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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리학으로 소설 읽기] 뇌·심장·용기·꿈 ‘네 가지’ 없지만 … 우정은 힘이 세지요

영화 ‘오즈의 마법사’의 한 장면.
옛날 독일의 한 마을에는 ‘이 부부가 결혼해 알콩달콩 잘 살 수 있을까’를 시험하는 마을공동체의 통과의례가 있었다. 곧 부부가 될 남녀에게 ‘나무 잘라내기 미션’을 던져 주는 것이다. 아주 무딘 칼을 하나 주고는 서로 호흡을 맞춰 가며 나무를 잘라 내는 과정을 모두가 지켜봤다. 예비 신랑·신부는 서로 토닥거리면서, 때로는 신경질도 부리면서 가슴 밑바닥의 성깔이 모두 드러날 수밖에 없는 지난한 과정을 거쳐 마침내 나무 한 그루를 잘라 낸다.

엄청 잘 드는 칼로 혼자 마음대로 나무를 자를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지만 인생이 어디 그런가. 옛사람들은 알고 있었던 것이다. 걸핏하면 온갖 변수가 출몰하는 인생에서 가장 소중한 것은 개인의 능력이 아니라 파트너와의 협력이라는 것을. 커플이 영차영차 나무 자르는 과정을 지켜보며 마을 사람들은 부부의 궁합을 점쳤을 테고, 남녀는 ‘나는 내 짝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을까’ 하는 질문을 던졌을 것이다. 로맨틱한 감정이나 상대방의 스펙이 아니라 ‘어려운 상황에서 얼마나 힘을 잘 합치는가’로 미래의 궁합을 점친 옛사람들의 지혜가 놀랍다.

심리학자 알프레트 아들러는 정신분석의 가장 중요한 과제 중 하나로 ‘협력’을 들었다. 개인으로서의 인간은 한없이 약하지만 공동체의 보살핌과 협력 안에서 인간은 무한한 잠재력을 끌어낼 수 있다고 본 것이다.

아들러는 인간의 가장 큰 심리적 과제를 열등감의 극복이라고 본다. 열등감뿐 아니라 우월감도 일종의 콤플렉스다. 만성화된 우월감은 본인이 ‘질병’임을 인식하지 못하기에 더욱 심각한 정신적 문제를 야기한다. 언제나 자신이 ‘갑’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남들뿐 아니라 자신에게도 엄청난 해악을 끼치게 된다. 우월감과 열등감이 둘 다 위험한 이유는 결정적인 상황에서 타인과의 협력을 불가능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나 때문에 안 될 거야’라고 생각하는 열등감 콤플렉스와 ‘나만 있으면 만사형통이야’라는 우월감 콤플렉스는 둘 다 인생살이의 무한한 상대성을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에 나오는 인식의 오류다. 그런 의미에서 ‘어떤 급박한 상황에서도 타인과 끝내 협력할 수 있는 인간’이야말로 심리적으로 가장 강력한 에너지를 가진 사람이 아닐까. 나는 『오즈의 마법사』의 스토리텔링에 담긴 마력이 바로 이 ‘위기 속의 협력’에 있다고 본다. 『오즈의 마법사』는 다들 치명적인 결점을 가지고 있지만 그 결점을 열등감의 구렁텅이에 빠뜨리지 않고 ‘우정’이라는 이름의 가장 아름다운 연대감으로 극복하는 이야기다.

타자로 인해 결점·콤플렉스 극복
회오리바람을 타고 낯선 도시에 떨어진 고아 소녀 도로시, 밀짚으로 만들어져 두뇌가 없는 허수아비, 심장이 없는 양철나무꾼, 동물의 제왕이지만 ‘용기’가 없는 사자. 네 친구는 저마다 커다란 콤플렉스를 앓고 있지만 서로에 대한 믿음과 사랑으로 점점 더 멋진 자기 인생의 주인공으로 거듭난다. 네 친구가 각자 오즈의 마법사에게 자신의 소원을 빌기 위해 함께 길을 떠나지 않았다면 평생 ‘나는 뇌가 없으니까’ ‘나는 심장이 없으니까’ ‘나는 용기가 없으니까’라고 투덜거리며 콤플렉스 덩어리로 살지 않았을까.

도로시는 언뜻 콤플렉스가 없어 보이지만 그녀의 고향 캔자스가 바로 콤플렉스의 진원지다. 도로시는 유일한 소원이 캔자스로 돌아가는 것인데, 캔자스 자체가 인생의 목적은 아니라는 것을 모른다. “다른 나라가 아무리 아름다워도 피와 살로 만들어진 우리 인간은 다른 고장이 아닌 고향에서 살고 싶단다. 고향보다 더 좋은 곳은 없으니까.”

도로시의 확신은 사실 무지에서 나온다. 그녀는 고향의 중요성을 앵무새처럼 반복하지만 정작 자신이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어떤 삶을 원하는지에 대한 비전이 없다. 착하지만 꿈이 없는 소녀다. 고향밖에 모르고 일상 외에는 아는 게 없는 도로시의 삶에는 ‘외부’가 없는 것이다. 내 삶 바깥에는 무엇이 있는지, 왜 나는 타인의 삶에는 관심이 없는지에 대한 사유 자체가 결핍된 것이다. 도로시가 사자와 양철나무꾼과 허수아비를 만나지 않았다면 지극히 편협한 어른이 됐을지도 모른다.

