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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오쩌둥 전략’과 서구 경영 접목한 중체서용으로 승부

화웨이가 지난해 10월 일본에서 열린 국제전자통신박람회(CEATEC)에서 선보인 스마트폰 ‘메이트7’
1 화웨이 연구개발센터에 있는 설치미술품. 2 화웨이 본사 사옥 내 카페. 3 사옥 벽에 걸려 있는 미국 특허증. 김상선 기자, [블룸버그]
지난해 말 찾은 중국 광둥(廣東)성 선전() 화웨이(華爲) 본사의 연구개발(R&D)센터. 하늘로 치솟는 용의 모습과 같은 강렬한 설치미술품이 방문객을 맞았다. 세계 각국의 국기가 지구본을 감싸 도약하는 모습을 형상화한 중국 작가 첸이페이(陳逸飛)의 작품이다. 글로벌 기업으로 세계를 품겠다는 야심을 상징했다.

조 켈리 화웨이 부사장은 “이동통신 서비스에서 화웨이는 2세대(2G) 때는 추종자(follower), 3세대(3G) 때는 경쟁자(competitor)였고 4세대(4G) 때는 주도그룹(leading group)이었다. 5세대(5G) 세상에서는 화웨이가 규칙 제정자(rule setter)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스웨덴의 에릭슨과 어깨를 겨루는 글로벌 통신장비업체로 우뚝 선 화웨이 본사, 위용은 대단했다. 서울 월드컵경기장 10개와 맞먹는 200만㎡ 규모의 대지에 R&D센터와 테스팅센터, ‘화웨이 대학’으로 불리는 교육센터 등 8개 구역이 자리 잡고 있었다. 직원 사택 단지인 백초원은 10만5000㎡ 부지에 10개 동의 아파트와 각종 스포츠시설, 편의시설을 갖추고 있다.

매출의 10% 이상을 R&D에 투자
단연 눈에 띄는 곳은 R&D센터 내의 ‘ICT 솔루션 전시관’. 세계 각국의 방문객으로 북적이는 이곳에서 4G와 5G LTE, 사물인터넷(IoT), UHD TV, 스마트그리드를 비롯해 클라우딩 컴퓨터용 서버, 스마트폰 단말기까지 화웨이의 기술력을 한눈에 살펴볼 수 있다.

화웨이는 중국에서는 보기 드문 ‘근육질 기업’이다. 인수합병(M&A)으로 외형을 키우고 해외 업체와의 합작으로 기술을 전수받은 중국 기업과 다른 길을 밟았다. 자신의 힘으로 기업을 키우는 ‘유기적 성장(organic growth)’을 해 왔다.

성장의 원동력은 끊임없는 기술 개발이다. 화웨이는 매출의 10% 이상을 R&D에 투자한다. 2013년까지 10년간 R&D에 190억 달러를 쏟아부었다. 전 세계에 운영하는 R&D센터도 16개나 된다. 전체 직원(15만 명)의 46%인 7만 명이 R&D 인력이다.

기술 자립에 대한 화웨이의 의지는 특허건수로 드러난다. 2012년까지 중국 내에서 4만1948개의 특허를 신청했다. 해외에서 승인받은 특허도 3만240개다. 90% 이상이 발명특허다. 지속적인 R&D는 최신 기술력으로 이어졌다. 화웨이는 러시아에 세계 최초로 광대역 LTE-A 네트워크를 구축했다. 새로운 혁신도 모색하고 있다. 첨단 네트워크로 서로 다른 무선기기와 4G, 5G, 와이파이까지 여러 세대의 통신설비를 유기적으로 연결하는 ‘파이프 전략(pipe strategy)’이다. 퉁원 캐나다 연구개발센터 부사장은 “화웨이의 혁신은 네트워크 운용과 이동을 쉽게 하는 등 여러 세대를 아우르는 하나의 솔루션을 만드는 것”이라고 밝혔다.

기술력으로 무장한 화웨이가 박차를 가하는 분야는 4G LTE보다 1000배 빠른 5G 이동통신 서비스다. 2020년 상용화를 목표로 향후 5년간 6억 달러를 투자한다는 계획이다. 5G의 세계 최초 상용화를 놓고 한국과 중국, 일본의 경쟁이 본격화되는 시점에서 던진 선전포고인 셈이다.

통신 시장의 ‘게임 체인저’를 꿈꾸는 화웨이는 1987년 선전의 한 주민아파트에서 시작됐다. 인민해방군 출신의 런정페이(任正非)가 자본금 2만1000위안(약 366만원)으로 세웠다. 성장의 발판을 마련한 것은 93년이다. 파이스턴이코노믹리뷰는 “인민해방군의 첫 번째 국가 통신 네트워크에 라우터를 공급하는 결정적인 계약을 체결했다”고 보도했다. 하지만 빛이 있으면 어둠도 있는 법이다. 이 계약 이후로 화웨이는 중국 정부를 등에 업은 ‘통신 스파이 기업’으로 의심받고 있다.

