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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힌 곳이 뚫렸다, 테이프 한 줄에

지난해 12월 30일 오후 5시 서울 광화문 버스 정류소 바닥에 흰색 테이프를 붙여놓은 모습. 승객 대기 행렬이 테이프 표시대로 줄을 서자 보행자들을 위한 공간이 열려 있다. 작은 사진은 평소 승객 행렬과 보행자가 뒤엉켜 불편을 겪는 모습. 김춘식 기자


광화문 버스 정류소를 이용해보신 적이 있나요? 이순신장군상이 내려다보고 있는 서울 세종로 동화면세점 앞 바로 그 정류소 말입니다.

퇴근 무렵 이곳에는 매일 진풍경이 벌어집니다. 버스를 기다리는 승객들이 바닥에 표시된 노선 번호별로 길게 줄을 늘어서지요. 버스가 오면 차례차례 승차합니다. 질서정연한 모습입니다.

그런데 말이죠. 몇 개의 줄이 인도를 가로로 꽉 채우고 나면 또 다른 진풍경이 벌어집니다. 이번엔 보행자들을 주목하셔야 합니다. 보행자들은 보도를 가로질러 서 있는 승객 대기 행렬을 스크럼이라도 돌파하듯 지나가야 앞으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회식 장소로 이동하던 회사원 김진환(42·서울 은평구)씨는 이렇게 털어놓습니다. “승객과 승객 사이 틈이 조금이라도 커 보이는 곳을 찾아 일단 머리를 밀어넣거나 손을 앞으로 뻗어 돌진하듯이 나가야 한 겹, 두 겹 돌파할 수 있습니다. 내가 줄을 설 땐 보행자 불편이, 보행자일 땐 승객들의 입장이 안 보이더군요.”

‘줄 지어 버스 대기’라는 질서의식이 ‘보행자 흐름 방해’라는 불편을 낳은 겁니다. 이런 모습은 남대문 신한은행 본점 앞, 강남역, 홍대입구 등 곳곳에서 흔히 볼 수 있습니다.

그럼 버스 승차 질서를 지키면서 보행자의 통행에도 불편을 주지 않을 방법은 없을까요? 광운대 공공소통연구소가 작은 실험을 했습니다. 승객 행렬 중간쯤 길바닥에, 닫힌 괄호와 열린 괄호를 점선으로 연결한 ‘]▶▶▶▶▶[’ 모양의 테이프를 붙여 봤습니다.

잠시 뒤 놀라운 변화가 나타났습니다. 승객들은 닫힌 괄호인 ‘]’ 표시 지점까지 줄을 섰다가 점선을 건너뛰어 열린 괄호인 ‘[’ 표시 지점부터 다시 줄을 서기 시작했습니다. 괄호 사이 점선 부분을 공백으로 비워둔 것이지요.

그러자 보행자 불편이 사라졌습니다. 중간이 모세 앞의 홍해처럼 갈라진 승객 행렬 사이로 보행자들은 불편함 없이 오갈 수 있었습니다. 바닥에 붙인 작은 테이프 표시 하나로 수십 년간 매일 해질녘 되풀이돼 온 불편이 순식간에 해결됐습니다. 스티커 부착 작업을 한 장종원(24·광운대 미디어영상학부 4학년)씨는 “작은 아이디어 하나를 3000원짜리 흰색 테이프로 구현했을 뿐인데 놀랍게도 새로운 공공질서가 만들어졌다”고 말합니다.

2015 을미년의 힘찬 태양이 밝았습니다. ‘새해 대한민국에 바란다’와 같은 거창한 토론이 여기저기서 한창입니다. 이념·계층·세대 간 갈등이 격화되고 있다는 진단과, 이를 어떻게 치유할지를 두고 다양한 주장이 나옵니다. 새해엔 무슨 무슨 정신과 의식을 고취하자는 캠페인도 자주 등장합니다.

이런 거대 담론, 물론 중요합니다. 그렇지만 큰 이야기들만으로는 퇴근길 사람들끼리 엉겨 붙는 것과 같은 일상의 문제를 개선하진 못합니다. 담론의 노즐이 너무 크면 우리 일상 구석구석에 자리 잡은 비정상적 관행과 습관들을 고치기 어렵습니다.

중앙SUNDAY는 이를 바꿔 보자는 취지의 신년 기획으로 ‘작은 외침 LOUD’를 시작합니다. LOUD는 시민이 주도하는 실천적 소통 운동입니다. 광운대 공공소통연구소장이자 미디어영상학부 이종혁 교수팀의 실험 결과와 아이디어를 하나씩 소개할 예정입니다.

LOUD는 사흘이면 흐트러지는 금연 결심을 붙들어줄 겁니다. ‘커피 나오셨습니다’ 같은 어법에 어긋나는 사물 존칭을 해결할 작은 아이디어도 보여 드릴 예정입니다. 스마트폰 사용을 줄여보자는 ‘디지털 디톡스’를 실행에 옮길 수 있는 기발한 스티커도 준비하고 있습니다. LOUD가 소개하는 작은 아이디어와 작은 실천이 모여 우리 삶과 사회를 크게 바꿀 수 있습니다.

LOUD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중앙SUNDAY는 담론보다 실천, 이미지보다 본질에 주목하려 합니다. 시민이 주인공이 돼 ‘의도된 쟁점’이 아닌 ‘목격된 문제’를 의식 있는 시민들의 작은 아이디어를 모아 해결하고자 합니다. 사회를 바꿔 달라는 수동적 요구가 아니라 사회를 바꿔보자는 자발적 행동에 나서는 겁니다.

독자 여러분의 참여도 기다립니다. 골목길 어귀, 방치된 담벼락, 전봇대…. 보이는 모든 것, 딛고 있는 모든 곳이 우리 사회 변화의 출발점입니다.

박태희 기자 adonis55@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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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방연구원 전력발전연구부ㆍ군비통제센터를 거쳐 1994년 중앙일보에 입사한 국내 첫 군사전문기자다. 국방부를 출입한 뒤 최장수 국방부 대변인(2010~2016년)으로 활동했다. 현재는 군사안보전문기자 겸 논설위원으로 한반도 군사와 안보문제를 깊게 파헤치는 글을 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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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