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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는 ‘나오시는’ 게 아니고, 눈은 ‘예쁘신’ 게 맞습니다

지난달 27일 서울 서대문구 연희로11나길에 있는 의류매장 ‘보엘’ 앞에서 한 고객이 ‘이십니다’라는 잘못된 표현에 줄을 긋고 ‘SALE 입니다’라고 새겨 넣은 포스터를 들여다보고 있다. 이 고객의 손에 든 커피잔에도 ‘주문하신 커피 나왔습니다’라는 문구가 새겨져 있다. [사진=강영호 객원 사진작가, 포스터 디자인=김해인]
점심을 먹고 나오는 길입니다. 카운터의 아저씨, 계산서를 보고는 “3만원이십니다”라고 말합니다. 회사로 들어오는 길에 커피숍에 들렀습니다. 10대로 보이는 여성 종업원이 “아메리카노 나오셨습니다”라며 목청을 높입니다. 퇴근길 백화점에 들러 봄옷을 한 벌 골랐습니다. 이번엔 20대로 보이는 여성 점원이 미안한 표정을 지으며 “사이즈가 없으십니다”라고 말합니다.

매우 공손한 그들의 태도에 오히려 불편해집니다. 제가 아니라 3만원이, 아메리카노가, 사이즈가 우대받는 세상에 살고 있다는 데 생각이 미쳤기 때문입니다. 이들뿐 아닙니다. 어떤 구두는 특별할인 제품이‘시’고, 영화표는 툭하면 매진되‘십’니다. 우리는 언제부터 이렇게 사람보다 사물을 높이게 됐을까요. 유통업계 한 관계자는 “2000년대 들어 유통업체마다 서비스 마인드를 강조하면서 직원·점원 교육을 강화했는데, 그러면서 사람뿐 아니라 사물까지 높이는 잘못된 존칭이 확산된 것으로 보인다”고 말합니다.

다섯 번째 LOUD는 손님과 종업원이 대화하는 현장에서 외칩니다. 바로 ‘사물 존칭’을 해결하자는 제안입니다. 제안에 앞서 궁금증부터 해결하기로 했습니다. 서비스업 종사자들이 사물 존칭을 잘못된 표현인 줄 알면서도 쓰는지 여부였습니다. LOUD 페이스북에 사물 존칭 경험을 나눠 보자는 글을 올렸더니 여러 사람이 이런 답을 올렸습니다. “혹시 고객이 기분 나쁠까 봐 쓴다”고요. 잘못된 표현인 줄 알지만 서비스업계에서 일상적으로 쓰는 분위기에서 바르게 말하기가 오히려 어렵다는 얘기입니다. 국립국어원 장혜원 공공언어과장은 “과도한 존칭에 대한 지적이 잇따르면서 일반 국민은 물론 서비스업 종사자들도 문제점을 잘 알고 있지만 고객 존대를 해야 하는 상황에서 어쩔 수 없이 선택하는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그는 “이런 현상은 단순한 언어의 문제가 아니라 서비스를 주고받는 사람 간에 격차가 크게 있다고 생각하는 인식, 즉 사회적 문제”라고 지적했습니다.

사물 존칭의 해결을 위해 광운대 공공소통연구소는 작은 실험을 했습니다. 잘못된 존칭이 가장 빈번하게 일어나는 커피숍과 의류점을 대상으로 했습니다. 손 데지 말라고 씌우는 테이크아웃용 컵홀더에 “주문하신 커피 나 오셨 왔습니다”라고 새겼습니다. 그 아래로 ‘사람이 사물보다 높습니다[국립국어원]. 저희 매장에서는 올바른 국어 사용을 위해 사물 존칭을 사용하지 않습니다’는 문구를 새겨 넣었습니다.

