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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비수 곽태휘 ‘원톱’ … 슈틸리케 승부수로 극적 동점골

31일 열린 2015 호주 아시안컵 결승전에서 한국의 손흥민이 로스타임이 적용된 후반 46분 극적인 동점골을 터뜨리고 있다. 한국은 이 골로 경기를 연장전으로 끌고갔지만 2대1로 분패했다. [뉴시스]
아쉽지만 진 것을 받아들이자. 사실 이런 메이저 대회에서 홈팀을 결승에서 만난다는 것은 결코 편한 마음이 되지 못한다. 경기장이 온통 노란색으로 뒤덮인 상태에서 우리 페이스대로 경기를 이끌어 간다는 것은 어마어마한 정신력을 요구하는 데다 상대방의 심리적 압박을 대차게 압도하는 기술과 체력이 받쳐 줄 때나 가능한 것이기 때문이다.

전반은 예상대로 홈팀이 주도권을 가져간 상태에서 미드필드 진영에서의 기싸움이 전체를 지배했다. 이번 대회에 유달리 콤팩트한 포메이션을 유지하고 있는 호주는 전방과 후방의 폭도 폭이지만 양 사이드의 폭도 되도록이면 좁히는 바르셀로나식 형태를 흉내 내곤 했다. 하나 양 팀 다 정교한 패스워크가 운용되는 패싱게임이라기보다는 터프한 보디 체크와 일대일의 치열한 공방이 가속화되는 형세로 일관했다.

즉 우리의 왼쪽, 호주의 오른쪽 사이드로만 공이 집중되면서 전체적으로는 단조로운 시소게임으로 일관한 것으로 보이는데, 우리의 경우 중앙수비를 보던 박주호를 왼쪽 사이드 어태커로 기용, 오버래핑이 좋은 김진수와의 호흡을 통해 왼쪽 측면을 찌르는 게 가장 이색적인 변화였던 것으로 보인다. 아마도 이 부분이 이번 경기에 임하는 슈틸리케의 승부수였는지도 모른다. 박주호의 축구지능과 정확한 패스능력, 여기에다 일정 부분 축적됐다고 보는 유럽 리그에서의 경험을 바탕으로 단순한 수비진영에서의 클리어링보다 그의 창의적인 찬스 메이킹까지 기대한 것으로 보였다.

박주호의 위치 변화로 당장 큰 효과는 보이지 않았지만 전반 후반 박주호 쪽의 통로 개설에 의해 호주의 뒤 공간을 노리는 수법과, 차두리의 오른쪽 돌파에 의해 두 번에 걸친 손흥민의 슛이 연결되면서 답답한 공격의 숨통을 터주는 기회를 맞기는 했다. 하나 전반의 팽팽한 공방전은 이 대회의 찬스 메이커 마시모 루옹고가 홈 팬들에게 시원한 골을 선사함으로써 우리의 무실점 기록은 일단 종료됐다. 상대방에게 처음으로 등을 돌려 정조준 자세를 취하는 기회를 허용했다고 느끼는 순간, 골은 어김없이 그물에 꽂혔다.

5경기를 무실점으로 버텨 온 우리는 그간 약간의 운도 따랐던 것으로 치부해야 할 것이지만, 안타깝게도 결승전에서만큼은 지금까지의 그 운이 크게 따라 주지 못했다. 딱히 우리가 못했거나 호주가 잘한 것도 없는 전반이었으나, 그 골로 전반의 운명이 갈리는 것으로 정리됐다.

후반엔 왼쪽에서 고립돼 플레이해 온 박주호를 가운데로 보내고 수비형 미드필더를 보던 기성용을 왼쪽 윙으로 포진시켰다. 우즈베키스탄전에서 왼쪽 사이드를 본 기성용의 효과를 다시 기대하는 눈치였다. 손흥민은 약간 중앙으로 이동하면서도 차두리의 우측 오버래핑과 함께 좌측에서의 윙포워드 역할을 통해 호주 수비진의 중앙을 위협하는 형세를 구축했다. 전반에 유독 전진패스 하나만으로 상대를 공략하려 했던 우리 팀의 단조로움을 극복이라도 하듯 좌우를 넓게 벌려 주면서 호주의 수비진을 흩트려 놓으려는 변화를 모색한 것이다.

