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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문화공간으로 탈바꿈한 110년 역사 충북 영동 황간역

10일 황간역 대합실에서 열린 음악회에서 매곡초 학생들이 리코더를 연주하고 있다. [프리랜서 김성태]
“외갓집이 없었다면…외할매 나를 부르는 산메아리 있었을까.”

 지난 10일 오후 충북 영동의 경부선 황간역 대합실. 열차에서 내린 승객과 간이좌석에 앉은 관객이 보는 앞에서 박수경(7·여)양이 또박또박 시를 낭독했다. 제목은 정완영(97) 시인이 지은 ‘외갓집이 없어다면’. 황간면에서 가까운 오도티 마을이 외가인 정 시인이 어릴적 황간역을 지나며 지은 시다. 백발이 성성한 시인은 박양을 흐뭇하게 쳐다봤다. 박양은 동네 오빠·언니들에게 박수를 받더니 부끄러운 듯 머리를 긁적이며 무대를 내려왔다.

 하루 이용객 300여 명. 우리나라에서 가장 느린 무궁화호 열차가 15번밖에 정차하지 않는 낡은 시골 철도역이 주민들의 문화공간으로 변신했다. 이날 열린 대합실 음악회에는 황간역 개통 110주년을 맞아 마을 주민들과 전국의 가수·시인들이 참여했다. 음악회는 색소폰 연주와 시를 전문으로 노래하는 가수의 공연, 영동 출신 시인의 자작시 낭송 등 2시간 동안 진행됐다. 황간면 매곡초등학교 아이들의 리코더 합주와 황간초등학교 합창반 공연도 이어졌다.

 경부선이 개통한 1905년 1월 문을 연 황간역은 1960년대까지만 해도 영동에서 생산되는 석탄·목재·농산물 운송역으로 크게 붐볐다. 당시 대전~황간~대구를 오가는 이용객만 1000여 명에 달했다. 하지만 경부고속도로가 뚫리고 기름 보일러가 보급되면서 황간역도 잊혀진 존재가 됐다.

 낡은 역사에 변화의 바람이 일기 시작한 건 2012년 말 강병규(57) 역장이 부임하면서다. 강 역장은 2013년 8월 황간역에 고향을 주제로 한 글귀가 새겨진 옹기 항아리 130점을 놓는 것을 시작으로 틈 나는 대로 시화전과 시낭송회를 열었다. 관광객이 많은 여름 휴가철과 가을에는 시골에선 보기 힘든 색소폰과 가곡 음악회도 마련했다.

 지역주민들도 적극 참여했다. 평소 연습한 노래도 부르고 하모니카 등 악기도 연주했다. 아이들은 평소에도 자전거를 타거나 제기차기·공놀이를 하며 역 광장을 놀이터로 삼았다. 강 역장은 “황간역을 예전처럼 마을 주민들이 즐겨 찾는 사랑방으로 만들고 싶다”고 포부를 밝혔다.

영동=최종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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