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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체사상 옹호해 ‘참된 진보’ 성장 방해한 건 역사적 과오

통합진보당이 마침내 그 ‘종북 성향’으로 말미암아 헌법재판소의 해산 결정에 따라 해산됐다. 그러면 통진당만이 ‘종북 성향’인가? 그렇지 않다. 진보를 자처하는 이른바 진보적 지식인과 진보적 시민운동단체의 대부분이 ‘종북 성향’을 지니고 있다. 통진당과 그 전신인 민주노동당이 주사파에 의해 주도돼 왔다는 것은 공공연한 사실이었는데도 진보적 지식인 대부분이 통진당과 민주노동당을 지지, 지원했다.

이른바 진보언론도 마찬가지다. 통진당의 부정선거 사건이나 내란음모 사건이 드러나 여론의 질타를 받을 때 잠깐 통진당을 비판하는 모습을 보였으나 조금만 시간이 지나면 여전히 통진당을 지지, 지원했었다. 이번에 통진당이 헌법재판소의 결정에 따라 해산됐을 때 이른바 진보지식인 대부분이 이 해산 결정을 비난했는데, 비록 그 비난의 논리가 통진당을 직접 옹호하는 것은 아니었을지라도 결과적으로 통진당과 같은 ‘종북 성향’의 사이비 진보정당을 옹호하는 것이었음은 분명하다.

당 해산 선고 후 헌법재판소 밖에서 통진당 의원과 당직자들이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중앙포토]
그런데 이른바 진보적 지식인들이 ‘종북 성향’ 내지 ‘친북 성향’이라고 한다 해서 이들이 북한의 간첩이라거나 북한 정권에 맹종한다는 뜻은 전혀 아니다. 물론 간첩과 다름없거나 북한 정권에 맹종하는 사람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대체로 북한 정권의 정책이나 주장에 동조할 뿐 북한 정권을 비판하지 않는 것을 말한다. 심지어 북한 정권의 과오를 잘 알고 있고 그래서 북한 정권의 정책이나 주장에 대해 비판적인 견해를 갖고 있으면서도 그것을 겉으로 표현하지 않음으로써 ‘종북 성향’ 내지 ‘친북 성향’이란 비난을 들어 마땅한 경우도 대단히 많다.

여기서 ‘친북’이라고 할 때의 ‘친북’은 ‘친북한 정권’이지 ‘친북한 인민’이 아니다. 그래서 이 땅의 사이비 진보세력의 ‘친북’은 ‘친북한 정권’으로서 ‘반북한 인민’임을 직시해야 한다.

왜 이 땅의 자칭 진보지식인들은 ‘종북 성향’ 내지 ‘친북 성향’이 됐을까? 그것은 이들 진보지식인이 사회주의(공산주의)에서 벗어나지 못한 때문이기도 하지만 북한 콤플렉스에 사로잡혀 있기 때문이었다. 북한을 비난하는 입장을 취하면 마치 군사독재 정권 내지 보수세력의 편에 서는 듯한 인상을 줄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대부분의 ‘친북 성향’ 내지 ‘종북 성향’은 자신의 정치적 신념에 따른 것이라기보다 기회주의의 소산이라고 할 수 있다.

필자는 1990년대 초 재야 운동권 내지 진보적 지식인들이 ‘3대 콤플렉스’ 곧 학생운동 콤플렉스, 노동운동 콤플렉스, 북한 콤플렉스에 사로잡혀 있음을 지적한 일이 있다.

학생운동 콤플렉스란 학생운동권이 무슨 주장을 하면 그것에 대해 아무런 비판을 하지 못하고 따르는 것을 말하고, 노동운동 콤플렉스란 노동운동권에서 주장하는 바를 그대로 따르는 것을 말하며, 그리고 북한 콤플렉스란 북한에서 주장하는 바에 대해 아무런 비판을 하지 못하고 그대로 따르는 것을 말한다. 80년대 중반 마르크스·레닌주의로서의 사회주의와 주체사상이 물밀듯 밀려들 때 제대로 된 진보지식인이라면 사회주의와 주체사상의 시대착오성과 반민주성, 반인간 해방성을 지적하면서 학생운동권과 노동운동권의 교조주의를 비판했어야 하는데도 그렇게 하기는커녕 오히려 그들의 주장에 동조하고 말았다. 이것은 그들이 기회주의자들이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북한 정권의 반민주적이고 반민족적이며 반인민적인 행태들에 대해 비판적이어야 했는데도 그렇게 하기는커녕 오히려 그것에 동조하기 바빴던 것이다.

