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차 싶었다. 지금껏 살면서 내 뒤에 오는 누군가를 위해 문을 잡아준 적이 있었나. 그런 교육을 받은 기억이 나지 않았다. 사실 우리 학교 학급의 출입문은 대부분 옆으로 쭉 밀고 닫는 미닫이였다. 내 아이들이 다녔던 중·고교 역시 미닫이였던 걸로 기억한다. 미닫이에선 아무래도 뒷사람을 덜 신경 써도 된다. 이런 시설환경 차이 때문에 우리는 학교에서 이런 배려교육을 받을 필요가 없었는지 모른다.
내 스스로 도어홀더가 되자고 했다. 집 밖에 나가면 문고리를 잡을 일이 의외로 많았다. 우선 회사 정문이다. 문을 휙 열고 들어가면 그때 열린 유리 대문이 뒷사람을 향해 되돌아온다. 넋 놓고 출입문을 통과하다간 유리문에 얼굴을 박고 큰 부상을 당할 수 있다. 앞사람이 휙 열고 들어가자 뒷사람이 주머니에서 손도 빼지 않은 채 발을 문 밑에 확 들이대 세운 뒤 자기 몸만 쏙 들여놓는 장면도 자주 봤다. 웃음이 났다. 문 잡아 주는 데 걸리는 시간이 얼마 든다고.
자동 회전문이 있는 건물이 많아지고 있으나 여전히 여닫이 유리문이 도처에 있다. 많은 사람이 통과해야 하는 백화점이나 할인매장 문은 대부분 여닫이 유리문이다. 그래서 통과할 때마다 문을 잡고 뒷사람이 있는지 확인하곤 한다. 친절하게 보이려는 뜻은 아니다. 10년 전 한 초등학교에서 느낀 점이 내게 깊은 인상을 남겨서다.
중앙SUNDAY가 올 들어 시행하고 있는 ‘작은 외침(loud) 프로젝트’에 ‘뒷사람을 위해 출입문 잡아주기’가 있다. 교보문고 광화문점 유리문에 종이거울을 부착했더니 거울에 비친 뒷사람의 모습을 본 보행자가 스스로 도어홀더 역할을 했다고 한다. 이런 작은 변화로 시민의 행동이 달라질 수 있다는 게 신기했다. 살림살이가 갈수록 각박해져 가는 서울 한복판에서 자발적 도어홀더가 확 늘어나는 날을 기대해 본다.
강홍준 사회1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