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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New York Times] 또다시 파산하는 그리스, 유럽 몰락의 전주곡

요제프 요페
독일 『디 차이트』 편집자
그리스 파산이 다시 임박했다. 5년 만에 세 번째 맞는 파산이다. 그래도 그리스의 유로존 탈퇴는 없다. 그리스는 공동통화를 포기하는 호의를 베풀지 않을 것이다. 장부를 조작해 재정을 부풀린 뒤 유로에 가입한 이 나라를 애초에 받아주지 말았어야 한다는 지적은 논외로 하자.

 지지율 1위인 그리스 급진 좌파연합의 당수 시리자 치프라스조차 유로존 탈퇴를 원하지 않는다. 오는 25일 조기총선에서 승리할 게 분명해 보이는 치프라스는 이미 “유로를 떠나지 않겠다. 틀림없다”고 맹세했다.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의 참모들은 “‘그렉시트(Grexit: 그리스 퇴출)’가 절대 불가능한 선택지는 아니다”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실제로는 독일을 포함해 유럽 어느 나라도 그리스의 탈퇴를 원하지 않는다. 독일 정부는 “치프라스가 집권한 뒤 시장 개혁과 긴축 재정을 거부하며 또다시 채무 조정에 나선다면 독일은 그리스에 안녕을 고할 것”이라고 무언의 협박을 보냈지만, 결국은 공허한 수사였음이 드러났다.

 메르켈의 대변인이 “무언의 메시지로도 그리스에 그런 위협을 한 적이 절대 없다”고 해명했기 때문이다. 이제 유로 위기는 5년 전 위기의 첫 발화점인 그리스로 되돌아왔다. 이번 위기도 그때처럼 언젠가는 빠져나갈 밀물이 될까, 아니면 유로존 전체를 삼켜버릴 쓰나미가 될까?

 헐값이 돼가는 그리스 국채를 쌓아둔 이가 아니라면 독일 총리와 그리스 차기 총리가 싸움을 벌이는 한 편의 드라마를 느긋이 지켜보면 된다. 메르켈 총리는 늘 그렇듯 비유적 표현으로 속내를 흘린다. 반면 치프라스는 눈에 불을 뿜으며 메르켈을 위협한다. 그는 긴축정책을 갈기갈기 찢어버리고 이자 지급도 중단하려 한다. 현 상황을 냉전시대의 핵 대결에 비유하며 “어느 한쪽이 빨간 버튼을 누르면 모두가 지는 싸움”이라고 주장한다.

 양국이 통화를 무기로 벌이는 치킨게임 구도다. 치킨게임을 하다 보면 깨닫게 되는 사실이 있다. 상대보다 더 미쳐 보이는 쪽이 점수를 얻는다는 거다. 전략가들은 이를 ‘불합리의 합리(rationality of irrationality)’라고 부른다. 이게 위기의 핵심이다. 얌전을 빼며 1000억 유로를 요구하는 대신 입에 거품을 물고 소리를 질러야 원하는 걸 얻을 수 있다.

 말도 안 되는 방식이라고? 아니다. 그리스는 이런 방식으로 두 번이나 구원을 받았다. 2010년 1100억 유로(1470억 달러), 2012년 1300억 유로(1730억 유로)를 얻어냈다. 반면 개인투자자들은 자신들이 산 그리스 국채가 반 토막으로 절하되는 걸 받아들여야만 했다. 이렇게 매듭지어진 긴급 구제조치는 그리스 국민에게 기대심리만 안겨줬다.

 통화전쟁은 핵전쟁과 비슷하다. 전쟁이 어떻게 터지는지는 다들 알지만 어떻게 끝날지는 누구도 모른다. ‘그렉시트’로 골치 아픈 이웃을 치워버릴 수는 있다. 하지만 그러다가 유로란 집 전체가 무너질 수도 있다.

 그리스 경제는 바닥을 쳤던 3년 전만큼 끔찍한 상황은 아니다. 하지만 어두운 이면은 많다. 유로존과 국제통화기금(IMF)이 처방한 긴축조치는 그리스 정부가 주장했던 것만큼 가혹하지 않았다. 그 결과 그리스 정부의 부채는 2011년 이후 2배로 불어났고 지금은 자체 수습이 불가능한 지경이 됐다. 이로 인해 세 번째 위기가 발생한 것이다.

 더 큰 문제는 치프라스가 “공공지출을 계속 늘리겠다”고 공약한 점이다. 다음 주 총선에서 그가 집권하면 위기가 닥칠 때마다 구제금융을 받아온 이 나라의 전례가 재연되리란 건 분명하다. 이는 그리스 내부에서 개혁을 추진하는 세력의 열정을 약화시킬 것이다.

 독일은 그리스 문제를 놓고 믿을 구석이 없다. 경제 규모가 큰 프랑스와 이탈리아를 예로 들자. 두 나라는 노동시장 개혁과 경제 자유화를 추진할 능력이 없다. 그래서 최근 긴축재정을 종결하겠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그리스에 유리한 환경이 조성되고 있는 이유다.

 그리스는 결국 구제될 것이다. 경제 규모가 작은 이 나라는 ‘소마불사(小馬不死: too small to fail)’에 해당한다. 하지만 프랑스와 이탈리아는 유럽 문제의 핵심을 보여준다. 오랜 기간 적자지출을 해왔음에도 만성적인 경기침체에 시달리고 있다는 점이다.

 그러니 ‘그렉시트’는 잊어라. 그보다는 오래전부터 계속돼 온 유럽 전체의 경기침체를 걱정해야 한다. 기적적인 성장률을 기록한 70년대 이후 수십 년간 유럽연합의 실질성장률은 매년 평균 0.75%포인트씩 하락했다. 생산성 증가율도 2%에서 0.4%까지 떨어졌다. 유럽은 투자와 혁신, 경쟁력에서 모두 뒤진 중환자다.

 그리스 문제는 새 발의 피다. 유럽 전체가 그리스의 확대 버전으로 치닫고 있는 게 진짜 문제다. 그리스와 달리 유럽연합은 돈이 많고 총생산 규모도 미국보다 크다. 그러나 경제지표로 드러난 장기적 추세는 유럽 전체에 “개혁 아니면 몰락”이라고 속삭이고 있다.

요제프 요페 독일 『디 차이트』 편집자

◆원문은 중앙일보 제휴 뉴욕타임스 신디케이트 1월 12일 게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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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