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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 없는 정의는 살인면허

사랑이 없는 정의의 강조는 끝없는 투쟁을 낳을 뿐이라고 말하는 황태연 동국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공자와 맹자의 ‘인의(仁義)’ 철학을 바탕으로 21세기 평화의 윤리학을 정립하려고 한다. 이를 위해 공.맹 철학을 20여 년 연구했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한 대학생이 무더운 여름 거리를 방황하고 있다. 그는 한 할머니가 고리대금업으로 번 돈을 빼앗아 가난한 동생들에게 쓰는 것이 정당하다는 결론을 내렸다. 대학생 라스콜리니코프는 할머니를 살해한다. 도스토옙스키의 소설 『죄와 벌』의 내용이다.

"인의(仁義) 정치가 희망" … 황태연 교수, 공·맹철학을 말하다



 황태연(60·사진) 동국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여기에서 정의 개념을 끌어냈다. “주인공은 정의를 알았다고 생각했다. 정의가 사람을 죽여도 되는 살인 면허가 된 거다.” 황 교수는 이런 얘기가 단지 소설 속 허구가 아니라고 했다. 사랑이 빠진 ‘정의 제일주의’의 귀결이며, 그 같은 흐름은 서양정치사상의 근간을 이룬다고 했다.



정의 주먹으로 복지 구하는 건 싸구려



동국대 연구실에서 9일 오후 만난 황 교수는 6·25 전쟁도 그와 비슷하다고 했다. “북쪽 사람들이 정의를 내세워 남쪽 사람을 다 죽여도 된다고 생각했다. 남쪽에서도 마찬가지다.” 황 교수의 이야기는 좌파와 우파를 막론하고 오늘날 국가의 최고 덕목으로 흔히 거론되는 ‘정의·복지국가’ 개념으로 한걸음 더 나아간다. “정의의 주먹으로 복지를 구하는 것은 결국 행복을 희생시켜서 복지를 얻는 싸구려 장사다.”



 마르크스주의를 기반으로 현대 사회문제를 연구해 1991년 독일 괴테대학교에서 박사학위(‘지배와 노동’)를 받은 그가 지금은 공자 철학을 기반으로 서양정치사상을 새롭게 조명하고 있다. “사랑 없는 정의는 끝없는 갈등과 투쟁을 불러올 것”이라며 그는 “절대적으로 여겨지는 ‘정의·복지국가’ 개념 대신 사랑이 있는 ‘인의(仁義)·행복국가’를 추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최근 출간한 『감정과 공감의 해석학』(청계)의 지향점이다. 4년 전 펴낸 『공자와 세계』(청계)의 연장선에 있는 책이다. 전작이 “17~18세기 유럽의 계몽주의 사상은 공자철학이 전해져서 시작된 것”이라는 주장을 서양 학자들의 선행연구를 인용하며 논증했다면, 이번 책은 그 같은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하여 ‘공감적 해석학’ 이론을 정립하려고 한다. 



 - 마르크스주의에서 동양철학으로 넘어온 계기가 뭔가.



 “내가 74학번인데 돌이켜 보면 대학시절 민주화운동도 복잡한 이론에 의지하기보다는 ‘민심이 천심’이라는 생각으로 했던 것 같다. 1994년 동국대 교수로 초빙된 이후 본격적으로 동양철학을 공부하기 시작했다. 서양 정치사상의 한계를 느꼈기 때문이다. 예컨대 루소의 『사회계약론』을 잘 읽어보면 신적인 입법자가 법안을 내고 나머지는 박수로 통과시키는 구조다. 이게 루소가 생각한 민주주의인데 인민독재 개념도 거기서부터 파생되는 것이다.”



싸우지 않는 민주주의는 공자·맹자뿐



 - 공자 철학이 어떻게 돌파구가 됐나.



