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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속으로] 오늘의 논점 - 프랑스 언론 테러

중앙일보와 한겨레 사설을 비교·분석하는 두 언론사의 공동지면입니다. 신문은 세상을 보는 창(窓)입니다. 특히 사설은 그 신문이 세상을 어떻게 바라보는지를 가장 잘 드러냅니다. 서로 다른 시각을 지닌 두 신문사의 사설을 비교해 읽으면 세상을 통찰하는 보다 폭넓은 시각을 키울 수 있을 겁니다.



중앙일보 <2015년 1월 9일 30면>
언론에 대한 반문명적 테러를 규탄한다


QR코드로 보는 관계기사 중앙일보
백주에 언론사 편집국이 총기난사를 당해 다수의 희생자가 발생하는 참극이 그제 파리에서 일어났다. 테러의 표적이 된 프랑스의 풍자 전문 주간지 ‘샤를리 에브도’의 만평 담당기자 4명 등 12명이 학살극으로 목숨을 잃었다. 언론을 정조준한 반(反)문명적이고 야만적인 테러에 우리는 참을 수 없는 분노를 느낀다. 언론은 자유민주주의를 지탱하는 기둥 중 하나다. 언론에 대한 테러는 어떤 이유와 명분으로도 정당화될 수 없다. 샤를리 에브도에 대한 공격은 세계 언론 모두에 대한 공격이다.

 샤를리 에브도는 종교적 극단주의와 극우주의를 배격하며 주로 만평을 통해 정치·사회·종교에 대한 신랄한 풍자를 해 온 신문이다. 풍자의 대상에서 이슬람의 창시자 마호메트도 예외가 아니었다. 그 때문에 무슬림들의 협박과 테러 위협이 그치지 않았고, 실제로 화염병 공격을 받은 일도 있었다. 이번 사건도 샤를리 에브도의 편집 방향에 대한 이슬람 극단주의자들의 불만이 원인인 것으로 보인다. 충격적인 테러를 통해 언론의 자기검열을 유도하려는 목적도 있었을 것이다.

 테러로 언론에 재갈을 물릴 수 있다고 믿는다면 착각이다. 성역과 금기를 의식하는 순간 언론은 더 이상 언론이 아니다. 종교라고 해서 비판과 풍자에서 예외일 순 없다. 비판에서 벗어난 종교는 도그마일 뿐이다. 그런 도그마의 산물 중 하나가 이슬람 극단주의다. 테러리스트는 진짜 무슬림이 아니다.

 유럽 경제가 어려워지면서 이민자를 배척하는 분위기가 확산되고 있다. 이민자의 대다수를 차지하는 아랍과 아프리카계 무슬림의 인구 비중이 커지면서 ‘이슬라모포비아(이슬람 공포증)’ 현상까지 나타나고 있다. 이번 사건은 유럽에서 무슬림 인구 비중이 가장 높은 프랑스에서 일어났다. 이민자 배척을 주장하는 프랑스의 극우 정당인 국민전선(FN)이 이번 사건의 최대 수혜자란 말이 벌써 나오고 있다. 이번 참사가 이슬람에 대한 혐오와 보복 심리를 자극해 인종과 종교 갈등을 부추기고, 유럽의 극우화를 가속화하는 결과로 이어질 가능성을 경계해야 한다. 이것이야말로 이슬람 테러리스트들의 위협에 굴복하는 것이다.

한겨레 <2015년 1월 9일 31면>
세계를 경악시킨 최악의 대언론 테러


QR코드로 보는 관계기사 한겨레
프랑스 파리 한복판에서 7일(현지시각) 시사 주간지 회사 직원 10명과 경찰 2명이 한꺼번에 총기에 맞아 숨지는 최악의 대언론 테러가 발생했다. 희생자들에게 조의를 표한다. 하지만 범인 검거 등 후속 조처만큼이나 사태 악화를 막는 데도 신경을 써야 할 상황이다.

 언론을 상대로 한 테러는 어떤 이유로든 용납될 수 없다. 이슬람 급진파로 추정되는 범인들은 주간지 내용을 빌미 삼아 계획적으로 범행을 저지른 것으로 보인다. 이들은 언론의 반이슬람 논조에 대해 경고하고 이슬람 근본주의 이념의 확산을 노린 것 같다. 어떤 명분을 내걸더라도 이는 민주사회의 대들보인 언론과 시민의 목숨을 담보로 한 잔인한 범죄일 뿐이다. 이들이 이슬람 테러집단과 연계돼 있다면 더 그렇다. 언론 보도 내용을 무력으로 바꾸려는 시도는 결코 성공할 수가 없다.

