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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시평] 너무 멀리 떨어져 있는 청와대와 새누리당

강원택
서울대 교수·정치외교학
바람 잘 날이 없어 보인다. ‘청와대 문건 유출 파동’으로 한바탕 법석을 떨더니, 이번에는 문건 파동의 배후 메모가 담긴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의 수첩 사건이 파문을 일으키고 있다. 잇따른 파문은 바로 박근혜 대통령의 리더십에 대한 국민의 실망으로 이어지고 있다. 최근 실시된 한 여론조사에서 박 대통령의 직무수행에 대한 긍정적 평가는 35%로 나타나 취임 이후 가장 낮은 수치를 보였다. 이번 수첩 파문의 영향이 여론에 반영된다면 박 대통령에 대한 지지도는 더 낮아질 수도 있을 것 같다.



 청와대 문건 유출 사건과 수첩 파문을 보면, 박 대통령이 집권의 조력자로 생각하는 범위가 대단히 협소하다는 인상을 준다. 박 대통령은 소수의 측근과 핵심 친박 의원들만을 ‘우리 편’이라고 생각하는 듯이 보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번의 수첩 사건은 지난해 말의 청와대 문건 유출 파동보다 오히려 심각해 보인다. 문건 유출 사건이 대통령 측근 간 권력을 둘러싼 암투와 같은 인상을 주었다면, 이번 수첩 사건은 박 대통령과 청와대가 새누리당을 바라보는 시각을 드러낸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집권당의 당 대표와 원내대표 선거에 나선 중진 의원을 문건 유출의 배후라고 간주하는 어마어마한 불신이 그저 일개 청와대 행정관의 개인적 생각이라고 보기는 어려울 것이다. 이번 사건을 보면, 대통령을 배출한 정당이라고 하지만 새누리당 안에서도 일부만이 진짜 ‘집권당’인 것 같다. 실제로 대선 승리 2주년 다음 날 박 대통령은 친박계 중진 의원들만을 불러 저녁을 함께했다.



 집권당을 바라보는 청와대의 편향된 시선이 걱정스러운 것은 임기 3년 차를 맞이하면서 안정적이고 효율적인 국정운영을 위해서는 당의 지원과 협조가 점점 더 중요해지기 때문이다. 다시 선거에 나설 필요가 없는 단임 대통령과 달리 정당은 주기적으로 선거에 노출되어 있고 또 다른 집권을 위해서는 현직 대통령과 무관하게 미래 권력을 만들어내야 한다. 그만큼 당은 여론의 흐름에 예민하게 반응할 수밖에 없다. 대통령이 중시하는 정책이 조직화된 강한 저항에 부닥치거나 여론의 반응이 나쁘다면 집권당이라고 하더라도 적극적으로 협조하려 하지 않을 것이다. 집권당의 폭넓은 지원을 얻지 못하는 정책은 아무리 중요한 것이라고 해도 제대로 실현되기 어렵다. 예전처럼 대통령이 당을 일방적으로 통제할 수 없는 상황이라면, 잦은 소통과 교류를 통해 추진하는 정책의 중요성에 대한 당내의 공감대를 넓히려고 노력할 수밖에 없다. 돌이켜보면, 정책 추진 과정에서 집권당의 지원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집권 이전에 이미 박 대통령 스스로 경험한 바 있다. 이명박 대통령의 임기 3년 차였던 2010년 6월 정부 기관의 세종시 이전을 백지화하고 기업, 과학 중심의 경제도시 건설을 골자로 한 세종시 수정 법안이 부결되었다. 당시 이 법안의 부결을 이끌었던 핵심 인물이 바로 지금의 박 대통령이다. 법안의 부결은 이 수정안을 추진했던 이 대통령에게는 정치적인 타격을 주었지만, 미래 권력으로서 ‘박근혜의 힘과 위상’을 과시할 수 있었다.



 문제는 이런 일이 이명박 대통령에게만 생겨날 수 있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이미 박 대통령의 지지도는 하락하는 추세를 보이고 있고, 더욱이 그동안 정치적으로 존재감이 약했던 야당도 당 대표 선거가 끝나고 나면 예전보다는 결집된 모습을 보이게 될 것이다. 더욱더 집권당의 도움이 절실해지는 것이다.



 새누리당을 바라보는 청와대의 편향된 시선이 의외라고 생각되는 또 다른 이유는 박 대통령이 누구보다 당에서 많은 경험을 쌓아왔기 때문이다. 1998년부터 2012년까지 5선 국회의원을 경험했고, 야당 시절이던 2004년에는 당 대표를, 여당이었던 2012년에는 당 비상대책위원장을 역임했다. 오랜 의정 경험은 물론이고 여당과 야당 시절의 당 대표를 모두 경험해 본 드문 경우이다. 그러나 대통령 당선 후 청와대로 들어가면서 마치 70년대의 경험과 기억으로 되돌아간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당과의 관계는 매우 소원해 보인다. 그러나 지금처럼 민주적이지 않았던 박정희 정권 시절에도 집권당과 행정부 간의 당정협의회는 빈번하게 열리면서 상호 소통과 정책 조율을 위한 중요한 기능을 수행했다.



 “오늘 결론이 나면,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어도 이제 모두 마음속에 묻었으면 한다. 모두 힘을 모아 새로운 미래를 만들게 되길 바란다. 수정안을 지지하는 분도 원안을 지지하는 분도 모두 애국이었음을 믿는다.” 세종시 수정안에 대한 국회 표결 직전 반대 토론을 통해 당시 집권당이던 ‘한나라당’ 박근혜 의원이 한 발언이다. 과연 지금도 자신이 그때 한 이 말을 기억하고 있을까. ‘새로운 미래를 만들기에’ 지금 청와대와 새누리당의 거리는 너무도 멀어 보인다.



강원택 서울대 교수·정치외교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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