 “마르크스주의에서 폭력의 문제는 윤리적으로 정확히 규정되지 않았다. 폭력은 안 된다는 말이 없다. 투쟁유일주의다. 투쟁과 폭력을 강조하면 적개심과 적대 행위 속에서 산다. 사회가 가야할 방향이라고 할 수 있나. 『논어』에서 “군자부쟁(君子不爭)”이라 했다. 군자는 싸우지 않는다. 싸우지 않고 추구하는 행복과 민주주의는 공자와 맹자 철학뿐이다.”



 - 공맹 사상이 17~18세기 서양 계몽사상의 뿌리라고 주장했는데.



 “내 주장이 아니라 서양 학자들의 저서에 나오는 얘기를 내가 인용해 서술했을 뿐이다. 17~18세기 서양 계몽사상이 공맹 철학의 충격 속에 발생한 것은 명백한 사실이다. 계몽사상 이전의 르네상스 시대부터 시작해 서양은 ‘싸우지 말라’는 이론만 빼고 거의 다 중국 문명의 영향을 받았다. 내각제·시장경제뿐 아니라 총포, 식문화, 공원 조경까지 전부 중국으로부터 받아들여서 강해진 것이다. 싸우지 말라는 가르침을 빼놨기 때문에 그들은 제국주의로 흘러갔다.”



말 없어도 마음이 같아지는 것이 공감



 - 이번 책에서 ‘공감의 해석학’을 주창했는데 어떤 의미인가.



 “공자의 ‘충서(忠恕)’에서 ‘서’를 내가 공감으로 풀이한 것이다. ‘같을 여(如)’자에 ‘마음 심(心)’ 아닌가. 마음이 같아지는 것이 곧 공감이다. 내가 말하는 공감은 기존의 서양 해석학에서 말하는 역지사지(易地思之)와 비슷하지만 다르다. 입장을 바꿔 생각한다는 역지사지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얘기다. 공감은 그보다 더 근원적인데, 어떤 문제가 되는 상황에서 말을 하지 않아도 마음과 마음으로 아는 것이다.”



 - 공감과 함께 감정도 중시하고 있는데.



“내가 생각하는 해석학에서 중요한 것은 사람의 감정과 행위의 의미를 아는 것이다. 그것은 공감이 없이는 안 된다. 그런데 사람은 공감 능력을 본능적으로 타고났다. 수십 만년 동안 후손에게 도덕성을 교육해 유전자 속에 넣었다. 이 능력을 조명하지 않고 건너 뛰면 엉터리 사회과학이다. 뇌과학, 신경과학 등 세계의 첨단 연구자들이 다루는 주제다.”



사람 중심 정치로 행복국가 지향해야



 - 책에는 한국의 젊은 학자들이 새겨들어야할 대목이 적지 않다.



 “다시 말하지만 내 주장은 새로운 게 아니다. 서양은 이미 그렇게 변화하고 있다. 그런데 한국에서 이런 얘기는 잘 들어보지 못했을 것이다. 특히 한국 인문사회과학은 100% 수입산이다. 학자들이 다 외국 이론만 가지고 장사하는 수입상이란 얘기다. 나는 이 책에서 내 이론을 만들려고 했다. 장벽이 많다. 신문사 대학평가에서 저서는 제외되고 논문만 인정되는 것도 문제다. 중앙일보가 논문뿐 아니라 저서도 교수 업적으로 인정하는 것을 고려한다는 소식을 다행으로 생각한다.”



 - 대안으로 제시한 인의·행복국가를 간략히 설명한다면.



 “공자는 아버지가 자애로워야 한다고 말한다. 아버지는 국가로 치면 한 나라의 임금이다. 전쟁을 하고 사법 정의를 내리는 서양의 플라톤식 국가가 아니다. 공자는 인(仁)을 ‘사람을 사랑하는 것’이라고 했다. 공자의 인의 정치로 행복한 나라를 지향해야 한다. 공자는 양민(養民)과 교민(敎民), 즉 국민을 먹여 살리고 문화적으로 발전시켜야 한다고 했다. 인을 바탕으로 한 정의와 그렇지 않은 정의는 다르다.”



  진행=배영대 문화부장

  정리=김호정 기자

사진=권혁재 사진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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