그래서 이 땅의 진보지식인들은 지금이라도 이러한 과오를 통렬히 반성해야 하는데도 아직도 북한 콤플렉스 등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으니 한심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더욱이 북한의 경우 그 잘못된 사상과 이념, 정권과 지도자로 말미암아 인민이 아사지경에 몰려 있는데도 그 사상과 이념, 정권과 지도자를 비판하지 못하니 이런 자세는 진보적 자세가 아닌 것은 말할 것도 없고 운동가나 지식인의 자세도 아니다.

운동권이나 진보지식인들이 이렇게 된 배경에는 군사독재 정권이 학생들과 노동자들의 정당한 민주화 요구마저 북한을 이롭게 하는 행위라며 부당하게 탄압하고 매도한 데 대한 반작용인 점이 크다. 그리고 북한에 대해서도 군사독재 정권이 사실을 왜곡해서 비난·매도하는 일이 비일비재함으로써 북한을 비난하면 군사독재 정권에 동조하는 것으로 매도될 수 있어 그렇게 하지 못한 점도 있었다. 이런 점에서 진보지식인들의 친북 편향은 군사독재 정권의 산물이기도 했다. 그러나 이것이 지식인들의 친북 편향을 정당화하는 것이 될 수는 없다. 지식인은 언제나 사실에 기초해 합리적으로 판단할 줄 알아야 하기 때문이다.

아무튼 이 땅의 진보지식인들이 사이비 진보인 북한의 주체사상과 사회주의를 진보이념으로 간주해 옹호해옴으로써 참된 의미의 진보이념 정립이나 진보세력 육성을 방해해 왔는데 이것은 이 땅의 진보지식인의 역사적 과오가 될 것이다.

그런데 이 땅의 이른바 진보세력이 북한 정권을 비난하지 않는 또 다른 이유가 있다. 좋든 싫든 북한은 함께 민족 통일을 이뤄야 할 대상이기 때문에 설사 북한 정권에 잘못된 점이 있더라도 이를 비판하는 것은 옳지 않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런 주장 또한 잘못이다. 북한 정권은 통일을 원하지 않기 때문이다. 통일이 되면 자신들이 설 자리가 없다고 볼 것인데 어떻게 통일을 원하겠는가. 그래서 진정으로 민족 통일을 원한다면 민족 통일을 반대하는 북한 정권의 실체를 분명하게 인식해 북한 정권이 붕괴되기를 바라야 할 것이다. 북한 정권의 붕괴를 주장하는 것은 남한 사람의 입장에서 민족 통일을 위해서만이 아니다. 북한 인민의 입장에서도 북한 정권이 붕괴되기를 바랄 것이기 때문이다. 북한 인민이 빈곤과 압제에서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길이 남한과의 통일인 터에 남한과의 통일을 반대하면서 북한 인민을 억압하고 있는 북한 정권의 붕괴를 어떻게 바라지 않겠는가.

지금 이른바 진보적 지식인들은 박근혜 정권의 종북 몰이를 규탄하는 일이 많다. ‘종북 성향’이 분명한 통진당의 해산 결정이나 역시 ‘종북’으로 비난받아 마땅한 재미동포 신은미씨의 강제 출국 등을 두고도 박근혜 정권이 종북 몰이를 한다고 규탄하는데 바로 이런 것이 진보적 지식인들의 ‘종북 성향’을 말해준다. 박근혜 정권의 종북 몰이와 과거 군사독재 정권의 ‘좌경 용공 조작’은 다름을 알아야 한다. 군사독재 정권의 좌경 용공 조작을 규탄하는 것이 정당했다고 해서 지금 박근혜 정권의 종북 몰이를 규탄하는 것도 정당하리라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요컨대 이른바 진보세력이 진정으로 박근혜 정권을 이기려면 스스로 종북 성향에서 벗어나야지 박근혜 정권의 종북 몰이를 규탄하는 것으로는 이길 수 없음을 알아야 한다.


장기표 신문명정책연구원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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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