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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민순 전 장관 "남북 정상회담 매달리면 북한에 칼자루 쥐어주는 것"

송민순(67) 전 외교부 장관
  2005년 6자회담에서 9·19 공동성명 도출의 주역이었던 송민순(67·사진) 전 외교부 장관이 국내 북한 연구의 메카인 북한대학원대학교 총장으로 ‘깜짝 변신’했다. 3월 정식 취임을 앞둔 송 전 장관은 16일 “남북관계와 통일, 국가 안보와 관련된 실무를 맡았던 외교관으로서의 경험을 살려 남북관계의 민족적 차원과 국제적 차원을 결합해 한반도의 분단과 통일문제에 대해 융합적으로 접근할 것”이라고 포부를 밝혔다.



송 전 장관은 “북한학은 현장에서의 전문성을 특히 필요로 하는 분야인 만큼 학문과 실제를 접목시키고, 이 곳에서 교육받은 뒤 곧바로 현장에 투입돼 남북관계와 관련된 일을 체계적으로 할 수 있는 인재들을 길러내겠다”며 “국가로부터 혜택을 받았으니 봉사해야 한다고 생각해 총장직을 수락했다. 내가 기여할 수 있는 부분이 있다고 생각하고, 정부에 도움이 된다 싶을 의견을 계속 내놓을 것”이라고 말했다.



북한 김정은 국방위 제1위원장의 신년사 이후 남북 정상회담 가능성에 많은 관심이 쏠려 있는 데 대해 송 전 장관은 “정상회담에 매달려선 안 된다. 그러면 북한에 칼자루를 쥐어주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남북관계에 있어 방향은 정해야 하지만, 목표나 결과를 미리 정해선 안 된다”며 “목표를 정하면 북한이 이를 100% 이용한다”고 조언했다. 이어 “박근혜 정부가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 정책을 수립했는데, 프로세스란 것은 결과 지향적 접근이 아니다. 불가역적 단계를 차근차근 밟고 다 못한 것은 다음으로 넘겨 마저 하게 하는 것이 바로 신뢰 프로세스의 본질적 가치를 살리는 법”이라고 강조했다. “정 안되면 남북 정상회담은 다음 정권에서 해도 된다는 생각으로 일단 관계 개선을 위한 구체적 정책 구현에 힘써야 한다”면서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참여정부에서 외교부 장관을 지낸 그는 “2차 남북 정상회담 때 10·4 공동선언을 준비하며 ‘겨우 임기를 너댓달 남기고 이 많은 짐을 실으면 수레가 출발이나 하겠느냐, 무리하게 하지 말자’고 했지만, 이는 소수의견에 불과했다. 대부분은 ‘평양행 기차’에 올라타기 바빴다”고 돌아봤다.



그는 “여러 협상을 해봤지만, 결과가 50대 50이어야 성공한다. 60대 40이면 당장은 성공으로 보일 지 모르지만 오래 가지 못한다”며 “이를 위해선 내가 상대방 입장에 들어가 역지사지로 생각해봐야 한다”고 조언했다. 1975년 외교부에 입부한 송 전 장관은 한·미 주둔군지위협정(SOFA) 개정 협상, 한·미 미사일 지침 개정 협상 등 국익이 걸린 수많은 협상에서 정부 대표를 맡았다.



특히 2005년에는 우리측 6자회담 수석대표로서 북한이 핵무기를 포기하는 대신 안전보장과 경제지원을 해주는 9·19 공동성명 합의에 크게 기여했다. 하지만 곧바로 이어진 미 재무부의 BDA 제재에 북한이 반발하면서 9·19 공동성명은 휘청거리다 결국 이행되지 못하고 있다.



