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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민이 만난 사람] 다시 움직이는 김황식 전 총리

김황식 전 총리는 자원외교 국정조사에 대해 “위법 사항은 엄중히 가려야 하지만 정부나 공공기관의 역할을 위축시키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했다. [오종택 기자]


김황식 전 국무총리가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지난해 새누리당 서울시장 후보 경선에서 정몽준 전 의원에게 패한 뒤 대외 활동을 접었다. 김 전 총리는 광주 유니버시아드대회 공동 조직위원장에 선임된 데 이어 최근엔 사단법인 아데코(ADeKo·Alumni Deutschland-Korea) 이사장을 맡았다. 아데코는 한국과 독일에서 활동하는 양국의 기업가·학자·외교관·교수들의 네트워크다. 판사 시절(1978~79년)과 총리 퇴임 후(2013년) 독일에서 공부하며 인연을 맺었다.

정치는 참 별다른 세계다
상식 밖으로 갈 경우 생겨
10년 겪을 일 두 달에 경험



 유니버시아드 대회 홍보와 한·독 관계 증진을 위한 활동으로 분주한 그를 지난 21일 오후 만났다. 두 달 전 문을 열었다는 서울 광화문의 법률사무소에서다. 김 전 총리의 광주 서을 보궐선거(4월) 차출설이 새누리당에서 나오고 있던 터라 출마 의향부터 물었다. 그는 “그런 얘기는 당에서만 나오는 얘기일 뿐”이라고 일축했다. 그러면서 “7월 광주 유니버시아드 대회를 성공적으로 치르는 데 주력할 생각”이라고 했다. 1년 전 서울시장 선거 차출설이 거론되던 때와 묘하게 오버랩되는 장면이다. 서울시장 후보 경선이 그에게 어떤 의미로 남아 있는지 궁금했다.



 -왜 경선에서 졌다고 생각하나.



 “주변의 권고에 따라 저 나름대로는 선의를 갖고 나섰는데 준비와 경험이 없어서 그런 결과가 나왔다고 생각한다. 제 역량이 부족했다. 누굴 원망할 수 없다. 결국 내가 책임져야 하는 문제다.”



 -출마를 권한 사람들이 원망스럽지 않나.



 “호남(전남 장성) 출신이니까 지역 갈등을 해결할 수 있는 룸이 있겠다 해서 나섰는데 정치 현실이 그런 줄 몰랐던 거다. 참 별다른 세계다. 하나님이 나를 별다른 세계로 여행시켜 주셨다고 생각한다.”



 -별다른 세계란 무슨 뜻인가.



 “상식적으로 생각했던 세계와는 다른 세계였다. 상식적으로 생각할 때 이 길로 가야 하는데 막상 정치에 가보니 다른 길로 가야 하는 경우가 생기더라. 애초부터 내가 꼭 당선돼야 한다는 욕심은 없었다. 멋지게 경선해서 누가 후보가 되는지 본선 경쟁력으로 이어지도록 아름다운 경선을 하고 싶었는데 내 뜻을 전혀 반영시킬 수 없는 방향으로 진행돼버리더라. 그런 걸 못 막은 내게도 책임이 있다. ‘정치인들이 10년 동안 겪을 일을 두 달 동안 압축 경험했다’고 말하는데 정말 실감나는 얘기다.”



 -내년 총선 출마 등 본격적으로 정치에 나설 생각은 없나.



 “그런 생각은 안 하고 있다.”



 김 전 총리는 40년 넘게 공직의 길을 걸어왔다. 판사(1974년)를 시작으로 대법관→감사원장→국무총리를 지냈다. 사법·행정을 두루 경험하면서 그의 주된 관심사는 독일이 통일을 이루고 유럽연합(EU)을 경제적으로 이끌어 가는 기반이 어떻게 마련됐는지 연구하는 데 쏠렸다. 그 결과 “독일이 지금의 평화와 번영을 누리고 있는 기초는 정치에 있다”는 결론을 얻었다고 한다. 제2차 세계대전에 패한 독일은 과거 나치 정권에 대한 반성으로, 한쪽으로 권력이 집중되는 걸 막기 위한 분권 시스템을 도입했다. 또 권력의 분산으로 인해 초래될 수 있는 혼란을 막기 위해 각 정파가 서로 타협하지 않으면 한 발짝도 나가지 못하도록 제도를 정교하게 바꿔 버렸다. 독일이 총선 때마다 최다 득표한 정당이 단독 정부를 구성하지 않고 연립정권을 꾸려 오는 배경이기도 하다.



