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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선희의 시시각각] 페미니즘의 종언

양선희
논설위원
한때 열렬히 페미니즘(feminism·여성주의)을 주창했던 선배는 요즘 “나는 페미니스트가 아니다”고 선을 긋는다. 유능한 ‘알파걸’들을 탐구한 책에서도 자신이 페미니스트라는 알파걸은 없다고 했다. 각 분야의 성공한 여성들 중 여성운동가들을 비판적으로 보는 사람도 많다. ‘나는 항상 옳다’는 일부 극렬 페미니스트의 도덕적 선민주의, 여성운동을 발판으로 정계에 진출해 기득권층화한 일부 여성 정치인, 남성에 대한 혐오감으로 변질된 일부 극단적 페미니즘이 주는 불편함이 커서다.



 그러나 여성들에겐 페미니즘에 대한 나름의 부채의식이 있다. 남녀가 평등하다는 사실을 사회와 여성 스스로에게 인식시키고, 여성의 제도적 권리를 한땀 한땀 쟁취한 건 페미니스트 덕이었다. 우리나라 페미니즘 운동은 1980년대에 이론적 논쟁이 가열됐고, 90년대엔 사회적 성과를 내기 시작했다. 당시 목적은 분명했다. 여권 신장과 남녀 간 평등한 대우를 확보하는 것. 드디어 김대중 정부 시절 ‘남녀고용평등법’ 제정을 시작으로 제도적인 평등권 확보에 가속도를 냈고, 현재 제도적 차원에서 평등권은 거의 확보됐다. 물론 제도적 권리에 따라가지 못한 현실적 불평등은 여전히 있다. 이런 디테일에 대한 미세 조정에는 또 상당한 기간이 걸릴 것이다.



하나 모든 실천적 사상(-ism)은 생성·발전·소멸의 단계를 겪듯, 페미니즘도 이젠 전성기가 끝났다. 여성계에서도 ‘양성 평등’ ‘일·가정 양립’ 등으로 지향점을 옮긴 지 한참 됐다.



 요즘 페미니즘은 그 자체가 아니라 ‘안티페미니즘’ 때문에 쟁점화된다. 힘이 빠진 페미니즘에 비해 안티페미니즘은 극렬하다. 물론 이는 자연스러운 역사적·변증법적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변증법적으로 말하면 페미니즘은 ‘지양’의 단계다. 그러나 그 실태는 걱정스럽고, 때론 공포스럽다. 남성들의 분노가 여성 혐오로 번지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 잇따라 일어나는 가장들의 아내 및 가족 살해, 각종 여성 상대 범죄의 급증은 권위가 떨어진 남성들의 분노와 혐오가 ‘여성 살해(femicide)’로 치닫는 건 아닌지 근심스러울 정도다.



 최근 이슬람 수니파 무장단체 이슬람국가(IS)에 합류한 것으로 추정되는 김모군이 남겼다는 “페미니스트가 싫다”는 말은 생각보다 또래 남성들 사이에 ‘격한 공감’을 일으킨다. 며칠 동안 틈틈이 취재한 젊은 남성들 중 이 말에 공감하지 않는다는 사람은 없었다. 여성 혐오와 페미니즘 혐오를 동일시하는 경우도 보인다. “남녀 평등이 아니라 남성 노예화다. 여자들은 힘든 일, 돈 드는 일은 남자에게 하라고 한다.” “권리 주장에 강한 한국 여자들이 자기에게 유리한 건 옛날식 매너를 강요한다.” “요즘 엄마들은 아들의 남성성도 발현하지 못하도록 억압한다.” “남성성을 이해 못하는 여성들의 남성 혐오는 페미니즘이라면서 여성 혐오는 왜 범죄라는 건가.”



 생각 의 격차는 점점 벌어져 이젠 대립구도다. 아무리 여성계가 양성 평등을 외쳐도 남성들은 이 역시 ‘여성 이익을 위해 남성을 주저앉히려는 수작’ 정도로 본다. 최근 여성단체연합은 표준국어대사전에 있는 페미니즘의 뜻을 기존 ‘여권 신장 또는 남녀 평등을 주장하는…’에서 ‘모든 형태의 차별을 없애기 위한 다양한 이론…’으로 바꿀 것을 제안했다.



 한데 페미니즘은 지금 사전의 뜻이 맞다. 개념의 발전에 따라 뜻을 보탤 수는 있지만 이를 바꿔 그 역사성과 행적을 숨겨선 안 된다. 과거의 여권(女權)은 인권의 한 종류라 하기엔 민망할 만큼 열악했다. 페미니즘은 역사적 소명을 다했다. 이젠 페미니즘과 안티페미니즘을 넘어 전혀 새로운 변증법적 합(合)에 도달할 차례다. 여성주의를 살짝 비튼 양성 평등으론 답을 찾기 힘들 거다. 인권을 넘어선 인간성에 대한 진지한 고찰, 공존을 위한 방법론의 탐색 등 차원이 다른 인간 탐구가 이뤄져야 할 때인 것 같다.



양선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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