남북 간에는 대화를 추진하는데, 북한의 소니 픽처스 해킹에 미국이 강력한 대북제재를 검토하는 지금 상황이 2005년과 닮아 있지 않느냐는 질문에 송 전 장관은 “우리 정부에 의지가 있는데 북미관계가 악화한 상황이란 점은 비슷하지만, 한국과 미국이 그 때만큼 절박한 의지를 보이진 않고 있다는 점이 다르다. 유사점보다 차이점이 더 크고, 상황도 더 어렵다”고 답했다. “당시 노무현 정부는 북핵 문제 해결 없이는 아무 것도 안 된다는 문제인식을 갖고 모든 외교력으로 전력투구했지만, 현정부는 대북정책에 그만큼의 응집된 힘을 쏟지 않고 있다. 미국 역시 당시 조지 W 부시 대통령은 중동에서 전쟁을 치른 다음 한반도에서 평화라는 업적을 이루고자 했지만,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평화에 대한 집착은 중동에 있다”면서다.



송 전 장관은 “이런 상황을 바꾸기 위해서는 보다 창의적 접근이 필요하다”며 “남북관계를 악화시킨 상징적 사건이 금강산 관광객 피살 사건인데, 이를 개선의 상징으로 바꿔야 한다”고 제안했다. 그는 “2008년 당시 북한은 ‘불가피했다’는 공식 입장을 냈는데, 우리 정부는 이를 부정적으로 받아들였다. 사실 불가피했다는 말 속에는 시인과 사과를 하겠다는 마음이 내포돼 있는 것”이라며 “지금이라도 남북이 금강산에 같이 앉아서 불가피한 사정이 뭐였느냐고 따지고 재발방지책을 만들자고 하면 우리가 원하는 약속을 받아낼 수 있는 것”이라고 제언했다.



또 “우리가 북한에 자꾸 진정성을 요구하는데, 대립 상황에서 힘이 약한 쪽이 먼저 행동으로 진정성을 보인다는 것은 곧 굴복을 뜻하지만 힘이 센 쪽이 행동하면 그것은 이니셔티브, 곧 우리가 주도하는 것이 된다. 금강산 문제를 시작으로 우리가 남북관계 전반의 이니셔티브를 쥐어야 한다”고 말했다.



5·24조치에 대해서는 “북한이 어떤 식으로든 천안함 폭침을 시인하는 것처럼 보이는 입장표명은 절대 하지 않을 것”이라며 “5·24 조치 해제를 전제조건이나 수단으로 봐선 안 되고, 남북관계가 좋아지면 거기서 나오는 결과물이 될 수 있다는 생각으로 우회적으로 접근해야 한다”고 했다. 송 전 장관은 “예를 들어 개”성공단에 입주한 기업에게 기숙사를 짓도록 정부가 대출을 해주면, 그 다음 단계는 자연스럽게 더 많은 인력이 개성공단으로 들어가는 것”이라며 “이처럼 굳이 해제하겠다고 선언하지 않아도 단계적으로 5·24조치를 풀 수 있는 방법은 있다. 대북정책에서는 이런 ‘곡선적 접근’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송 전 장관은 내밀한 외교도 주문했다. 그는 “마이크에 대고 하는 협상이란 것은 없다. 6자회담 때도 당시 크리스토퍼 힐 미국 수석대표와 미리 서울에서 단둘이 만나 ‘본국 정부와 여론을 의식해 선전전처럼 마이크에 대고 이야기하는 것은 그만 하자’고 제안했었다” 고 상기했다. 송 전 장관은 “지금 미국이 준비하는 대북 제재도 남북관계에 도움이 되지 않기 때문에 내부적으로는 미국에 치열하게 이야기해야 한다”며 “정말 동맹이라면 ‘미국의 다른 세계전략에는 모두 협조하겠지만, 한반도 문제만은 우리가 주도할 테니 우리의 의견을 따라달라’고 할 수 있어야 한다”고 설명했다. 또 “이런 외교는 겉으로 드러내지 않고 해도 북한이 알게 된다. 그러면 북한 역시 한국 목소리가 미국에도 먹힌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고 덧붙였다.



유지혜 기자 wisepe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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