 -우리 국회도 타협의 정치를 하겠다며 국회 선진화법을 만들었지만 오히려 국회가 올스톱되는 부작용이 생겼다. 독일의 타협 정치는 어떻게 가능한가.



 “독일은 선거가 끝나면 2개월 동안 최다 득표 정당을 중심으로 각 정당이 모여 공약을 단일화하는 협상을 한다. 연립정부 협상이다. 장관 배분은 나중이고 우선 공약을 주거니 받거니 하면서 타협을 거쳐 여러 개의 정당이 마치 하나의 정당처럼 하나의 정책을 만들게 된다. 절충 없이는 국정을 운영할 수 없도록 한 것이다. 협상과 절충을 하는 과정에서 강력한 힘이 생긴다.”



 -독일이 연립정권을 이어가는 비결은 뭔가.



 “정당명부식 비례대표제를 통해 하나의 정당이 단독으로 정부를 구성할 수 없도록 시스템을 만들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지역구 투표에서 50%를 득표한 정당이 비례대표 투표에서 40%를 득표했다고 할 경우 전체 의석은 50%를 넘을 수 있게 돼 있어 결과적으론 비례대표 당선자를 한 명도 낼 수 없게 되는 식이다. 한 정당이 독식할 수 없으니 자연히 연립정부를 구성할 수밖에 없다.”



 -우리나라도 과거 군사독재에 대한 반작용으로 87년 헌법을 개정했다. 그러나 부작용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다. 개헌에 대한 견해는.



 “87년 헌법체제는 나름대로 역사적 사명을 갖고 있었다. 그러나 장기독재의 폐해가 없어진 대신 5년 단임제의 문제점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국민의 기본권도 수정해야 할 필요가 생겼고 헌재와 대법원과의 관계 등 정리해야 할 대목들이 있다. 개헌은 필요하다고 본다. 갈등과 대립을 축소하고 국가가 장기 비전에 의해 발전할 수 있는 틀을 만들 수 있도록 합리적인 거버넌스의 변화는 필요하다고 본다.”



 -승자독식의 폐해를 막기 위해 현행 소선거구제를 바꿔야 한다고 보나.



 “독일식 모델을 우리 현실에 바로 이식하는 건 문제가 있을 수 있다. 당장 어떤 모델이 우리에 적합하냐는 차치하고라도 지금 같은 양당 구조 속에서 극한 대립이 생기고 선거 결과에 따라 권력이 한쪽으로 집중되는 걸 막기 위해 시스템을 바꿔야 한다는 방향성은 맞다고 본다. 새누리당과 새정치민주연합의 거대 양당제로 가는 가운데 중재적 역할을 할 수 있는 제3, 제4의 정당이 탄생할 수 있는 기반을 선거제도를 통해 만들어줘야 한다. 중·대선거구제나 권역별 정당명부제도 방법이 될 수 있다.”



 김 전 총리는 훌륭한 정치인의 덕목으로 용기를 꼽았다. “당장의 정치적 이해에 반하더라도 국가 발전을 위해 옳은 길을 가겠다는 역대 독일 정치인들의 소신과 용기가 오늘의 독일을 만들었다”고 강조했다. 서독의 건국 총리인 아데나워 총리는 중립국 통일 독일을 제안한 옛 소련의 매력적 유혹을 뿌리치고 친서방정책을 확실하게 밀고 나가 독일 통일의 기반을 닦았다는 점을 평가했다. 빌리 브란트 총리의 경우 옛 영토인 폴란드 땅을 찾아야 한다는 국내 여론을 거스르면서 영토 회복을 포기하고 대신 폴란드 게토 앞에 무릎 꿇음으로써 국제사회의 신뢰를 얻어 통일과 유럽 통합의 밑거름이 됐다고 강조했다. 우파인 콜 총리는 좌파정권인 브란트 정부의 동방정책을 계승, 통일을 완성시킨 것을 위대한 점으로 꼽았다.



 -여론에 반하면서 용기를 갖는 건 현실적으론 쉽지 않다.



 “슈뢰더 전 총리가 좋은 예다. 독일 통일 후 경제가 어려워진 상태에서 집권한 슈뢰더는 독일이 유럽의 병자라는 비난을 받고 있을 때 자신의 지지층인 좌파의 이탈과 이에 따른 선거 패배를 감수하면서 노동 개혁을 추진했다. 슈뢰더는 정권을 뺏겼지만 독일이 다시 성장할 수 있도록 하는 기반을 마련해 오늘의 번영을 이룰 수 있게 됐다.”