한 골을 뒤진 상태에서 후반의 템포가 점점 빨라지는 것은 충분히 예상 가능한 상황 전개였으나 이렇다 할 결정적인 찬스를 만들진 못했다. 후반 막바지까지 몰리자 슈틸리케는 거의 상상하기 어려운 승부수를 띄우는데, 제공능력이 좋은 수비수 곽태휘를 최전방 원톱으로 쓰는 최종 해법이었다.

여하튼 고공 플레이에 의한 몇 번의 공격에 곽태휘의 머리와 어깨를 맞은 공이 기성용에게 흘러가 손흥민이 종료 직전 만회골을 터뜨리는 데 성공한다. 아마 이걸 만화나 영화로 만들었다면 엉터리라고 손사래를 치겠지만, 축구는 간혹 만화나 영화보다 더한 드라마를 연출하는 기묘한 존재이기도 하다.

우리의 행운은 여기까지였다. 연장 전반 아무것도 아닌 상황에서 공격수를 놓친 한 번의 수비 실수가 결승골로 결정됐다. 연장 30분은 전술이나 기술의 문제가 아니라 끈기와 정열, 투지가 결정을 내는 시간이다. 호주는 거의 엇비슷한 실력에서 우리보다 좀 더 집중력과 끈기가 좋았다고 평해야 할 것 같다.

우리 선수들은 일단 가진 것 모두를 털어내 놓았다. 터프한 호주 선수들의 거친 플레이에도 평심을 잃지 않고 끝까지 최선을 다한 페어플레이 정신을 보여 줬다. 마지막까지 사투를 다했고 분통을 터뜨릴 만한 구조적인 문제점도 없었다. 월드컵 4강, 올림픽 동메달을 확보한 상태에서 27년 만의 결승 진출, 55년 만의 아시안컵 우승을 꿈꿨지만 다시 4년 뒤를 기약할 수밖에 없다. 그 어떤 대회 때보다 뒤끝이 나쁘지 않은 경기였다. 우리 팀이 이기면 더더욱 좋고, 글 쓰는 사람의 심장박동도 커지겠지만 새해 초 이런 멋들어진 승부를 본 것이 얼마만이었는가.

개인적으로는 꽤 친하게 지냈던 차두리의 마지막 메이저 대회였다는 것이 서글프다. 스스로 인터뷰에서 말한 것처럼 그는 늘 아버지 차범근의 그늘에서 마음고생이 결코 녹록지 않았다. 수퍼스타였던 그의 아버지를 넘지 못하는 한계를 지녔다는 것을 스스로 잘 알았던 차두리가 기대 이상의 괴력을 발휘했던 대회였으나 앞으로도 영원한 아시아의 라이벌이 될 호주를 이기지 못했다는 것이 내심 섭섭하기만 하다.

하지만 이청용과 구자철과 같은 팀의 에이스들이 전력 이탈한 상황에서도 여기까지 왔다는 것은 꼭 한국 사람이 아니라 하더라도 대견하게 생각해야 할 대목이다. 슈틸리케 감독은 이번 대회의 몇 가지 문제점을 분석한 뒤 좀 더 나은 대표팀을 만드는 데 고민해야 할 것이다. 기성용과 손흥민, 박주호와 같은 팀의 간판 스타들이 좀 더 성숙해지는 그 시점에 그가 우리에게 선물할 그 무엇을 창조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자.

개최국 호주에 대해서도 지난해 월드컵에서의 3전 전패 이래 사상 처음으로 아시안컵을 거머쥐었다는 성과를 칭찬하는 데 인색해 하지 말자. 어차피 우리 이웃들이 축구를 잘해야 우리가 세계 무대에서 더 나은 대접을 받을 수 있으니까.



허진 서울대 신문학과, 행정대학원 졸업. 외무고시에 합격해 주(駐)독일·헝가리·네덜란드 공관에서 총영사·참사관 등으로 일했다. 2002년엔 월드컵 대표팀 언론담당관을 맡았으며, 한때 전문지에 축구칼럼을 연재한 ‘축구논객’이기도 하다. 현재 외교부 기획조정실 조정기획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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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