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Load Image preLoad Image
검색 바로가기
주메뉴 바로가기
주요 기사 바로가기
다른 기사, 광고영역 바로가기
중앙일보 사이트맵 바로가기

[비주얼경제사] 허풍쟁이 ‘백만이’의 베스트셀러가 미래 탐험가들 키워

그림 1 폴로 가족이 1275년에 쿠빌라이 칸을 만나는 모습, 15세기 프랑스 작품. 마르코 폴로(맨 왼쪽 어린이)와 그의 아버지, 삼촌이 쿠빌라이 칸에게 문서를 전달하고 있다.
왕좌에 앉아 있는 인물은 언뜻 서양인처럼 보이지만 실은 중국 원나라의 세조이자 칭기즈 칸의 손자인 쿠빌라이 칸을 묘사한 것이다. 그가 1275년 북경 부근의 상도(上都)라는 도시에 위치한 여름궁전에 머물 때였다. 이탈리아 베네치아 출신의 상인 가족이 그를 알현하러 왔다. 니콜로 폴로와 마페오 폴로 형제, 그리고 이들 손에 이끌려온 니콜로의 어린 아들 마르코 폴로였다. 쿠빌라이 칸의 모습이 서양인처럼 묘사돼 있다는 점은 어렵지 않게 이해할 수 있다. 15세기에 이 미니어처를 그린 프랑스 화가가 몽골 황제에 대해 별로 지식이 없었을 테니까.

더 중요한 ‘역사적 오류’는 따로 있다. 그것은 바로 배경에 그려진 두 척의 서양식 선박이다. 상도는 바다에서 멀리 떨어진 내륙에 위치했으므로 궁전에서 배가 보였을 리 없다. 이것도 화가의 무지 탓일까. 마르코 폴로 일행이 고비사막을 넘어 육로로 상도에 이르렀다는 점에 비춰보자면 그림은 분명 역사적 사실과 맞지 않는다. 그러나 당시 그림은 오늘날의 스냅사진과는 다른 역할을 했다. 스냅사진이 한 시점에서 한 공간의 모습을 포착하는 것이라면 과거의 그림에는 화가가 의도한 내용이 시공을 초월해 집약된 경우가 많다. 마르코 폴로 일행이 멀리 유럽으로부터 지중해를 건너왔다는 이야기를 화가가 그림에 의도적으로 담았던 게 아닐까. 그러고 보니 멀리 언덕 위의 건물도 유럽의 성채를 묘사한 것으로 보인다.

그림 2 마르코 폴로의 아버지와 삼촌이 1266년에 쿠빌라이 칸을 만나는 장면, 15세기 작품.
마르코 폴로, 7살 때 몽골제국 여행
그림 2는 마르코 폴로 가족의 중국 방문을 묘사한 대표적인 그림으로 손꼽힌다. 여러 역사책에서 이 그림은 마르코 폴로와 동행자가 쿠빌라이 칸을 알현하는 모습을 묘사한다고 설명돼 있다. 이는 잘못된 설명이다. 마르코 폴로의 아버지와 삼촌이 처음으로 쿠빌라이 칸을 만난 것은 1266년인데, 이때 마르코 폴로는 두 살짜리 어린아이로 베네치아에서 살고 있었다.

마르코 폴로는 다섯 살이 되던 1269년에야 고향에 돌아온 아버지와 삼촌을 처음 만났다. 그로부터 2년 후 세 사람은 다시 몽골제국으로의 장거리 여정을 시작했고 그림 1이 묘사하는 장면이 그 이후에 일어났다. 세 여행자는 중국에서 총 24년에 이르는 시간을 보낸 후 1295년 고향인 베네치아로 돌아왔다. 무려 2만4000㎞에 이르는 이들의 여정이 우리에게 『동방견문록』이라는 이름으로 알려진 책에 실리게 된다.