 이번 테러는 최근 유럽 전역에서 외국 태생의 주민을 혐오하는 분위기가 커지는 가운데 일어난 것이어서 문제가 더 심각하다. 프랑스는 식민주의 역사 등과 맞물려 이슬람권과 갈등을 빚고 있으며 이슬람계 인구 비율이 전체의 10%에 가깝다. 유럽 나라 가운데 반이민 정책을 내세운 극우정당이 가장 활발하게 활동하는 나라이기도 하다. 무엇보다 이번 사건이 이슬람포비아(이슬람 혐오증)와 결합할 경우 프랑스 사회가 심한 갈등과 분열에 시달리는 것은 물론 다른 나라에도 좋지 않은 영향을 끼치게 될 것이다. 프랑스는 관용을 중시해 온 나라답게 이번 사건에 슬기롭게 대처하기 바란다.

 이번 사건은 과격세력이 커지지 않고 국민통합을 이루도록 꾸준히 정책을 펴나가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잘 보여준다. 프랑스 내 이슬람계 인구가 수백만 명이라고 하더라도 급진파는 극히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 하지만 이슬람계 주민에 대한 일상적인 차별과 이들의 열악한 생활환경은 급진파의 목소리가 커질 토양을 제공한다. 2008년 금융위기 이후 계속되는 불황으로 백인 근로계층의 박탈감이 커진 것도 반이슬람 정서의 배경으로 작용한다. 공격받은 주간지가 심한 반발을 예상하면서도 반이슬람 만화를 되풀이해서 실은 것도 문제가 있다. ‘표현의 자유’가 ‘갈등 유발의 자유’일 수는 없다.

 우리 사회는 이번 사건을 타산지석으로 삼을 필요가 있다. 이미 170만 명을 넘어선 국내 외국인 가운데 많은 사람이 불안하게 살아간다. 유럽 나라들이 이슬람 과격파의 테러 및 이슬람포비아와 씨름하는 것을 남의 일로만 여겨서는 안 된다.

[논리 vs 논리] “유럽 극우화 가속 경계해야” … “국민통합 이루게 정책 펴야”

프랑스 구급대원들이 7일 파리에 있는 주간지 ‘샤를리 에브도’ 건물 앞에서 부상자를 실어나르고 있다. 이날 테러로 편집장과 만평가 등 최소 12명이 숨지고 20명이 부상했다. 프랑스 당국은 파리의 테러 위험 경고 수준을 최고 등급으로 올렸으나 또 다른 인질극이 이어졌다. [AP]
지난 7일 프랑스 파리에서는 시사 주간지 샤를리 에브도에 대한 이슬람 과격분자들의 테러가 있었다. 무려 10명의 직원과 2명의 경찰관이 총에 맞아 숨졌으며 부상자도 적지 않았다. 이에 대해 한겨레와 중앙은 한목소리로 비판한다.

 한겨레는 “어떤 명분을 내걸더라도 이는 민주사회의 대들보인 언론과 시민의 목숨을 담보로 한 잔인한 테러일 뿐”이라며 “언론 보도 내용을 무력으로 바꾸려는 시도는 결코 성공할 수 없다”고 잘라 말한다. 중앙 역시 “언론은 자유민주주의를 지탱하는 기둥 중 하나”라며 “언론에 대한 테러는 어떤 이유와 명분으로도 정당화될 수 없다”고 강하게 주장한다.

 사람마다 생각은 얼마든지 다를 수 있다. 그러나 “당신이 그렇게 말할 권리만큼은 인정하겠다”는 자세는 민주주의의 기본이다. 다른 목소리를 낼 여지가 없을 때, 사회는 전체주의에 빠질 수 있다. 언론의 자유를 ‘민주사회의 대들보’이자 ‘자유민주주의를 지탱하는 기둥’이라고 보는 데 있어 두 사설의 입장은 전적으로 같다.