런정페이(任正非)
화웨이는 억울함을 호소한다. 그렇지만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가 2013년 발간한 ‘화웨이 보고서’에 따르면 화웨이가 성장하는 데 국가의 무한한 지원이 있었다. 화웨이의 부인에도 불구하고 설립 당시 국유은행에서 850만 달러의 대출을 받았다고 보고서는 주장한다. 국가의 지원만으로 화웨이의 성공을 설명하기에는 충분치 않다. 화웨이는 중국형 다국적 기업의 모델이란 평가를 받는다. 중국식 전략에 서구식 경영 노하우를 결합한 중체서용(中體西用)식 경영이 화웨이의 성공을 가능케 했다.

신의 한 수는 마오쩌둥(毛澤東)의 ‘농촌의 도시 포위 전략’을 차용한 시장 공략이다. 초창기 화웨이는 에릭슨과 알카텔루슨트 등 서구 통신장비 업체와의 경쟁에서 고전했다. 외국 기업이 장악한 대도시 대신 300곳 이상의 중소도시와 농촌 지역에 판매와 서비스 네트워크를 구축했다. 틈새 시장을 노린 것이다. 일례로 92년 헤이룽장(黑龍江)성에 있는 에릭슨의 직원은 3~4명에 불과했지만 화웨이 직원은 200명이 넘었다. 해외 시장 진출도 마찬가지였다. ‘화웨이 보고서’의 저자인 너새니얼 아렌스는 “96년 해외 시장 공략에 나설 때도 러시아·브라질·남아공 등으로 시장을 넓힌 뒤 2000년대 들어서야 네덜란드와 독일 등 선진국 시장에 진입했다”고 분석했다. 주변에서 힘을 키운 뒤 중심을 파고드는, 후발 주자로서의 선택이었다.

해외 시장 공략을 위해 ‘가격혁명’ 전략을 구사했다. 화웨이는 경쟁 업체보다 30% 싼 가격을 내세웠다. 오지나 험지도 가리지 않았다. 이를 가능케 한 것이 ‘늑대문화’로 불리는 화웨이의 독특한 기업문화다. 런정페이는 해외 시장에 진출하던 초기 화웨이를 산양에 비유했다. “사자에게 먹히지 않으려면 더 빨리 뛰고 더 높이 올라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후 산양론은 늑대론으로 바뀌었다. 늑대는 후각이 민감하고 팀 플레이에 능하다. 기회를 포착해 상품과 시장을 확대하기 위해서는 늑대가 돼야 한다는 것이다.

상장 꺼리지만 성과에는 확실한 보상
화웨이는 비상장기업이다. 그렇다고 ‘검은 상자’ 안에 감춰져 있지 않다. 기업 경영과 관련해 세계적인 컨설팅업체와 손잡고 있다. 화웨이를 분석한 책 『화웨이의 위대한 늑대문화』에 따르면 기술에서는 자립을 추구했지만 경영이나 인사 관리에서는 서구의 노하우를 가져왔다. 인력 관리는 헤이(Hey)그룹, 자금과 경영 분야는 IBM과 KPMG, 고객 관리는 PWC 등과 협약을 맺고 있다. 부회장 3명이 6개월씩 최고경영자(CEO)를 맡는 CEO 순환제도 시행하고 있다. CEO의 독단을 막고 집단지성을 이용하기 위해서다.

종업원 지주제(ESOP)도 화웨이의 특이한 부분이다. 설립자인 런정페이는 전체 주식의 1.42%를 보유하고 있다. 나머지 주식은 직원들이 가지고 있다. 기업공개(IPO)를 할 생각은 없다. 주주 이익을 챙기다 보면 장기적인 투자가 어렵기 때문이다. 또 다른 이유도 있다. 런정페이는 “상장으로 직원들이 백만장자가 되면 예전처럼 열심히 일하지 않게 되고 인재를 잃게 된다”고 밝혔다.

상장은 꺼리지만 성과에 대해서는 확실한 보상을 해 준다. 중국의 노동법 개정으로 10년 이상 일한 직원을 평생 고용해야 하자 2007년 6686명의 직원으로부터 사표를 받았다. 능력과 실적에 따른 연봉 책정 원칙이 훼손될 수 있어서다. 사표를 낸 직원 중 6581명은 재계약을 통해 다시 회사로 돌아왔다. 화웨이의 임금은 중국 평균 임금의 2~3배 정도로 알려져 있다.

28년간 화웨이가 써 온 성공신화는 두려움을 불러일으킨다. 화웨이와 소송전을 치렀던 존 체임버스 시스코시스템스 CEO는 “가장 위협적으로 느끼는 기업이 화웨이”라고 밝혔다.

그럼에도 남은 과제는 많다. ‘통신 스파이 기업’이라는 미국 등의 견제와 R&D에 집중하는 기업이 빠지기 쉬운 ‘소니 함정’ 등이 극복해야 할 과제다. R&D에 집중하다 보니 기술에서는 앞서 가지만 고객과의 소통이나 시장 트렌드를 무시하면 경쟁력이 떨어질 수 있다는 얘기다. 중국 기업끼리의 경쟁도 치열하다. 샤오미와 레노보, 쿨패트, ZTE 등과의 경쟁에서 살아남는 것도 화웨이가 풀어야 할 숙제다.


선전=하현옥 기자 hyunock@joonag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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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