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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보육정책은 철학과 맷집이 필요하다

윤희숙
KDI 연구위원
인천 어린이집 사건은 무상보육과 관련한 갈등 축들을 표면으로 부상시켰다. 보육교사와 학부모 간의 갈등이 먼저 불거졌다. 보육교사 자격증 관리가 얼마나 부실한지에 경악했다는 학부모 댓글이 인터넷을 달궜다. 보육교사들의 항변은 학부모들을 향했다. 자녀 한 명 돌보는 것도 힘들어 어린이집에 맡겨 놓고 카페에서 노닥거리면서 어떻게 여러 명과 종일 씨름하는 자신들을 비난할 수 있느냐는 것이다.



 취업 여부에 따른 입장 차이도 갈등의 한 축이다. 시설 보육에 대한 과도한 수요가 열악한 보육환경의 원인이기 때문에 취업 여부에 따라 보육 지원을 차등화하겠다는 것이 정부 입장이다. 이에 대해 전업주부들은 육아와 가사의 가치를 폄훼한다며 반발한다. 취업 못한 것도 화나는데 보육 지원까지 차등을 받을 수 없다는 것이다.



 세대 간 시각 차이 역시 크다. 국가로부터의 도움을 받지도, 기대하지도 않으면서 자녀를 키워낸 세대는 연일 터지는 사건이 모두 당황스럽다. 일부 보육교사의 자질이 형편없다는 것도 놀랍지만 전업주부들이 하루 종일 자녀를 어린이집에 맡기면서 식습관을 바로잡아 달라고 부탁한다는 것도 이해하기 어렵다. 엄마들의 분노에 공감하면서도 자녀를 돌보지 못할 사정이 딱히 있는 것도 아니면서 왜 부실한 어린이집에 장시간 자녀를 맡기는지 되묻는다.



 이게 뭔가. 연 12조원에 달하는 세금을 보육과 유아교육에 쏟아붓고 있는데, 수요자와 공급자 간 갈등에 더해 세대 간 갈등까지 심화되고 있다. 우리나라처럼 빠르게 발전해 온 나라에서는 세대 간, 계층 간의 경험이 큰 차이를 보인다. 사회적 경험이 시민의 권리와 책임의식에 큰 영향을 미치는 이상 경험의 이질성은 서로 간의 몰이해로 귀결되기 쉽다. 세대 간, 계층 간 갈등은 서로의 사연과 경험을 이해하려 하지 않고 자신의 권리만 주장할 때 깊어진다. 따라서 함께 사는 사회를 위해서는 권리와 책임에 대한 인식의 이질성을 줄이는 노력이 필요하다. 그 핵심은 국가를 운영하는 사람들이 정책의 방향성을 분명히 하고 폭넓은 동의를 구하는 것이다.



 그간의 보육정책을 실패라고 평가할 수밖에 없는 것은 비용 대비 질이 낮거나 아동 학대가 발생해서가 아니다. 이는 모두 표면상의 문제일 뿐 그 근저에 자리한 문제는 정치권이 ‘무상’ 프레임에 집착해 보육 지원을 선거전략으로 밀어붙이는 과정에서 권리와 책임에 대한 공동체적 인식에 깊은 단절이 초래됐다는 것이다.



 육아 지원에 대한 공감대를 꼽아 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자녀를 건강한 시민으로 키워 세상에 내보내는 것은 우선적으로 부모의 책임이다. 육아와 가사를 폄훼하는 것이 아니라 쉽게 대체되지 않을 정도로 가치 있다는 것이다. 둘째, 급속한 고령화 속에서 여성 경제활동이 사회 활력을 유지하는 데 중요한 만큼 취업모에게는 엄마 보육에 가까운 환경에서 아이가 자라도록 지원하는 것이 필요하다. 셋째, 다음 세대가 건강하고 우수하게 자라는 것 또한 공동체의 관심과 도움이 필요하다. 아이를 키워 본 사람 누구라도 어린 자녀에게서 잠시라도 눈을 뗄 수 없는 엄마의 고단함을 이해한다. 하루 서너 시간 숨 쉴 여유를 주는 것이 엄마와 자녀를 위해 바람직하다. 넷째, 고소득가구에는 굳이 사회적 지원이 제공될 필요가 없다. 그 재원은 보다 절실한 사람에게 쓰이는 것이 바람직하다.



 이는 우리의 보편적 정서일 뿐만 아니라 서구 선진국에서도 통용되는 원칙이다. 무상보육 원칙을 버리는 것이 아니다. 필요에 따라 무상의 범위를 맞춤형으로 설정하는 것일 뿐이다.



 이제 더 이상 여의도 탓만 하고 있을 때가 아니다. 과도한 수요 때문에 질 관리가 어려웠다는 정부의 변명도 수긍이 가나 그렇다고 면죄부가 주어지는 것은 아니다. 2012년 국회에 보육 지원 개선안을 들고 가 문전박대를 당한 후 정부는 젊은 전업주부들의 눈치를 보느라 별 노력을 하지 않았다. 강력한 이해세력이 돼버린 4만여 어린이집 원장에 대해서도 허약하긴 마찬가지다. 평가에 지원을 연동해 부실기관을 퇴출시키는 것이 재정 지원의 기본 원칙인데도 구현하지 못했다. 자격 관리의 문제점이 빈번히 지적돼 왔음에도 불구하고 교육기관 눈치를 보느라 문제를 방치했다. 향후 30년 동안 아이들 수가 30% 줄어들 것으로 예상되는 이상 구조조정의 원칙과 경로를 확실히 해야 한다. 지금 가장 아쉬운 것은 정부의 철학과 맷집이다.



 훈련이나 구직활동·취업 중인 주부에게는 현재와 같은 주 68시간 지원을, 전업주부들에게는 주 20시간을 제공하면서 엄마와 아이가 같이 시간을 보낼 수 있는 어린이도서관·놀이터·영화관 등 다양한 지원시설을 확대한다. 노령연금에서도 그렇듯 보육 지원에서도 소득 상위 30%를 제외한다. 2~3년의 경과규정을 두고 재정 지원을 평가 결과에 연동할 것을 어린이집에 천명한다. 평균 근무시간과 자격증 취득 경로 등 교사 정보를 어린이집 정보 공시에 포함해 엄마들의 선택을 돕는다. 이것이 평균적인 중년 여성에게 제공할 만한 기본 메뉴다. 이런 구체적인 부분부터 철학과 맷집을 갖고 논의를 시작해 보자.



윤희숙 KDI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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