 -박근혜 대통령의 ‘통일 대박’ 발언 이후 통일 준비에 드라이브를 걸고 있다.



 “국민들에게 통일의 긍정적인 측면을 부각하고 관심을 끌어올리는 역할을 했다는 점에서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통일을 너무 내세우기보다 현실적으로 할 수 있는 것부터 해나가는 게 중요하지 않을까.”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



 김 전 총리는 독일 통일에서 배워야 할 게 바로 이것이라고 강조한다. 그의 해석이 흥미롭다. “독일 사람들은 통일을 준비하지 않은 상태에서 통일이 돼버렸다고 말한다. 통일이란 목표를 갖고 한 게 아니고 같은 민족으로서 교류와 협력을 하다 보니까 베를린 장벽이 무너져 버렸다는 거다. 독일 통일은 인간이 계획을 세우고 노력해서 이뤄진 게 아니란 점에서 인간의 작품이 아니라 하늘의 작품이다. 하지만 서독 정부가 꾸준히 교류 협력을 이어오고, 민족 동질성을 회복하기 위한 노력을 해왔기 때문에 하늘도 도운 것이다.”



 그는 광주 유니버시아드 대회 때 남북 단일팀 출전, 북한 응원단 초청 등 남북 교류의 계기로 삼기 위한 방안을 고심 중이라고 한다.



 -유니버시아드 대회를 성공적으로 치르기 위한 묘책이 있나.



 “70여 개국 2만여 명의 선수가 참여하는 큰 대회지만 인천 아시안게임의 3분의 1 내지 4분의 1 예산으로 준비하고 있다. 광주엔 꼭 필요한 경기장 3개만 짓고 전남과 일부 전북의 시설을 이용하려 한다. 광주는 그동안 중요하지만 무거운 이미지가 있었는데 이번 대회를 통해 젊음·열정·문화·즐거움이 결합된 밝고 세련된 도시 이미지로 도약하는 계기로 삼으려는 생각이다.”



글=이정민 정치·국제 에디터 jmlee@joongang.co.kr

사진=오종택 기자







[S BOX] “네가 옳아도, 약한 사람에겐 져줘라” … 어머니가 인생 멘토



김황식 전 총리에겐 여러 가지 ‘기록’이 붙어다닌다. 대통령 직선제가 도입된 1987년 이후 최장수(2년4개월) 총리, 국회 인사청문회 3연속 통과(대법관·감사원장·국무총리), 정부 수립 후 최초의 광주·전남 출신 총리-.



 인생에서 가장 큰 영향을 끼친 사람으로 어머니(나아지 여사·1982년 작고)를 꼽는다. 김 전 총리는 “큰 교육을 받은 것도 아니고 그저 평범한 전형적인 시골 어머니였다”며 “그렇지만 어머니한테서 인간 존중을 배웠다”고 말했다. 이어지는 그의 회고다.



 “어릴 때 시골집에 거지가 동냥 받으러 온 적이 있다. 내가 얼른 ‘어머니, 거지 와요’ 하고 알려드렸다. 거지가 가고 난 뒤 어머니는 나를 불러 ‘다음부턴 손님 오셨다고 말하는 거야’라고 바로잡아 주셨다. 굉장한 충격을 받았다. 또 다른 사람하고 다툼이 있을 때 내가 옳다고 생각하면 상대방이 강한 사람이면 끝까지 주장을 펼쳐라. 그러나 너보다 약한 사람에겐 져주라, 양보하라고 가르치셨다.”



 명문 학교(광주일고·서울대 법대)를 나와 엘리트 인생을 걸어온 그에게 좌절이나 후회의 경험이 있었을까. 그는 대학입시에 떨어져 재수를 하던 시절이었다고 답했다.



 “고3 때 학교 대표로 전남도 농구대회에 출전하는 바람에 대학에 떨어졌다. 서울 청진동에 있던 양영학원을 다니며 재수를 했다. 소속감 없이 외롭고 쓸쓸했던 시절이다. 그렇지만 1년 재수하면서 어렵고 힘든 사람들을 따뜻한 시선으로 볼 수 있는 기회가 됐다. 재수하는 동안 더 많은 걸 얻었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보면 후회할 일이 아닌 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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