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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 view &] 증세 없는 복지는 신기루다

정경민
경제부장
백문불여일견(百聞不如一見). 정부 관료든, 여야 정치인이든, 기자든, 납세자든 요즘 절감하는 말이다. 백 번 설명해봐야 직접 한 번 해보는 것만 못한 게 연말정산이다. 1년 반 전 현행 세제개편안이 발표됐을 때도 ‘중산층 증세’라는 지적이 빗발쳤다. 다자녀 공제가 없어지고 연금저축 공제가 줄 거란 사실도 몰랐던 바 아니다. 그러나 직장인이 겪을 박탈감과 분노가 이 정도일 줄은 누구도 내다보지 못했다. 취임 첫 해 대통령이 몰아친 경제민주화 바람에 토를 달기 어렵기도 했다.



 언론 역시 책임을 면키 어렵다. 1년 반 전엔 뭐하고 이제와 호들갑이냐는 힐난에 할 말 없게 됐다. 소득 불평등을 완화하자는 명분에 홀려 곳곳에 도사린 독소조항을 꼼꼼히 파헤치지 못했다. 2013년 정부가 세제개편안 발표 닷새 만에 세부담이 증가할 계층을 기존 연봉 3450만원에서 5500만원으로 높였다고 하자 펜 끝을 누그러뜨린 게 사실이다. “연봉 5500만~7000만원 직장인이라도 세금은 꼴랑 2만~3만원 늘어날 뿐”이란 정부 설명을 여과 없이 지면에 옮긴 죄, 결코 가볍다고 볼 수 없다.



 이번 연말정산 파문을 빌미로 정부·여당을 비난하고 나선 야당도 후안무치하긴 마찬가지다. 당시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조세소위 속기록을 봐도 야당 역시 세액공제 도입을 반대하지 않았다. (본지 1월22일자 4면) 야당은 부자 증세란 명분에, 여당은 증세라는 실리에 짬짜미가 이뤄졌던 거다. 이제와 “정부·여당이 제대로 설명도 않고 우격다짐으로 밀어붙였다”는 야당의원의 항변은 누워서 침 뱉기나 다름없다. 세제를 다루는 국회 상임위 의원이 법안 내용조차 파악하지 못했다면 금배지 달 자격조차 없는 거다.



 세제 개편을 주도한 관료 입장에선 당혹스러울 수도 있다. 경제민주화를 내세워 당선된 대통령이 ‘증세 없는 복지’라는 난제를 던졌다. 정반대 방향으로 뛰는 두 마리 토끼를 잡으라는 거다. 세금을 더 거두지 않고도 복지를 무한정 늘릴 도깨비 방망이라도 있다면 좋으련만 그런 게 있을 리 만무하다. 그래서 ‘거위 털’에 손 댔다. 아픈 줄도 모르게 살짝 뽑으면 될 줄 알았다. 그게 이번 연말정산 개편이다. 그런데 알고 보니 몇 가닥이 아니라 한 움큼이었다. 아우성이 난 건 당연하다.



 거위는 아파죽겠다는데 “몇 가닥뿐이었다”며 증세가 아니라고 우기니 더 화가 나는 거다. 경제민주화가 숙제였던 1기 경제팀이 경기부양을 앞세운 2기 경제팀으로 바통 터치 됐을 때 거위의 고통을 덜어줄 기회가 있었다. 세금을 평소 많이 거뒀다가 연말정산 때 많이 돌려주는 방식으로 재빨리 조정했더라면 세액공제 방식으로의 전환에 따른 고통을 완충할 수 있었다. 조삼모사란 지적을 받을 순 있지만 경제 환경이 달라졌다면 그런 융통성도 필요했다. 한 마디로 1기팀은 당당하지 못했고 2기팀은 융통성이 부족했다.



 그런데 여론이 들끓자 여당 대표가 나서 거둔 세금을 되돌려주도록 했다. 정부가 과거에 한 실수를 얼른 바로잡도록 하겠다는데 거위가 화낼 일은 아니다. 어쩌면 그게 정치가 발휘해야 할 순기능일 수도 있다. 그러나 한번 매긴 세금을 소급 적용해 환급해주는 전례를 남기는 건 앞으로 두고두고 화근이 될 소지가 크다. 앞으로 억울한 일이 생길 때마다 이번 사례가 본보기가 돼 소급 적용 논란이 벌어질 수 있다.



 게다가 여론의 뭇매에 꼬리를 내리긴 했지만 정부의 입장이 바뀐 것도 아니다. 환급해주겠다는 세금도 주로 연봉 5500만원 이하 근로자가 대상이다. 토해낸 세금에 비하면 환급액은 세발의 피가 될 공산도 크다. 자칫 5월에 돌려준다는 ‘13월의 보너스’에 기대만 잔뜩 부풀렸다가 실망이 더 큰 분노로 폭발하는 건 아닐지 걱정스럽다. 그렇다면 지금이라도 정부든 정치권이든 솔직해질 필요가 있다.



 어쩌면 이번 파문이 전화위복의 계기가 될 수도 있다. 세상에 공짜 점심은 없다는 현실을 납세자도 절감했기 때문이다. 증세 없는 복지는 허망한 신기루다. 불편한 현실이지만 이를 정면으로 마주하지 않으면 ‘13월의 울화통’과 같은 일이 언제 어디서 터질지 모른다.



정경민 경제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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