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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리서 만난 이웃의 꿈, 1000개의 캔버스에 담을래요

안기은 키리나하우스 대표가 본인이 그린 사람들의 초상화를 보여주고 있다. 크라우드 펀딩을 통해 일정 금액(2만원 이상)을 내면 자신의 초상화와 이야기가 담긴 아트북을 받아볼 수 있다. 오종택 기자
“얼굴 좀 그려드릴까요?”

 길거리에서, 지하철 역 승강장에서, 버스 옆자리에서 마주친 누군가가 이렇게 제안했을 때 당신의 반응은? 첫 번째, “저 ‘도(道)’ 안 믿어요.” 두 번째, “바빠요.” 세 번째, “그럼 한 번 그려보시든지요.”

 안기은(31) 키리나하우스 대표는 평범한 사람들의 특별한 ‘초상화’를 그린다. 벌써 10년째다. 거리에서 스치는 사람들이 어떤 하루를 보내고 있는지, 무슨 꿈을 갖고 사는지 문득 궁금해져서 시작한 일이다. 지나가는 사람들을 붙잡고 “그림을 그려주겠다”고 말했다. 낯선 사람의 수상한 제안. 반응은 천차만별이었다.

 그렇게 하나, 둘 그려온 초상화만 어느덧 300여 장이다. 1000명을 채우면 그동안 그려온 초상화로 아트북을 엮어내는 것이 안 대표의 목표다. 프로젝트 명은 ‘천 명의 이웃집 위인들’. 최근에는 ‘길거리 캐스팅’ 외에도 크라우드 펀딩 사이트 ‘와디즈’를 통해 신청자를 받고 있다. 안 대표는 “남들이 보기에는 평범한 사람이더라도 저마다의 특별한 삶과 꿈이 있게 마련”이라며 “그 소중한 가치를 책에 담아내고 싶다”고 말했다.

 반응은 기대 이상이었다. 자신의 초상화를 그리는 이름 모를 여자에게 사람들은 스스로의 이야기를 스스럼없이 꺼내기 시작했다. 때로는 부모나 친구처럼 가까운 사이 앞에서도 쉽게 하지 못할 고민들이 오고 갔다. 그러다 보니 초상화가 인연이 돼 친구가 된 사람들도 적지 않다.

 고등학생 시절 안 대표는 쉬는 시간마다 친구들을 앉혀놓고 초상화를 그려주곤 했다. 그 사람 만의 생동감 있는 얼굴을 그리는 게 재밌었다. 소질도 있었다. 대입이 다가왔고, 국민대 시각디자인학과를 수석으로 합격했다. 모든 게 탄탄대로처럼 보였다. 하지만 대학 2학년이 되자 문득 회의감이 들기 시작했다. 안 대표는 “내가 그저 예쁘기만 한 ‘쓰레기’를 만들고 있는 것 같았다”며 “의미있는 디자인을 할 수 없다면 차라리 때려치우는 게 맞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한동안 디자인 공부를 그만두고 인문학 책을 읽거나 할 일 없이 시간을 보냈다. 그는 당시를 ‘약간 미쳐있던 상태’라고 표현했다.

 그러다 4학년 때 우연히 참여하게 된 워크숍이 그의 삶을 바꿨다. 워크숍 주제는 ‘좋은 디자인이란 무엇일까’ 였다. 고민 끝에 안 대표는 답을 내렸다. ‘좋은 디자인은 우리 엄마가 좋아하는 것.’ ‘한 명에게라도 감동을 주는 디자인을 하자’고 마음 먹었다. 그제야 무거운 짐을 내린 듯했다. 작은 디자인 스튜디오를 차렸고, 이번 프로젝트도 진행하게 됐다.

 안 대표는 초상화 한켠에 꼭 그 사람이 담고 싶어하는 이야기나 글귀 등을 적어 넣는다. 기자의 눈에 ‘작심삼일’이라고 적힌 초상화가 들어왔다. 알고 보니 ‘한 번 결심한 이상 3일이라도 가자’라는 초상화 주인의 깊은 뜻이 담겨 있었다. 사람마다 살아온 삶이 다른 만큼, 그 사람에게서 나는 향기 또한 저마다 다르다고 말하는 안 대표. 그는 “나 자신에게 이번 프로젝트는 큰 인생 수업이 되고 있다”며 “프로젝트가 끝난 이후에도 제2, 제3의 이웃집 위인들을 계속 찾아낼 예정”이라고 말했다. 안 대표가 직접 그린 자신의 초상화에는 ‘Good luck to you(당신에게 행운이 있기를)’라는 글귀가 적혀 있었다.

글=홍상지 기자
사진=오종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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