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Load Image preLoad Image
검색 바로가기
주메뉴 바로가기
주요 기사 바로가기
다른 기사, 광고영역 바로가기
중앙일보 사이트맵 바로가기
닫기
닫기

'제조업의 심장' 울산이 앓는다

멈춰서 있는 대기업 S사의 울산화학산업단지 내 SM(스타일렌 모노머) 공장 전경. 경기가 좋을 땐 일년 내내 흰 연기가 멈추지 않았던 공장 굴뚝이지만, 지난해 7월부턴 공장 가동이 중단됐다. [송봉근 기자]


21일 울산 석유화학산업단지에 자리한 대기업 S사의 SM공장. 경기가 좋을 땐 스티로폼의 중간제인 SM(스타일렌 모노머)을 한해 26만t씩 생산했지만 지난해 7월 완전히 가동을 멈췄다. 공장을 짓는 데에만 1700억원이 들었던 대규모 시설이다. 공장이 멈춰서면서 관련 직원들을 다른 부문으로 이동 배치했다. 현재는 32명 중 8명만 남아 최소한의 유지보수 작업을 한다. 이 공장의 가동을 책임졌던 김준호 팀장은 “언제 다시 켜질지 모르는 공장이다. 안타까울 따름”이라고 쓴 웃음을 지었다. 사정은 인근의 TPA생산 공장도 마찬가지다. TPA는 페트병의 원재료가 되는 중간 소재다. 연 52만t을 생산하던 이 공장 역시 현재는 완전히 멈춰섰다. 98명이던 직원 역시 뿔뿔이 흩어졌다. 이 공장의 임구하 생산팀장은 “중국의 합성섬유 원료 자급률이 2013년 61%였는데 1년여만에 90%대 중반으로 올라섰다”며 “가동하면 할수록 적자가 쌓이다보니 어쩔 수 없이 공장을 세워놓고 있다”고 말했다.

수주 부진, 수출 감소로 시름시름
공장 가동 줄고 우수인력 해외로
3조 적자 현대중공업은 명퇴 중
협력업체도 어려움 … 식당가 썰렁



 ‘40년 호황’에 기대어 있던 한국의 산업수도 울산이 시름시름 앓고 있다. 석유화학과 중공업이 대규모 수주 부진과 수출 감소로 중환자 신세를 면치 못하고 있다. 그나마 자동차 산업이 버텨주고 있다. 울산 경제의 세 축 가운데 두 축이 제 역할을 못하고 있는 것이다.



 불황의 골이 가장 깊은 곳은 석유화학이다. 나일론 원료인 카프로락탐을 생산하는 ‘카프로’는 2013년 10월 3곳의 공장 중 한 곳의 가동을 완전히 중단했고, 지난해 8월 다른 한 곳의 가동률을 20%대로 낮췄다. 이 회사는 2012년 2만964t의 카프로락탐을 중국에 수출했으나, 2013년에는 수출량이 99.8%(32t 수출)나 줄어들면서 어려움의 길을 겪게 됐다.



 이 지역의 맹주 중 하나인 현대중공업 역시 지난해 3분기까지 3조2000억 원이 넘는 적자를 기록하고, 현재 사무직 1500여명의 명예퇴직을 실시 중이다.





  대기업과 수출기업의 부진은 중소기업의 위기와 지역 상권의 쇄락을 불러왔다. 지난 23일 울산시 동구 서부동의 한 삼겹살집 주인 박모(44·여)씨는 오후 9시가 지나자 불을 끄고 가게 셔터를 내려버렸다. 더 이상 영업을 해봤자 올 손님이 없다고 판단해서다.



 박씨는 “지난해 이맘 때는 오후 11시까지 영업을 했는데 올해는 손님이 뚝 끊겨 늦게까지 영업을 할 이유가 없다”며 “현대중공업 경기 영향을 그대로 받고 있다”고 말했다. 인근 현대중공업 근로자들이 주된 손님이었던 그의 식당은 목요일과 금요일 저녁은 테이블 15개가 항상 가득 찼다. 예약 손님이 반 이상이었다. 연말이면 회식 예약이 꾸준히 들어왔다. 하지만 현대중공업 실적이 뚝 떨어진 지난해 말, 상황이 달라졌다.



 협력업체도 어렵기는 마찬가지다. 울산에서 플랜트 유지보수 사업을 하는 중소업체 유벡은 2012년 1300억원 선이던 매출이 지난해에는 860억원으로 떨어졌다. 이 회사 김형신 대표는 “플랜트 가동 중단이 계속되다가는 매출이 500억원 대까지 떨어질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고 걱정했다.



 수출 포장업체인 B사는 최근 직원 수를 38명에서 15명으로 줄였다. 그래도 월급을 주기엔 빠듯한 형편이다. 거래하던 대기업에서 수출 물량 감소를 이유로 거래 중단을 선언했기 때문이다. 더 큰 문제는 울산과 국내 제조업체들이 앓고 있는 불황이 우수인력의 대규모 이탈로 이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최근 울산 석유화학 단지에서 주요 엔지니어급 인력이 해외 관련 업체로 이직하는 건 더 이상 새로운 소식이 아니다. 한 대기업 계열 석유화학 회사는 최근 공장운영을 맡고 있는 팀장급 인력이 사우디의 정유업체로 이직해 갔다.



 익명을 원한 플랜트 업계 관계자는 “우리나라 석유화학 기업들을 선진국과 비교할 때 기초 기술력은 20%도 채 되지 않지만, 플랜트 운용 기술만큼은 세계 어느 나라에도 뒤지지 않는다”며 “경쟁력을 받쳐주는 플랜트 운용능력까지 해외 스카우트라는 형태로 자꾸 빠져나가고 있어 이러다 제조업 전체가 말라 죽는 게 아닌가 걱정스럽다”고 전했다.



 실제 국내 굴지의 한 화섬업체는 수 년전 자사의 핵심 엔지니어가 중국 업체로 옮겨가면서 자사의 주력 플랜트와 해당 중국업체가 새로 지은 플랜트가 95% 이상 흡사해졌다는 사실에 아연실색해야 했다.



 문제는 ‘멈춰서는 공장’이 울산의 특이한 현실이 아니란 점이다. 포스코의 마그네슘 제련공장(옥계공장)과 현대제철의 철근라인, 대구소재 섬유가공업체인 우림날염 등 최근 1년간 멈춰선 국내 생산시설들은 수를 셀 수 없을 정도다.



 현대경제연구원 백다미 선임연구원은 “한국 주력 산업의 경쟁력을 회복하기 위해선 한국 주력 산업의 고기술·고부가가치화가 필요하다”며 “핵심 신소재와 부품, 융복합 신기술 제품처럼 (중국의) 추격이 어려운 신규 주력 산업을 육성해야 한다”고 말했다.



울산=이수기·차상은 기자

사진=송봉근 기자
AD
온라인 구독신청 지면 구독신청

PHOTO & VIDEO

shpping&life

많이 본 기사

댓글 많은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