도로시는 ‘착한 아이’의 전형이다. ‘어른들이 칭찬하는 아이’ ‘맏며느릿감’ ‘나무랄 데 없는 애’란 말에는 칭찬만 담겨 있는 것은 아니다. 정해진 매트릭스 안에서만 살아가는 아이라는 뜻이기도 하다. 일탈이나 모험 같은 건 생각도 못한다는 뉘앙스가 숨어 있다. 도로시는 ‘우리 동네’라는 살균된 온실 안의 관계와 구조에 만족하는 아이였던 것이다.

이렇게 착해만 보이는 도로시가 제대로 성깔을 드러내는 장면이 있다. 애지중지하는 강아지 토토를 위협하는 사자에게 달려들어 “이렇게 약한 동물을 너처럼 커다란 사자가 건드리다니!” 하고 호통치는 장면이다. 사랑하는 존재를 위해서는 커다란 사자에 대한 두려움마저 자신도 모르게 극복했다. 도로시는 그렇게 뜻밖의 타자를 만남으로써 자기 안의 잠재력을 꺼내 속 시원히 표현할 수 있었던 것이다.

진짜 문제는 상대적인 자의식
네 친구가 부닥친 가장 큰 장애물은, 산전수전 끝에 오즈의 마법사를 마침내 만났을 때 마법의 지팡이라도 휘두를 줄 알았던 그가 그들의 소원을 들어주지 않는 순간이다. 모든 콤플렉스를 단칼에 해결해 줄 것으로 믿었던 오즈의 마법사가 “서쪽 마녀를 죽여 주면 너희의 소원을 들어주겠다”고 엄포를 놓자 네 친구는 공포에 질린다.

하지만 겁에 질린 그들의 반응은 하나같이 “네가 함께한다면 나도 어떻게든 갈게”였다. 마녀를 죽이기도 정말 싫고 죽일 힘은 더더욱 없지만 소중한 친구가 간다면 어디든 나도 함께 가겠다는 것. 그것은 설사 미션에 성공하지 못할지라도 ‘우리가 함께한다는 것’ 자체에 삶의 의미가 있음을 그들의 무의식이 깨달았기 때문에 내린 결정이 아니었을까. 개개인은 나약하고 보잘것없지만 위기에 처했을 때 서로를 필사적으로 구하려는 마음, ‘우리가 함께했기에 지금까지 무사히 잘해 낼 수 있었어’라는 믿음이 그들을 구원한 것이다.

절박한 공존의 필요성 속에서 그들은 자신도 모르게 점점 강인해진다. 사실 허수아비는 뇌가 없어도 모두가 위기에 처할 때마다 절묘한 ‘신의 한 수’를 생각해 내고, 양철나무꾼은 심장이 없어도 혹시나 자신이 약한 동물들을 밟아 죽이지나 않을까 노심초사하며, 사자는 용기가 없다고 주장하지만 괴물을 만났을 때 가장 먼저 달려가 목숨을 걸고 싸운다. 내게 소중한 사람들이 나를 뜨거운 관심으로 지켜보고 있다는 사실 때문에 그들은 강해졌던 것이다. 마법사가 뚝딱 마술을 부려 소원이 이뤄진 게 아니라 그들이 함께 견뎌 낸 시간 속에서 같은 고난을 겪어 내고 서로의 결핍을 응원한 덕분에 콤플렉스를 극복한 것이다.

부족함이 많아도 즐겁게 사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겉으로 보기엔 멀쩡한데 속병에 찌들어 있는 사람이 있다. 즉 우리 인간의 진짜 문제는 절대적인 부족함이 아니라 상대적인 자의식이다. 자의식은 ‘나는 이러이러한 사람이다’는 스스로의 판단이다. ‘나는 뇌가 없으니까 머리가 나쁠 거야, 그러니까 쓸모없는 존재야’라고 판단하는, 그 자의식이라는 괴물과 혼자 싸우려면 얼마나 외롭고 힘들겠는가.

『오즈의 마법사』는 함께 어려움을 극복함으로써 자신도 모르게 눈부시게 성장하는 순수한 영혼의 오디세이다. 중요한 건 뛰어난 두뇌가 아니라 제대로 생각하는 힘이다. 중요한 건 심장 자체가 아니라 남의 아픔을 보며 내게 벌어진 일처럼 슬퍼할 수 있는 감수성이다. 뇌가 없지만 점점 뛰어난 묘안을 짜내는 허수아비를 보며 사자는 이렇게 칭찬한다. “그렇게 멋진 아이디어를 생각해 내는데, 누가 너더러 뇌가 없다고 하겠니?” 오즈의 비밀은 마법이 아니라 뜨거운 우정과 눈부신 협력이었던 것이다.


정여울 문학 평론가 suburbs@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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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