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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선 2035] 2030의 씁쓸한 기억들 … 쓸모없는 점은 없다

김혜미
JTBC 사회부 기자
이른 아침, 편의점 아르바이트를 마치고 오는 길이라고 했다. 얼마 전 취재차 만난 한 여대생 얘기다. 이 친구의 꿈은 큐레이터(전시기획자)다. 근데 전공은 교육학인 데다 외국 한 번 나가본 적이 없단다. 이 친구는 “작품보다 바코드를 들여다보는 시간이 많다”며 씁쓸하게 웃었다.



 몇 년 전 내 모습이 떠올랐다. 기자를 꿈꾸는 ‘청년 백수’ 시절. 나는 작은 기관에서 인턴으로 일했다. 직원들의 업무 비용을 처리하는 게 일이었다. 영수증을 가위로 자르고, 풀로 붙이고. ‘나는 기자가 될 사람인데. 민주주의를 논하고 권력 뒤에 숨겨진 진실을 찾아야 할 사람인데’. 나는 이런 생각을 하며 몇 천원의 계산 오류를 찾는 데 열정을 쏟았다.



 여대생과 얘기를 나누기 위해 한 카페로 자리를 옮겼다. 카페엔 반가운 그림이 걸려 있었다. 신인상파 조르주 쇠라의 ‘그랑자트섬의 일요일 오후’였다. 수많은 점을 찍어 그린 점묘화다. 유럽 여행 때 가로 3m, 세로 2m의 진품을 마주한 적이 있다. 이 그림은 도무지 어울리지 않는 점들로 이뤄져 있다. 빨간색 옆에 파란색 그 옆에 초록색, 다시 노란색. 쇠라는 2년 동안이나 이 그림에 매달렸단다. 당시엔 빠른 붓놀림으로 몇 시간 만에 작품 하나를 뚝딱 만들어내는 인상파 작가들이 수두룩했다는데.



 ‘이게 뭐야’. 그림을 처음 본 내 평가는 그랬다. 가까이에서 보면 말 그대로 ‘그림인 듯 그림 아닌 그림 같은 너’였다. “몇 걸음 뒤로 물러나세요.” 미술사를 전공한 지식 가이드가 조언했다. 그 순간, 그 생뚱맞은 색들이 혼합돼 아름다운 색감이 눈에 들어왔다. 쇠라 그림의 진가를 발견하는 순간이었다. 뚫어지게 바라보고 있으면 어느 순간 글씨가 떠오르는 ‘매직 아이’ 같았다.



 옷장만 한 크기의 그림 한 폭도 서너 걸음 떨어져서 봐야 보인다면 내 인생을 바라보는 데도 몇 년의 거리가 필요하지 않을까. ‘내 인생의 오점’이라고 여겼던 인턴 시절의 단순 계산 업무 경험은 몇 년 뒤 경제부 기자로서 각종 자료를 보는 데 도움이 됐다.



 애플의 최고 경영자인 스티브 잡스도 스탠퍼드대 졸업식 축사에서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미래를 내다보면서 점을 이을 수는 없습니다. 따라서 여러분은 지금 잇는 점들이 미래의 어떤 시점에서 서로 연결될 것이라는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대학에서 정규 과목을 그만두고 엉뚱하게 서체 과목에 등록한 스티브 잡스는 그로부터 10년 후 아름다운 글자체를 가진 최초의 컴퓨터인 맥 컴퓨터를 만들었다.



 내가 만난 여대생에게도 언젠가 환상적인 ‘매직아이의 순간’이 펼쳐질 거라 믿는다. 인생엔 어느 순간도 마땅히 지워버려야 할 쓸모없는 점은 없다.



김혜미 JTBC 사회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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