그림 2에서 쿠빌라이 칸이 신하를 통해 상인 일행에게 하사하고 있는 금색 물체는 무엇일까. 이것은 패자(牌子)라고 불리는 일종의 특별 여권이었다. 이걸 지닌 몽골 관리는 국경 내의 모든 지역을 무사히 통과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필요한 물품이나 용역을 주민들에게 요구할 수 있었다. 쿠빌라이 칸이 패자를 유럽에서 온 상인에게 주었다는 것은 황제가 이들에게 무척이나 호의적이었음을 말해준다.

『동방견문록』은 어떤 과정을 통해 집필된 것일까. 13세기는 지중해 무역을 둘러싸고 이탈리아의 도시국가들이 치열하게 다투던 시기였다. 특히 베네치아·제노바·피사는 제해권을 장악하기 위해 자주 군사적으로 충돌했다. 마르코 폴로는 베네치아로 귀환한 이듬해에 갤리선을 이끌고 제노바의 함대와 전투를 벌이다가 포로로 잡히는 신세가 되었다. 그는 제노바에서 1년 가까이 옥살이를 했는데 지루한 시간을 때우기 위해 동료 죄수들에게 자신의 아시아 여행담을 들려주곤 했다. 흥미진진한 이야기는 곧 청중의 귀를 사로잡았다. 낯선 문화와 제도, 이탈리아 도시들과는 비교가 되지 않는 규모의 중국 도시들에 대한 이야기였던 이유도 있지만 그가 워낙 허풍과 과장에 능했기 때문이기도 했다.

이를테면 중국에는 수백만 명의 인구가 세금을 내는 도시가 수백만 개나 있고 기마병과 선박의 수도 수백만이나 된다는 식이었다. 마르코 폴로에게는 곧 ‘백만이(Il Milione)’라는 별명이 붙었다. 이런 허풍과 과장은 이야기의 신빙성을 떨어뜨리기도 했지만 그보다는 듣는 이에게 재미를 더해주는 효과가 더 컸다.

마르코 폴로는 곧 탁월한 이야기꾼으로 유명해졌고 피사 출신으로 함께 수감 중이던 죄수 루스티첼로(Rustichello de Pisa)는 그의 모험담을 받아 적어 출간하면 큰 인기를 모을 수 있을 것이라고 확신했다. 이런 과정을 통해 『동방견문록』이 탄생했다.

루스티첼로가 처음에 프랑스어로 출간한 『동방견문록』은 곧 세간의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그에 따라 다양한 언어로 책이 번역됐고 수많은 각색이 이뤄졌다. 책 제목도 『세계의 이야기』 『경이의 책』 『대칸의 로망스』, 심지어 『백만이』까지 다양했다. 유럽에서 인쇄술이 전파되기 이전에 제작된 필사본만 해도 엄청나 오늘날까지 남아 있는 판본 수가 무려 150개에 이른다. 인쇄술이 보급된 이후 출판이 더욱 크게 늘었다는 점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마르코 폴로의 여행기는 당대의 베스트셀러였다.

마르코 폴로의 여행기에는 상도와 북경은 물론이고 그가 거쳐 간 수많은 지역, 예를 들어 섬서·사천·운남·하북·산동 등이 등장한다. 유럽에서 중국으로 오가면서 거쳐 간 중앙아시아와 서아시아·동남아시아의 여러 지역도 기록돼 있다. 각 지역의 독특한 외양, 다양한 생활방식과 기이한 풍습을 여행기는 풍부하게 수록하고 있다.

『동방견문록』에 대한 역사적 평가는 다양하다. 논의의 시발점은 애당초 마르코 폴로와 루스티첼로 어느 누구도 이 책을 중국에 대해 엄밀하고 정확한 기록으로서 기획하지 않았다는 점에 있었다. 책에 묘사된 내용 중에는 역사적 사실과 부합하지 않는 게 많으며 저자 특유의 과장이 자주 등장한다. 그래서 어떤 역사가들은 마르코 폴로가 실제로 중국에 가지 않고 이슬람 상인 등으로부터 전해들은 여러 이야기를 짜깁기했을 뿐이라고 추측하기도 했다. 하지만 ‘불타는 돌’, 즉 석탄이 연료로 사용되었다거나 지폐가 통용되었다는 사실처럼 실제로 가보지 않고서는 상상해 맞추기 어려운 내용이 포함돼 있다는 점을 들어 그가 중국을 방문한 것은 분명하다는 반론이 더 설득력 있어 보인다.