패션매장의 쇼윈도에 붙이는 대형 포스터에는 ‘SALE 이십니다 입니다’는 문구와 함께 ‘사물 존칭을 사용하지 않는다’는 작은 글귀를 넣었습니다. 이종혁 광운대 공공소통연구소장은 “언어는 습관이고 문화이기 때문에 점원들을 계도하는 것만으로는 사물 존칭이 해결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며 “잘못된 존칭의 문제점을 함께 인식할 수 있도록 고객과 종업원의 접점이 되는 곳에 이런 문구를 새겨 넣은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이번 실험에 협조해 준 커피숍은 서울 서대문구 연희로11 나길에 있는 ‘노아스로스팅’과 ‘래핑폭스’, 옷가게는 인근의 ‘보엘’과 ‘세컨드 무브’였습니다. 노아스로스팅은 눈에 익었습니다. 왜 그런가 했더니 최근 중앙일보 경제섹션에 연재를 시작한 허영만 작가의 만화 ‘커피 한잔 할까요?’의 무대가 된 곳이더군요. 만화에서는 출입문과 탁자 소품 등을 모두 실제 모습 그대로 재현했습니다. 노아스로스팅에서는 컵홀더 1만 개를 제작해 이미 한 달째 손님들에게 사용하고 있었습니다.

컵홀더에 새긴 작은 문구는 고객과 점원 모두에게 효과를 발휘했습니다. 커피를 주문한 회사원 민병욱(28·서울 강북구)씨는 “사물 존칭을 워낙 자주 듣다 보니 바르지 않은 어법이란 것을 개념적으로는 알아도 실생활에서 들었을 때 별로 의식한 적은 없었다”며 “컵홀더의 문구를 읽어 보니 새삼 아는 대로 실천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합니다. 노아스로스팅의 조형익 본부장은 “바른 어법을 강조한 컵홀더 덕분에 ‘커피 나왔습니다’는 말을 미안한 마음 없이 당당하게 쓸 수 있게 됐다”고 했습니다.

기왕 바른 존칭에 대한 얘기를 하는 참이니 공부 조금만 더 하시지요. 다음 중 어느 쪽이 맞는 표현일까요. 듣는 이는 말하는 이보다 연배가 높습니다. 보기는 두 개입니다. ①눈이 참 예쁘시네요. ②눈이 참 예쁘네요. ‘눈’도 사물이니 ①번은 과한 존칭이고 ②번이 맞다고 할 수 있지만 이 경우 정답은 ①번입니다. 바로 ‘간접 존대’입니다. 간접 존대는 신체·성품·심리·행위·소유물과 같이 상위자인 상대방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대상을 통해 듣는 이를 높이는 어법입니다. 장혜원 과장은 “‘모자가 멋있으십니다’ ‘안경이 정말 세련되세요’처럼 모자·안경이라는 상대의 소유물을 통해 듣는 이를 높이는 것은 사물 존칭에 해당하지 않는다”며 “‘걷기 편하실 겁니다’ ‘선택이 탁월하십니다’처럼 상대자의 행위도 간접 존칭의 대상이 된다”고 설명합니다.

독일의 실존주의 철학자 마르틴 하이데거는 “언어는 사고하는 존재의 집”이라고 했습니다. 언어는 영혼이란 존재가 거(居)하는 육신이라는 얘기입니다. 육신을 단련하듯 언어생활도 건강하게 가꿔야 한다는 얘기입니다. ‘얼 사상’을 강조했던 위당(爲堂) 정인보 선생은 ‘말은 마음의 소리’라고 했습니다. 바른 말투는 반듯한 마음 품새에서 나옵니다. 과공(過恭)은 비례(非禮)라는 옛말도 있습니다. 물건을 높이는 것은 버려야 할 언어습관입니다. 과도한 존대어가 대화를 어색하게 이끌 수 있습니다.

그러니 앞으로 사물을 높이는 대신 어법에 꼭 맞는 말을 사용하도록 하세요. “LOUD 5회 기사 나‘왔’습니다. 즐겁게 읽으‘세’요”.



스마트폰으로 QR코드를 찍어보시면 사물 존칭을 해결하기 위한 컵홀더와 포스터 동영상을 보실 수 있습니다.

LOUD 시리즈 게재 순서 ①괄호라인 프로젝트. 금연운동 이렇게(1월 4일자) ②인터넷 중독 막는 아이디어(1월 11일자) ③스쿨존 횡단보도 눈동자 표시(1월 18일자) ④뒷사람 위해 출입문 잡아주기(1월 25일자)


박태희 기자 adonis55@joongang.co.kr

도민이 행복한 더 큰 제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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