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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64)「주월군사원조단」-제79화 육사졸업생들(217)

정부는 국군파월에 관한 국회동의서 얻기에 앞서 7월20일 이미 파견부대의 편성을 완료,서울창동 육군후송병원에서 교육에 들어갔었다.
이동외과병원은 이형수중령(중렴예편·종합27기·현대인시수성동 지성의원장)을 병원장으로 임명하는등 장교34명(간호장교6명포함)과 사병96명으로 편성했다.
태권도 지도단도 단장에 백준기소령(대령예편·종합16기·오도회관 중앙본관장)을, 단원으로 추교일(소령예편·오도회관 부관장) 박양규(소령예편·사업) 유형선(중령예편·육사15기) 이대희(현역소장·육사15기) 김봉규(대령예편) 임경환(대위예편·이민) 곽주환(대위예편·재미) 임승해(소령예편·이민) 김수동(중령예편·사업)대위등으로 구성했다.
백단장은 당시 태권도7단으로 우리 육군에 태권도를 보급했던 분인데 이미 59년도에 한국군 태권도연무시범단원으로 월남에 가서 태권도를 보여주고 왔었다. 이런 경력으로 육군본부 7인 심사위원회에서는 만장일치로 백소령을 단장으로 뽑았다고 한다.
추대위등 단원 9명은 백소령이 직접 각부대 태권도사범가운데서 선발한것으로 기억되는데 전원 3단이상이었다.
태권도 지도단은 7월20일부터 매일 새벽5시에 기상, 창동에서 도봉산까지 왕복20㎞를 맨발로 구보를 하는등 강훈련으로 발바닥이 갈라지기도 했다. 그러나 이들은 합숙훈련을 통해 태권도의 기본 품세·겨루기·격파등 기법을 통일시켰다고 한다.
어느 교관이 어떤 동작을 해도 똑같도록 한다는것은 여간 어렵지 않았지만 이들은 이 어려움을 극복, 한국태권도가 바로 이것이라고 할 모델을 만들었던 것이다.
이동외과병원과 태권도지도단은 8월8일까지 일단 1차교육을 끝내고 언제라도 출발명령이 떨어지면 떠날채비를 완료했으며 이부대의 공식명칭을 「주월군사원조단」이라고 명명했다.
한편 정부는 8월26일 합참군수국차장 이동섭준장(육사7기·전석공사장)을 단장으로 하는 선발대를 비밀리에 사이공에 파견했다.
한국군파병에 따른 구체적인 사안을 사전에 월남정부·군관계자, 그리고주월미군과 협의하기 위한 것이었다.
이장군이 선발대로 갈때 함께 간 대원은 육본 군수참모부 김영일대령(소장예편·육사8기특별·해외개발공사사장) 어수복대위(이동외과병원의정장교), 그리고 미8군과 군사고문단에서 파견된 미군중령 2명등이었다.
김종오합참의장은 이장군에게 『안전한 지역에서 부대가 임무를 수행할수 있도록 위치선정을 잘하라』고 거듭 당부했다고 들었다.
이장군일행이 미군수송기로 김포를 출발하기 바로 전날 월남에서는 또 정변이 일어나 「칸」장군이 수상에서 물러나고 거의 무정부상태가 되었다는 외신이 날아 들었지만 선발대는 예정대로 출발했다.
이장군일생은 일본 다찌까와(입천) 미공군기지와 필리핀 클라크 미공군기지를 거쳐 같은날 저녁 타손누트공항에 도착했다.
공항에는 정변중이었지만 월남외무부차관과 월남군총사령부 군수참모부장「돈」장군과 주월미군원조사령부 군수참모「오스먼스키」장군이 이장군일행을 반갑게 맞았다고 한다.
이장군은 미군세단을 타고 숙소인 머제스틱호텔로 가는동안 미군안내장교로부터 『자동차를 타고 가는동안 절대로 차를 세우지 말고 창문을 열지도 말라』는 부탁과 함께 『만일 수류탄이 날아들면 반대편으로 급히 피신하라』는 말을 듣고 『바로 여기가 사이공이구나』 하고 실감했다고 한다.
수도 사이공까지 베트콩의 테러행위가 자행될 때였던 것이다.
이장군은 다음날 주월미군사령관 방문스케줄을 변경, 월남군총사령부를 먼저 방문했다고 한다. 월남에 대한 한국군의 관심을 표시하기위한 것이었다. 이때 월남군총사령부 참모장은 「티우」장군이였는데 나중에 그는 대통령이 되었다. 이장군을 만난 「티우」장군은 한국군의 파병을 정말 감사한다면서 은혜를 영원히 잊지않겠다고 말했다.
다음날 이장군은 신상철대사·이대용무관(당시 대령·육사7기·준장예편·현화재보험협회이사장)과 함께 우선 이동외과병원이 들어설 땅을 보러 나섰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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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방연구원 전력발전연구부ㆍ군비통제센터를 거쳐 1994년 중앙일보에 입사한 국내 첫 군사전문기자다. 국방부를 출입한 뒤 최장수 국방부 대변인(2010~2016년)으로 활동했다. 현재는 군사안보전문기자 겸 논설위원으로 한반도 군사와 안보문제를 깊게 파헤치는 글을 쓰고 있다.

박용한 연구위원 : park.yonghan@joongang.co.kr (02-751-5516)
‘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