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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장 광부, 시신 닦던 간호사 … 우리가 덕수·영자죠

파독 광부와 간호사 출신인 이병종?서원숙?신병윤씨(왼쪽부터)가 인생 2막을 시작한 경남 남해 독일 마을 내 파독전시관에서 당시의 사진을 보며 독일생활을 회상하고 있다. [송봉근 기자]

그들에게 영화 ‘국제시장’은 남의 얘기가 아니었다. 주인공 덕수와 영자처럼 그들도 파독(派獨) 광부와 간호사 부부였으니까. 독일에 간 이유도 영화와 꼭 같았다. 집안을 먹여살리기 위해서였다. 경남 남해군 독일마을에는 ‘국제시장’ 영화 속 덕수와 영자 같은 광부·간호사 부부 다섯 쌍이 산다. 이들은 "영화를 보며 옛날 고생하던 일이 생각나 눈물을 펑펑 쏟았다”고 했다.

 신병윤(68), 서원숙(63·여)씨 부부가 그 중 하나다. 신씨는 1971년 어느 날 신문에서 광부를 모집한다는 광고를 봤다. 경남 진해의 비료공장에서 일할 때였다. 당시 비료공장 월급은 약 2만원. “독일에선 한 달에 20만원쯤 받았지. 그 중에 80%를 송금했어요. 1년이면 송금하는 게 대충 200만원이니 3년 체류 비자를 받아가면 600만원이잖아. 대학 4년 등록금 다 합쳐야 100만원이 안 되던 시절인데, 600만원 벌 수 있다는 소리에 눈이 번쩍 뜨이지 않을 수 있나.” 부인 서씨도 비슷한 까닭으로 서독에 갔다. 한국에서 받던 3만5000원의 네 배가 넘는 15만원을 월급으로 받았다고 했다.

 일은 고됐다. 섭씨 40도에 이르는 지하 600~1000m에서 일했다. 갱도가 낮아 허리를 제대로 펴지도 못했다. 저녁에 숙소에 돌아오면 그대로 곯아떨어졌다고 했다.

가끔씩 동료가 사고로 목숨을 잃거나 불구가 됐다는 소식은 광부들을 더욱 우울하게 만들었다. 독일마을에서 살고 있는 다른 광부 출신들도 비슷한 얘기를 했다. 이병종(70)씨는 “가보진 않았지만 지옥이 있다면 바로 이곳이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이씨도 간호사였던 문원자(66)씨와 결혼했다.

 간호사들 생활 역시 영화에 그려진 것과 비슷했다. 간호조무사 때는 시체를 닦았고, 간호사가 돼서도 화장실 청소나 거동이 불편한 노인들 대소변을 받아내고 목욕을 시켰다. 서원숙씨는 “밤이면 힘들어 기숙사 문을 닫고 울던 것까지 영화 그대로”라고 했다.

 영화와 다른 점은 당시 독일에서 총각 광부가 귀했다는 것이었다. 광부는 26세 이상이어서 그 때만 해도 결혼한 뒤에 많이 갔기 때문이다. 총각 광부와 처녀 간호사가 만나면 독일의 클럽에서 트위스트 등을 추면서 데이트를 즐겼다.

 영화처럼 베트남 전쟁에까지 다녀온 경우는 없었다. 대체로 한국에 돌아와 회사에 다니거나 자영업을 했다. 그러다 2000년대 들어 조성된 남해군 독일마을에 내려와 자리 잡았다. 남해군에 정착한 뒤에까지 계속 간호사로 일하는 이들도 있다.

 지금은 대체로 펜션을 운영하거나 관광객들에게 독일과자를 팔고, 당시 광산 등을 재현해 놓은 전시관에서 해설사로 일한다. 이들은 “영화 덕에 독일마을에 관광객이 몰리고 있다”고 했다. 최근 주말이나 휴일이면 남해마을에는 영화가 개봉하기 전보다 5배 이상 많은 하루 4000~7000명이 찾아오고 있다.

한국은 63~77년 독일에 광부 7936명을 보냈다. 간호사는 66~76년 1만1057명이 파견됐다. 이들이 처음 독일로 가기 시작한 60년대 초반 한국의 1인당 국민소득(GNP)은 80달러 정도로 태국(220달러)이나 필리핀(170달러)보다 적었다. 한국은 광부·간호사 임금을 담보로 독일로부터 차관을 얻어 고속도로와 공장을 지었다.

남해=황선윤 기자
사진=송봉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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