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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재의 시시각각] 경제는 정치다

이정재
논설위원
경제야말로 지독히 정치적이다. 굳이 경제학이 정치를 위해 탄생했다는 경제학 원론을 들춰낼 필요도 없다. 요즘 박근혜 대통령 하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엊그제만 해도 그렇다. 경제 쪽 이슈인 연말정산에 즉각 반응했다. 대통령은 “연말정산에서 국민께 많은 불편을 드려 유감”이라고 했다. 연말정산 소동이 벌어진 지 딱 6일 만이다. 안종범 경제수석에겐 집요하게 질문을 던져 “절대 연봉 5500만원 이하 근로자는 세 부담이 늘어나지 않도록 하겠다”고 답변하게 했다. ‘절대’라는 단어까지 쓴 데는 아마 사전 조율이 있었을 것이다. 그랬으니 즉석에서 국회가 새로 법을 만들어 소급 적용하는 것까지 챙겼을 것이다. 사과와 수습에 뜸을 들이지도, 여운을 남기지도 않았다. 워낙 파문이 크고 비난 여론이 빗발쳐 대통령도 어쩔 수 없었다는 게 세간의 평이지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정치적 이슈인 십상시 국정 농단 파문과 비교해보라. 대통령은 두 달 넘게 꿈쩍도 하지 않았다. 그 두 달간 비서실장과 문고리 3인방을 모든 언론과 전 국민이 공격하다시피 했다. 그런데 신년 기자회견 때 어떻게 했나. “비서실장은 사심이 없는 분이요, 세 비서관은 잘못이 없으니 교체할 이유가 없다”며 한마디로 잘랐다. 사과며 수습은 아예 없었다. 불통의 이미지만 잔뜩 키워놓고 말았다.

 이런 차이가 왜 생겼을까. 대통령은 정치로 기억되지 않는다. 경제로 기억된다. 자본주의 국가의 숙명이다. 멀리 갈 것도 없다. 역대 대통령 평가만 돌아봐도 알 수 있다. ‘잘살아 보세’로 칭송받은 아버지 박정희 대통령은 물론이요 철권의 독재자 전두환마저 경제를 살린 공(功)으로 과(過)를 덮고 있잖은가. 노태우의 북방외교도 경제 실리를 챙긴 게 후한 평가를 받았다. 외환위기 극복을 훈장처럼 달지 않았다면 김대중 대통령의 남북 정상회담도 빛이 바랬을 것이다. 권부의 핵심에서 성장한 박 대통령은 누구보다 그런 사실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성공한 대통령=경제 대통령, 이런 등식이 국가주의자인 대통령의 마음을 붙잡았을 것이다. 그러니 그 완강한 ‘불통 대통령’이 경제 이슈엔 쉽게 뜻을 굽히는 것 아닐까.

  그렇게 보면 2013년 8월 첫 세법 개정안 파문도 이해가 간다. 당시 ‘유리지갑 증세’로 공격받자 대통령은 4일 만에 ‘원점 재검토’를 지시했다. 그를 잘 아는 많은 이들이 고개를 갸우뚱할 정도로 포기가 빨랐다. 첫 세법 개정안이 어떤 의미인가. 새 정부의 국정 철학을 담는 법안이다. 돈을 누구에게 어떻게 걷어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 모든 공약이 정리·정돈된다. 그런데도 대통령은 세법 개정안을 쉽게 포기했다. 인화성 강한 경제 이슈로 봤다는 얘기다.

 또 그렇게 보면 신년 기자회견이든 뭐든, 대통령이 언급하는 게 경제뿐인 것도 이해가 간다. 가끔 통일이 끼어들긴 하지만, 그건 경제의 부속품 정도다. 대통령의 통일엔 늘 대박이란 수식어가 따라붙는다. 대박은 경제 대박이다. 저출산·고령화는 물론 분단 리스크까지 경제적 난제들을 한칼에 해결하는 수단으로서의 통일이다.

 그런데 어쩌랴. 아무리 대통령이 신년 회견에서 경제를 가장 많이 언급하고, 경제 올인을 강조하고, 규제 완화를 외치고, 구조개혁을 다짐해도 경제는 꿈쩍하지 않는 것을. 이유는 다 안다. 정치가 발목을 잡아서다. 정치가 발목을 잡으니 아무도 안 움직인다. 대통령 혼자 외쳐댄다.

 성공한 경제 대통령이 되려면 방법을 바꿔야 한다. 경제 대신 정치에 올인해야 한다. 경제는 잘하는 사람을 찾아 아예 맡겨두라. 대신 대통령은 정윤회 문건이며 십상시 파문 같은 것부터 해결해야 한다. 규제 완화나 노동 시장 개혁은 둘 중 하나만 제대로 해내도 경제 대통령으로 칭찬받을 초대형 과제다. 여기에 연금 개혁까지 성공적으로 마무리한다면 금상첨화다. 이걸 해내는 건 경제가 아니다. 정치다. 누가 최적임자인가. 물어볼 것도 없다. 가장 정치를 잘 알고 잘해서 뽑힌 인물, 대통령이다. 대통령이 발 벗고 국회를 설득하고 국민에게 감동을 줘야 경제가 산다. 경제야말로 지독히 정치적이다.

이정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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