 하지만 이번 테러를 어떻게 바라보고 대처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두 사설의 입장이 미묘하게 갈린다. 먼저 중앙부터 살펴보자. 중앙은 “테러리스트는 진짜 무슬림이 아니다”라고 선언한다. 유럽에 널리 퍼지는 반(反)이슬람 정서가 옳지 않다고 분명하게 선을 긋은 셈이다. 나아가 중앙은 “이번 참사가 이슬람에 대한 혐오와 보복 심리를 자극해 인종과 종교 갈등을 부추기고, 유럽의 극우화를 가속화하는 결과로 이어질 가능성을 경계해야 한다”고 충고한다.

 정치학자 찰스 타운센드에 따르면 테러리스트들이 폭력을 휘두르는 목적은 상대가 자신의 주장을 받아들이게 하는 것이 아니다. 테러리스트들의 진짜 목표는 ‘테러에 대한 국가의 보복’을 이끌어내는 데 있다. 정부가 테러를 막기 위한 전쟁을 벌이는 가운데 ‘선량한 피해자’들은 얼마든지 나올 수 있다. 테러리스트들은 여기서 또다시 공격의 빌미를 만들어낸다. 그러면서 정부의 정당성은 서서히 무너지게 된다.

 인종과 종교 갈등이 커지고 유럽의 극우화가 일어나는 것이야말로 “이슬람 테러리스트들의 위협에 굴복하는 것”이라는 중앙의 진단은 타운센드의 분석과 맥을 같이한다. 그렇다면 테러리스트들의 목적을 좌절시키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이 물음에 대해 한겨레는 “과격세력이 커지지 않고 국민통합을 이루도록 꾸준히 정책을 펴나가는 일이 중요하다”고 힘주어 말한다. 한겨레는 “이슬람계 주민에 대한 일상적인 차별과 이들의 열악한 생활환경은 급진파의 목소리가 커질 토양을 제공한다”는 점에 주목한다.

 2005년 영국 런던 7·7테러, 2013년 미국 보스턴 마라톤대회 테러, 지난해 캐나다 오타와 국회의사당 총격 사건에 이르기까지 이슬람 과격분자들의 테러에는 일종의 ‘패턴’이 나타나고 있다. 먼저 경제가 어려워짐에 따라 이슬람에 대한 차별이 심해진다. 분노한 무슬림들이 폭력 사건을 일으키고 여기에 대한 극우파의 자극이 이어진다. 이는 다시 보복 테러를 불러와 ‘테러와의 전쟁’으로 확대된다.

 “프랑스는 관용을 중시해 온 나라답게 이번 사건에 슬기롭게 대처하기 바란다”는 한겨레의 충고에는 이런 폭력의 악순환을 끊어야 한다는 바람이 담겨 있다. 중앙 또한 유럽 경제가 어려워지면서 이민자를 배척하는 분위기가 확산되고 있는 모습을 주의 깊게 바라본다. 나아가 유럽에서 ‘이슬라모포비아’가 커지고 있는 현상도 짚고 있다.

안광복
중동고 철학교사·철학박사
 눈앞의 테러를 막는 일은 중요하고 시급하다. 하지만 테러에 대한 ‘근본 처방’은 폭력을 부르는 요인인 사회 갈등을 없애는 데서 시작돼야 한다. 이 점에서 “‘표현의 자유’가 ‘갈등 유발의 자유’일 수는 없다”는 한겨레의 주장은 의미심장하다. 언론의 자유가 보장돼야 한다는 점에 대해서는 다른 목소리가 나올 리 없다. 하지만 가뜩이나 박탈감이 큰 무슬림들에게 그들이 신성시하는 마호메트를 희화한 샤를리 에브도의 만평이 과연 민주주의와 언론의 자유에 도움이 되는 일인지에 대해서는 논란의 여지가 있다.

 언론에 대한 테러는 절대 용납될 수 없다. 그러나 테러에 대한 대처와 처방은 깊은 원인까지 살펴봐야 한다. 유럽의 극우화를 걱정하는 중앙의 생각과 국민통합을 위한 정책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한겨레의 주장에 귀 기울여야 하는 이유다.

안광복 중동고 철학교사·철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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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 27일자에는 정부가 내놓은 기업형 임대주택 활성화 정책에 대한 중앙일보·한겨레의 사설과 김기태 호남대 교수의 비교·분설 글이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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