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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크푸르트 도서전' 한국-독일 학술회의

양국 '평화·통일' 주제 국제 도서전 사전 행사



'한국과 독일에서의 통일.민주주의.평화'라는 주제로 양국의 석학들이 참석한 현자(賢者)회의가 16일 독일 프랑크푸르트 시청에서 열렸다.



한국에서는 건강문제를 이유로 불참한 김대중 전 대통령을 대신해 이홍구 전 국무총리와 최장집 고려대 교수가, 독일에서는 한스 디트리히 겐셔 전 외무장관, 고트프리트 카를 킨더만 뮌헨대 교수(정치학)가 참가했다. 디 차이트지 대기자인 테오 좀머 박사가 사회를 본 토론에서 이들은 한반도 분단 문제와 그 극복 방안을 놓고 활발하게 의견을 주고 받았다.







독일 통일을 이끈 겐셔 전 장관은 "한반도의 통일은 갑작스럽게 올 수 있다"며 "모든 상황에 대비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현자회의는 한국이 주빈국인 올해 프랑크푸르트 도서박람회의 사전 행사로 마련됐다.



프랑크푸르트=유권하 특파원





독일 프랑크푸르트 시청 대회의장에서 16일 한국과 독일의 정.관.학계를 대표하는 석학들이 참석한 현자(Wise Man)회의가 열렸다. 참석자들은 통일과 민주주의, 평화와 분단 문제, 그 극복 방안을 놓고 활발한 토론을 벌였다.[프랑크푸르트=유권하 특파원]
▶이홍구=우리는 역사적 전환기에 살고 있다. 전환기의 특징인 불확실.불안정성을 경험하고 있다. 제2차 세계대전의 종전과 더불어 제국주의 시대는 끝났다. 1989년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며 이데올로기의 시대도 종식됐다. 이런 가운데 구시대의 유물인 민족주의가 도처에서 부활하고 있다. 이 점에 유념해서 한반도의 분단 문제를 다뤄야 한다.



▶겐셔=독일도 한국과 같이 냉전의 영향을 받았다. 독일의 분단은 유럽의 분단을 가져왔다 . 독일의 운명이 유럽의 운명과 불가분의 관계를 맺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독일 통일은 유럽 통합을 의미하게 됐다. 독일이 통일을 이루기 위해서는 유럽의 통일과 평화에 기여해야 했다. 독일의 동방정책은 동구권과의 공존을 위한 것이었다. 61년 세워진 베를린 장벽은 동독 체제의 취약성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독일 주변국은 동.서독의 통일을 원치 않았다. 독일 통일은 유럽 강대국들의 공동 의사결정으로 가능했다. 독일이 분단 극복에 있어 어떤 변화와 과정을 거쳤는지 살펴보는 것이 필요하다.



▶킨더만=독일 통일은 동독에서의 무혈혁명과 미하일 고르바초프 전 소련 대통령의 개혁.개방 정책의 영향이 컸다. 한 나라의 운명은 인접 국가와 얼마나 국제관계가 좋은가에 따라 정해진다고 한다. 국가 간 선린관계에 따라 헤게모니를 포기하기도 한다. 소련의 경우가 그랬다. 장벽이 무너졌을 때 무력진압을 명령할 수도 있었다. 그러나 독일과의 선린관계를 위해 이를 피했다. 소련은 독일이 중립국가로 남기를 원했다. 동.서독과 미국.소련.영국. 프랑스 등 승전 4개국이 참가한 2+4 협정에서 이런 문제가 논의됐다. 당시 겐셔 전 장관의 외교적 역할이 중요했다.