그림 3 콜럼버스가 읽고 여백에 메모를 기록한 라틴어판 『동방견문록』 1480년대.
제네바에서 옥살이하다 모험담 출간
『동방견문록』이 얼마나 사실에 부합하는가라는 문제와 별도로 주목해야 할 점이 있다. 그것은 이 책이 수많은 독자에게 호기심과 모험심을 불러일으켰다는 점이다. 중국이라는 땅, 유럽의 소국들과는 비교가 되지 않는 인구와 자원과 기술과 문화를 보유한 곳으로 묘사된 미지의 세상에 대해 잠재적 탐험가들은 상상의 나래를 한껏 펴면서 미래를 꿈꾸었다. 그곳으로 통하는 길을 찾아 교류와 교역으로 연결하면 엄청난 부를 얻을 수 있으리라는 욕망이 이들의 마음을 부풀게 했다.

그림 3은 1480년대에 발간된 라틴어판 『동방견문록』이다, 이 책의 여백에는 책을 읽은 이가 남겨놓은 메모가 빼곡하게 적혀 있다. 책을 꼼꼼히 읽고 많은 생각을 했음을 알 수 있다. 메모를 남긴 독자는 바로 크리스토퍼 콜럼버스였다. 훗날 스페인 국왕을 설득해 탐험대를 구성하고 아시아로 가는 새 항로를 개척하기 위해 남들과 달리 서쪽으로 방향을 잡았던 모험가, 탐험의 결과로 ‘구세계’와 ‘신세계’를 하나의 경제권으로 묶는 세계사적 변화를 탄생시킨 위대한 탐험가 콜럼버스는 2세기 전 허풍쟁이 ‘백만이’가 쓴 과장 가득한 여행기를 읽으며 세상을 바꿀 꿈을 키웠던 것이다.



송병건 서울대 경제학과에서 학·석사 학위를 마친 뒤 영국 옥스퍼드대에서 경제사 전공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 경제사학회 이사를 맡고 있으며 『세계경제사 들어서기』(2013), 『경제사:세계화와 세계경제의 역사』(2012), 『영국 근대화의 재구성』(2008) 등 경제사 관련 다수 저서가 있다.

구독신청

AD
온라인 구독신청 지면 구독신청

중앙일보 핫 클릭

PHOTO & VIDEO

shpping&life

뉴스레터 보기

김민석의 Mr. 밀리터리 군사안보연구소

군사안보연구소는 중앙일보의 군사안보분야 전문 연구기관입니다.
군사안보연구소는 2016년 10월 1일 중앙일보 홈페이지 조인스(https://news.joins.com)에 문을 연 ‘김민석의 Mr. 밀리터리’(https://news.joins.com/mm)를 운영하며 디지털 환경에 특화된 군사ㆍ안보ㆍ무기에 관한 콘텐트를 만들고 있습니다.

연구소 사람들
김민석 소장 : kimseok@joongang.co.kr (02-751-5511)
국방연구원 전력발전연구부ㆍ군비통제센터를 거쳐 1994년 중앙일보에 입사한 국내 첫 군사전문기자다. 국방부를 출입한 뒤 최장수 국방부 대변인(2010~2016년)으로 활동했다. 현재는 군사안보전문기자 겸 논설위원으로 한반도 군사와 안보문제를 깊게 파헤치는 글을 쓰고 있다.

박용한 연구위원 : park.yonghan@joongang.co.kr (02-751-5516)
‘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