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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직해 창문있는 집 살고 싶다” … 청년 주거빈곤층 139만명

20대 주거 문제 해결을 위해 설립된 ‘민달팽이 주택협동조합’의 달팽이집. 부엌·욕실 등을 함께 쓰는 셰어하우스다. 최정동 기자
서울 정릉동에 있는 한 고시원의 방. 5.5㎡ 넓이 공간이 책상과 침대만으로 꽉 찬다. 난방과 채광이 잘 안 돼 낮에도 어둡고 춥다.
#충남 홍성 출신인 A씨(26)는 서울의 한 사립대 휴학생이다. 그가 사는 곳은 노량진역 인근 고시원 지하방. 빛이 들지 않는 냉기 서린 방은 두 팔을 뻗으면 양쪽 벽이 손에 닿는다. 화장실과 욕실은 공용이다. 식사도 공용인 냉장고에 밑반찬을 넣어 두고 해결한다. 제대 후 몇 군데 고시원을 거쳐 이곳에 온 지 9개월째다. 신입생 땐 학교 기숙사에서 살았다. 학점 4.0을 넘겨야 연장할 수 있는 기숙사 생활은 1년으로 그쳤다. 주중·주말을 밤낮으로, 휴학과 복학을 반복하며 등록금·생활비를 버는 A씨가 공부시간을 확보해 성적을 잘 받는 건 쉽지 않았다. 월세는 20만원을 낸다. 매달 아르바이트로 약 160만원을 벌지만 주거비를 줄여야 복학을 위한 돈을 모을 수 있다. “대출받을 순 있지만 감당할 만큼 빌려야죠. 어차피 내가 다 갚아야 하는 거 아닌가요.”

#인천 소재 대학을 다니는 B씨의 10㎡(약 3평)짜리 원룸은 인천시 연수동에 있다. 열 달 전 한국토지주택공사(LH)의 대학생 전세임대주택제도를 통해 구했다. 대상자로 선발된 학생이 집을 구해 오면 LH가 집주인과 계약을 맺고, 학생에게 저렴하게 재임대하는 방식이다. 전세보증금 2700만원인 집에 살면서 B씨는 LH에 보증금 100만원 외에 매달 4만5000원의 임대료를 낸다. 집주인에게 10만원씩 따로 관리비도 주고 있다. 운 좋게 지원을 받아 주거비는 줄었지만 가시방석에 앉은 기분이다. 집주인들은 대학생 전세임대 계약을 기피한다. 절차가 복잡하고 소득이 노출되기 때문이다. B씨의 원룸 주인도 계약 후에야 제도를 이해하고 후회했다. “학생 때문에 세금이 많이 나왔다”며 B씨를 원망했다.

월세 부담에 주거환경은 포기
2000년대 20대는 줄곧 싸웠다. 등록금 투쟁을 벌이고 취업전쟁을 치러 왔다. 불안과 부담을 짊어진 청년에게 짐이 더해졌다. 주거난이다. 등록금과 고용 문제가 공론화되며 대책을 양산한 것과 달리 주거는 부차적으로 취급됐다. 한국도시연구소 최은영 연구위원은 “취업 후 수입으로 집을 살 수 있다는 믿음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고용이 불투명해지고 내집을 마련하기 어려워지면서 믿음은 무너졌다. A씨와 B씨처럼 부모에게 지원받을 수 없고 일자리도 장담할 수 없는 20대에게 주거 문제는 미래까지 잠식하는 위협이 됐다.

지난달 28일 대통령 직속 청년위원회는 수도권 대학생 원룸 세입자 1026명을 대상으로 한 ‘대학생 원룸 실태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이에 따르면 학생들은 평균 42만원을 월세로 낸다. 본인이 세를 내는 경우는 17.8%였지만 72.2%가 부담스럽다고 했다. “등록금에 월세까지 부모님께 죄송하다”는 것이다.

비용이 20대 주거 문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크다. 청년주거협동조합 ‘민달팽이 유니온’은 2013년 서울 40개 대학가의 저가 원룸 시세를 조사했다. 월세는 최저 32만원(노원구 공릉동)부터 최고 51만원(중구 장충동)이었다. 싼 원룸이 그렇다. 실제 대학가에 형성된 시세는 보증금 1000만원에 월세 50만~60만원이다. 수도·전기·가스 등 관리비도 평균 10만2400원이 든다. 한 달 주거비가 최소 50만원 이상이란 얘기다.

대학 졸업을 유예한 C씨(25)는 서울 동선동 원룸에 산다. 보증금 500만원에 월세 44만원이다. 관리비로 10만원이 나간다. 지하철역에서 가깝고 침대·책상 등 가구와 욕실을 갖춰 좁지만 만족하고 있다. 시세를 따져 보면 이 방을 구한 건 “운이 좋았다”고도 했다. 그래도 아르바이트로 버는 월 100만원 중 절반을 주거비로 쓰는 건 속상하다.

