일)은 독일에게도 ‘해방의 날’이다. 유죄든 아니든, 젊었든 연로했든 우리 모두 과거를 받아들여야 한다”고 했다. 또 “그 누구든 과거에 대해 눈 감는 사람은 현재를 볼 수도 없다”며 “독일인들은 꾸밈이나 왜곡 없이 진실을 직시해야 한다. 회고 없이는 화해란 있을 수 없다”고 강조했다.

89년 서독 건국 40주년에서 한 “독일은 되돌릴 수 없을 정도로 유럽의 일부다. 우린 강대국도, 강대국들을 위한 노리개도 아니다”란 연설도 유명하다. 이런 고인을 두고 한 역사학자는 “84년 바이체커 대통령 선출 이후 독일 정부의 도덕적 위상이 크게 올랐다”(뉴욕타임스)고 말했다. 실제 ‘국가적 양심의 수호자’로 불리곤 했다. 90년 통일 과정에서 헬무트 콜 서독 총리와 큰 역할을 한 것으로도 알려졌다.

고인은 명망 있는 남작 가문 출신이다. 외교관이던 선친은 나치 독일 때인 38년 외교장관을 거쳐 43년 바티칸 주재 독일 대사를 지냈다. 이 때문에 2차 세계대전 후 열린 뉘른베르크 전범 재판정에 섰다. 당시 괴팅겐법대에 재학 중이던 고인이 선친을 직접 변호하기도 했다. 선친은 독일 레지스탕스였다고 주장했으나 법원이 받아들이지 않았다. 결국 18개월을 감옥에서 보냈다. 고인 자신도 2차 세계대전에 독일군으로 참전했었다.

이 때문에 공직을 피했던 고인은 42세이던 62년 기독교민주연합(CDU)에 가입하면서 정계에 발을 들여놓았다. 한국과도 인연이 깊어 김대중 전 대통령과는 40년 지기로 알려졌다.

런던=고정애 특파원 ockha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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