▶최장집=베를린 장벽 붕괴와 독일 통일, 소련과 동구 공산 사회의 몰락으로 유럽의 냉전 체제는 해체됐다. 그러나 냉전의 다른 한 축인 동아시아에서는 여전히 문제가 해결되지 않았다. 그것은 북핵 위기로 나타나고 있다. 분단의 과정이 달랐듯이 냉전을 해체하는 과정도 다를 것이다. 독일의 경험에서 많은 것을 배울 수 있다고 본다. 냉전의 원인과 해체 과정의 많은 차이에도 불구하고 한국이 모델로 삼을 수 있는 유일한 경험이기에 그렇다. 60년대 독일의 동방정책에서 많은 교훈을 얻는다.



▶좀머=북한 문제가 위기이자 기회라고 판단된다. 한반도 문제의 해결을 위한 메커니즘을 만들 수 있다고 보는가.



▶최장집=독일의 탈냉전 과정은 장기간에 걸쳐 준비되고 이뤄졌다. 통일은 그 결과다. 분단문제를 정당 간의 민주적인 방식으로 풀 수 있게 마련했다는 점이 중요하다. 경제적 민주화를 정치적 민주화와 병행해 추진했다는 점도 주목할 만하다. 노동자 계층을 바탕으로 한 사민당의 기본 정책인 사회복지를 보수 정당인 기민당도 동의해 합의할 수 있었다는 점이 독일 민주화의 토대가 됐다.



이 같은 사회정치적 기반이 존재하지 않았다면 통일이 될 수 없었을 것이다. 한반도에서 평화를 만들고 정착시키기 위해서는 북한뿐 아니라 남한 사회도 더 많이 민주화돼야 한다. 한반도에 통일이 온다고 가정할 때 남한이 통일을 평화적으로 운영할 수 있는 국내 정치적 역량과 기반을 갖고 있느냐에 대해서는 회의적이다. 한반도에서는 통일을 말할 것이 아니라, 평화를 어떻게 정착시킬 것인가를 많이 연구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겐셔=다원화된 새 세계의 질서는 우리에게는 기회다. 6자회담은 북핵 사태와 향후 평화체제 구축에 도움이 될 것이다. 독일 통일은 신뢰구축이 전제가 됐다. 남북 분단 극복에도 신뢰가 중요하다. 한반도의 통일은 갑작스럽게 다가올 수 있다. 모든 상황에 대비할 필요가 있다.



▶킨더만=김대중 전 대통령은 2000년 남북 정상회담에서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만나 새로운 전환기를 마련했다. 빌리 브란트 전 총리의 동방정책을 연상케 한다. 동.서독은 동독 에어푸르트와 서독 카셀에서 정상회담을 했다. 하나의 국가가 오랜 기간 분단돼 있었다면 해빙 분위기를 조성하는 데 시간이 걸린다.



▶이홍구=한국인은 정파나 출신 지역에 따라 서로 다른 의견을 갖고 있다. 하지만 전쟁만큼은 절대로 피해야 한다는 것이 국민적 합의다. 또 북한 체제가 과감히 변화를 시도한다면 이를 도와야 한다는 데도 어느 정도 합의가 돼 있다. 그러나 북한 체제가 과연 변화를 선택할 수 있을 것인가. 그런 능력이 있는가. 변화를 선택했을 때 개방도 할 것인가. 북한 체제가 안정을 유지할 수 있을까. 북한 지도자와 정권의 안정, 또는 북한 국가 체제의 안정 등 이 모든 문제를 과연 어떻게 예측해야 하는가에 대해서는 분단과 통일을 경험한 독일이 좋은 의견을 줄 수 있다고 본다.



▶겐셔=동독 주민의 의지가 없었다면 통일은 불가능했을 것이다. 동독 주민이 장벽을 무너뜨렸다. 남한은 북한과 어떤 형태의 협력이라도 가능하게 만들어야 한다. 북한의 개방이 이뤄질 수 있게 도와주어야 분단을 극복할 수 있을 것이다.



▶좀머=한반도의 통일은 평화통일이 돼야 한다. 북한의 체제 전환에 독일의 경험이 도움이 될 듯하다. 그러나 통일에는 장기적인 희생과 결단이 필요하고 많은 경제적 비용이 불가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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