취업준비생 등 1인 가구 ‘사각지대’
비용은 다른 문제를 낳는다. ‘살 만한 집인가’이다. 보증금이 없어, 월세를 줄이려고 집이라기엔 부족한 곳에 사는 20대가 점차 늘고 있다. 민주정책연구원이 지난해 발표한 ‘서울시 청년가구의 주거실태와 정책연구’ 결과에 따르면 전국 청년의 14.7%, 서울 1인 가구 청년의 36%는 주거 빈곤 상태다. 주택법이 정한 최저 주거 기준 미달인 주택과 지하·반지하·옥탑방·고시원 등 불량 환경에 사는 청년이 전국에 약 139만 명 있다. 이들이 사는 집에선 얇은 벽 너머 소음에 잠을 뒤척이고 벽에 핀 곰팡이로 건강을 해치기 일쑤다. 소화·방범 등 안전시설을 기대하기도 어렵다.

2005년과 2010년 인구주택총조사 결과를 비교하면 고시원 등 주택 이외에 사는 서울의 1인 청년가구는 2818가구에서 2만2644가구로 급증했다. 5년이 지난 올해 사정은 더 나빠졌을 것으로 전문가들은 본다. 소득보다 임대료가 빨리 오르고 취업은 보장할 수 없는 상황이 계속되고 있어서다. 박신영 한국도시연구소장은 “부담이 적으면 주거의 질이 낮고, 살 만한 집은 주거비 부담이 크다”며 “경제적 부담을 지고 열악한 환경으로 밀려나는 청년 주거 빈곤층이 늘고 있다”고 말했다.

청년 문제라면 흔히 대학생을 떠올리지만 대학생은 그나마 사정이 낫다. 정부와 서울시는 ‘대학생 전세임대주택’ ‘희망하우징’ 등 대학생 지원대책을 시행 중이다. 가정을 꾸린 20~30대를 위해서도 ‘신혼부부 주택특별분양지원’ 등으로 지원한다. 문제는 학생이 아니면서 결혼도 하지 않은 이들이다. 취업준비생 등 1인 가구 청년들은 사각지대에 있다.

대전에 사는 D씨(28)는 취업 준비를 위해 서울로 이사할 생각이다. 통신료·교통비 등 생활비와 학원비를 생각하면 50만원 이상 월세를 부담할 자신이 없다. 부모님께 손을 벌릴 수도 없어 고시원을 알아보고 있다. 여성 혼자 고시원에 사는 게 꺼려지지만 대안이 없다.

취업을 위해 주거비가 비싼 서울로 왔지만 일자리를 찾기는 쉽지 않다. 직장을 구한다 해도 비정규직일 가능성이 크다. 대기업에 들어가도 조금 나은 월셋집으로 옮길 수 있을 뿐이다. 지하방에 사는 A씨는 “취직해 창문이 있는 전셋집에 살고 싶다”고 말했다.

이런 상황은 사회적 문제로 이어진다. 살 곳을 구할 수 없는 청년세대가 결혼과 출산을 유예·포기하는 것이다. 주거난을 겪는 청년들은 “결혼을 할 수나 있을지 모르겠다”고 공통적으로 말했다. ‘민달팽이 유니온’ 임소라 팀장은 “대기업을 다니는 친구들도 똑같다”며 “전세자금이 없으면 결혼을 못할 것 같은데 부모님 지원이 없으면 목돈 마련이 어렵다고들 한다”고 말했다. 이들은 아이를 낳고 기르는 생애 주기에 따라 필요한 주거공간의 질적·양적 확장도 불가능하다고 여긴다. 평생 돈을 모아도 집 한 칸 마련할 수 없도록 주거 이동의 사다리가 끊어졌다. 박신영 원장은 “신혼부부는 결혼했다는 것만으로도 그나마 살 만하다고 볼 수 있다”며 “미혼 1인 가구에 대한 지원이 절실하다”고 말했다.

함께 모여 사는 주택협동조합
스스로 주거 문제 해결책을 찾으려는 움직임도 있다. ‘민달팽이 주택협동조합’도 그중 하나다. 출자 조합원에게 자격을 주고, 입주자를 선정해 함께 사는 셰어하우스다. 서울 남가좌동에 2호 주택까지 마련해 15명이 산다. 부엌과 욕실이 딸린 방 두 개짜리 집의 경우 4명이 함께 산다. 보증금 60만원에 월세 23만원. 깨끗하고 안전한 데다 이사 다닐 필요가 없어 안정적이다. 광주 출신의 김강(26)씨는 수도권의 친척집에 살면서 통학했다. 취업 후 집을 알아봤지만 “비싸거나 질 낮은 집뿐이었다”고 했다. 주거 환경이 좋고 또래와 어울려 사는 재미도 있어 만족하고 있다. 셰어하우스엔 책임도 따른다. 규칙이 있고 공과금 관리 등 역할을 나눠 매달 회의도 연다. 제주도 출신의 함금실(28)씨는 “결혼을 한다 해도 협동조합 모델을 연장해 살고 싶다”고 말했다. “아등바등해도 살기 힘든데, 함께한다면 신혼부부의 집 문제, 육아 문제도 답을 찾을 수 있을 것 같다”고 했다.


홍주희 기자, 송기승 인턴기자 hjongh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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