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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 곳곳에 왕릉만한 쌀더미




지난달 29일 오후 충남 당진시 우강농협 미곡종합처리장(RPC). 입구부터 파란색 덮개를 씌운 높이 5~6m짜리 더미가 곳곳에 보였다. 미곡처리장 창고가 가득차 밖에 내놓은 벼다. 우강농협은 지난해 11월 이곳 농민들로부터 벼 1만8000여t을 샀다. 벼를 보관할 수 있는 창고 규모는 8000t인데 저장할 수 있는 창고 4개가 가득차 밖에 쌓아놓은 것이다.

강문규(56) 우강농협 조합장은 “밖에 쌓아둔 벼를 누가 훔쳐갈까봐 잠도 못잘 지경”이라며 “우강면에 새로 생긴 ‘우강산’을 보여 주겠다”고 했다. 그가 향한 곳은 RPC에서 1km 떨어진 폐교였다. 가보니 운동장은 검은색 차광망으로 둘러싸인 벼 더미가 가득했다. 10m 높이의 더미는 멀리서도 눈에 확 띄는 게 커다란 왕릉처럼 솟아 있었다. 이곳에 있는 벼 양은 5600t. 이마저도 자리가 부족해 우강면 신촌리 인근 공터에 4000t을 더 쌓아뒀다. RPC 창고 밖에 내놓은 벼는 극히 일부였던 것이다.

전국 농협 RPC들이 남아도는 쌀 때문에 고민에 빠졌다. 처분은 못하고 그저 빈터에 쌓아두고 있는 상태다. 쌀이 남아도는 이유는 우선 2013년에 이어 지난해까지 2년 연속 풍년이 들어서다. 그럼에도 쌀 소비량은 갈수록 줄고 있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한국인 1인당 연간 쌀 소비량은 65.1kg으로 역대 최저치를 기록했다.

생산량은 많은데 수요는 줄고, 쌀시장 개방까지 앞두고 있어 지난해 가격 하락을 예감한 민간 RPC들은 쌀을 별로 사들이지 않았다. 그 바람에 농협 RPC들은 예년보다 더 많이 쌀을 수매했다. 2013년 1만4000여t을 수매했던 우강농협은 올해 수매량을 1만8000t으로 4000t 늘렸다. 전남 영암군의 RPC 역시 수매량을 2000t 늘렸다. 그렇게 사들인 쌀을 쌓아만 놓고 있는 것이다. 영암군농협쌀조합공동사업법인 배영수(46) 대표는 “봄이 오면 벼가 부패할까봐 걱정”이라며 “3월 전까지 팔지 못하면 헐 값에 투매라도 해야 할 판”이라고 말했다.

충북에서는 대량 수매한 쌀을 직원들에게 할당 판매까지하고 있다. 청원생명농협쌀조합공동사업법인 강신택(63) 조합장은 “전체 수매 물량의 20%인 4000t 정도를 전 직원에게 할당해 친척들이나 거래처, 학연ㆍ지연을 이용해 판매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그는 “정부가 24만t을 사들여 시장에서 격리한다고 해놓고 이제까지 18만t만 사들이는데 그쳤다”며 “나머지 6만t을 매입할 때는 농협 RPC 쌀부터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최종권 기자 choigo@joongang.co.kr

[사진 중앙포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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