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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일기] 알맹이는 빼고 담화는 계승하려는 코미디

[일러스트=김회룡 기자]


김현기
도쿄 총국장
이슬람국가(IS)에 의해 일본인 인질 1명이 참수당한 게 확인된 25일 일본 열도는 하루 종일 충격과 슬픔에 휩싸였다. 오전 9시부터 시작된 NHK 일요토론 프로그램에 출연한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의 표정 또한 안쓰러울 정도로 침울했다. 이번 사건은 인간의 생명과 존엄성을 ‘거래’하려는 묵과할 수 없는 폭거임에 틀림없다. 일본뿐 아니라 평화를 존중하는 모든 국가의 비극이다.



 그런데 이날 TV토론은 IS사태를 논하다 종전 70년을 맞아 오는 8월 발표 예정인 ‘아베 담화’로 화제가 옮겨 갔다.



 ‘아베 담화’의 관전 포인트는 뚜렷하다. 1995년 ‘무라야마 담화’, 2005년 ‘고이즈미 담화’처럼 식민지 지배와 침략을 인정하고 “아시아인들에게 통절한 반성과 마음으로부터의 사죄의 뜻을 표한다”는 표현이 확실하게 들어가느냐 여부다. “아베는 역사수정주의자”란 국제사회의 지적을 “터무니없는 오해”라고 주장하는 아베의 본심을 가늠하는 일종의 리트머스 시험지다.



 그런데 아베는 이날 TV에서 ‘기존 표현’을 쓰지 않을 뜻을 명확히 밝혔다. 그는 “지금까지의 (무라야마·고이즈미 담화) 스타일을 그대로 바닥에 깔고 쓰게 되면 ‘이제껏 써왔던 단어를 안 썼다’ 혹은 ‘새로운 단어가 들어갔다’고 하는 자질구레한 논의가 된다”며 “그런 논의가 되지 않게끔 70년 담화는 새롭게 낼 생각”이라고 말했다.



 깜짝 놀란 사회자가 “그렇다면 반드시 예전의 키워드(침략·통절한 반성·사죄)를 똑같이 사용하지 않는다는 것이냐”고 되물었다. 아베는 “그렇게(똑같이) 하겠다는 것이 아니다”고 잘라 말했다. 그러면서도 “무라야마 담화 등은 ‘전체로서’ 계승한다”고 했다.



 귀를 의심했다. ‘침략’ ‘통절한 반성과 마음으로부터의 사죄’를 넣느냐 안 넣느냐가 자질구레한 논의라고?



 담화는 표현으로 성립된다. 표현이 바뀌면 담화의 정신도 바뀌는 법이다. 그동안 성립된 국가 간 관계도 달라질 수밖에 없다. 표현을 바꿔 놓고 담화의 정신은 그대로라고 우기는 건 저급 코미디다.



 이날 같은 프로그램에 출연한 정치 지도자들의 “담화의 키워드는 극히 큰 의미를 지닌다. 근린제국과 국제사회에 전달할 표현이 아니라면 의미가 없다”(야마구치 나쓰오 공명당 대표), “(키워드를 뺀다는 건) 결코 용서할 수 없다”(오카다 가쓰야 민주당 대표)는 발언을 길게 옮길 필요도 없겠다.



 ‘앙꼬’를 뺀 찐빵을 들고 으쓱해하는 일본 지도자의 모습은 일본의 비극이다. 나아가 인간의 생명과 존엄성, 그리고 평화를 존중하는 전 세계 모든 국가의 비극이다. 비극은 IS 사건만이 아니다.



김현기 도쿄 총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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